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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신앙칼럼

친절한 금자씨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1. 6. 24.

친절한 금자씨

 

친절한 금자씨, 라는 영화를 보았다. 막상 보니 금자씨는 그다지 친절하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집에 와서 곰곰 생각해보니 금자씨는 친절했다. 영화에서 금자씨는 나에게 깨우쳐 준 것이 있었다.

“너나 잘 하세요.”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거의 알고 있듯, 금자씨가 출소하는 날 팡파르 부대를 앞세우고 찾아온 목사님이 다시는 죄 짓지 말라면서 건네주는 두부를 팽개치며, 친절한 금자씨는 그렇게 말한다.

보통 영화를 보면 주인공에 자신을 이입시켜 감상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번엔 경우가 좀 달랐다. 수십 년의 긴 세월동안 매주일 만난 목사님(일주일에 한 번만 만났다고 계산해도 1716번을 만났다!) 편에 서서 그 말을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그 순간, 관객들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주 통쾌하게, 속이 시원하다는 듯, 거리낌 없는 비웃음은 오랫동안 기독교인으로 살아온 나에게, 그리고 목사님에게, 나아가서는 한국 교회에게 던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한동안 가시지 않았다.

 

물론 너나 잘하세요, 하고 조소하는 친절한 금자씨야말로 영화 속에서 뭐 그렇게 잘한 것도 없다. 하지만 항상 자신을 돌아보라는 성경 구절에 익숙한 나로서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래, 나나 잘하자. 나만 잘하면 우리 교회도 잘할 것이고, 우리 교회가 잘하면 한국 교회도 잘할 것이고, 한국 교회가 잘하면 세계 기독교도 잘 할 테니까.

“나나 잘 할게요.”

결론은 쌈박하게 났지만 적용이 문제였다. 세상에 많고 많은 친절한 금자씨 같은 사람이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너나 잘 하세요.”하면서(물론 정면에서야 말하지 않겠지만 속으로) 이상야릇한 웃음을 짓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살아야하는 것일까.

 

교회에서는?

일곱 명의 속도원 앞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속회 인도를 해야 하는 속장으로서, 모시고 가야만 발걸음을 옮기는 남편 권사님을 위해 본드처럼 붙어서 가는 남자속회 회원으로서, 개척 교회를 도우면서 주로 주방에서 식사 봉사를 하는 여선교회 임원으로서, 금요일 오후 연습은 한번도 참석하지 않는 비모범적인 가브리엘 성가대원으로서, 교인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위로를 나누고 조가를 부르는 키노르 중창단으로서, 대내외 행사 때 동원되는 에스더 성가대원으로서, 일년에 몇 번 발간되는 푸른 초장 편집위원으로서, 전 후반에 걸쳐 짧지 않은 시간 진행되는 매주

목요일의 성인학교 학생으로서, 나나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교회에서 억지로 맡긴 직분은 아니다. 가브리엘도 에스더도 키노르도 성인학교도 모두 내발로 찾아가서 하고 싶다고 한 것이었고, 그 직분을 감당하면서 나는 또 얼마나 많은 기쁨을 누렸던가! 이렇게 중복되는 직책을 맡고 있는 것은 우리 교회에서 그다지 놀라운 일도, 희귀한 일도 아니다. 교인은 누구나 속회, 가정속회, 그리고 선교회에 들어가게 되어 있으니 기본이 셋 아닌가. 거기다 봉사 부서 두어 개 합치면 평균 5개 이상의 직책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진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여러 개의 직분은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하기 매우 힘들다는 것이다.

 

아니, 세상 사람들은 내가 교회에서 잘하고 못하고는 볼 수 없으니 알 수도 없을 것이고, 관심도 없으렷다. 하면 세상에서 나나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십 년 전, 아파트 입주 한 며칠 뒤 앞집도 이사 왔다.

현관문만 열면 마주보이는 앞집은 그러니까 입주 동기인 셈이었다. 십 년 동안 계단에서 열 번쯤 마주쳤고, 쓰레기 버리다가 두 번쯤 마주쳤다. 늘 웃으며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했다. 그 뿐이었다.

 

한 달 전, 앞집에서 벨을 눌렀다.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안녕히 계시라, 는 것이었다. 밖을 보니 짐을 다 실은 이삿짐 트럭이 시동을 걸어놓고 있었다. 결국 나는 십 년 동안 앞집 현관에도 한 번 못 들어간 것이다. 나는 늘 바빴고, 어딘가에 집중하느라 이웃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교패가 번듯하게 달리고, 가끔 찬송가도 흘러나오며, 주일날이면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소리를 앞집에서는 십 년 동안 들었을 것이다.

나는 앞집 아주머니가 (나 하나 때문에!)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무정하고, 이웃에 대해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으며, 빈 말이나마 차나 한잔 하자는 말 한마디조차 안하는 싸가지 없는 사람들이라고 매도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저, 이사한 곳에서는 아주 품성 좋은 교인을 만나 내가 뿌려놓았던 좋지 않은 기억이 사라지게 되기를.

 

작년부터 일주일에 한번씩 동사무소 문화의 집에서 도서위원으로 한나절씩 봉사를 했다. 처음 몇 개월간은 그럭저럭 잘 해나갔다. 문제는 성인학교를 하게 되자 요일이 겹쳐지면서 어떡하든 다른 요일로 조정해야 했다.

“수요일은요?”

“그게... 어디 가야해서요(키노르 중창단 연습과 속장 속회공과 공부, 그리고 에스더 성가대 하러 교회 간다)”

“그러면 금요일은요?”

”그게... 그날도 좀 바쁘거든요.(속회예배 드리러 간다) 아참, 토요일은 되는데요?“

그 도서위원이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주 5일제라 토요일은 문화의 집도 쉬거든요. 그런데 목요일은 왜 안 되시는 거죠?”

“ ......”

여러모로 애썼지만 겹친 요일을 바꿀 수 없게 되자, 나름대로 우선순위에 따라 도서위원직을 삼개월정도 휴직(도대체 봉사에도 휴직이라는 것이 있는지 모르지만)하겠다고 했다. 내가 펑크 낸 시간은 그렇지 않아도 잡무에 시달리는 직원이 대신 해주었다. 알고 보니 성인학교 과정은 거의 4개월이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만 연발하던 어느 날 동사무소에서 전화가 왔다. 하려면 성실하게 하고, 그렇게 하려면 그만 두라는 것이었다. 나는 성경에서 머리위에 숯불을 올려놓는다는, 얼굴이 뜨듯해지는 상황을 너무도 확실하게,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다른 도서위원들이 내가 교회 다닌다는 것을 모르기를 바란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대명제를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실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겠다고(그래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겠지)늘 마음을 다지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사회나 이웃에게는 세상 사람들의 기본값도 못하는 나. 그럴 때마다 어디선가 친절한 금자씨가 불쑥 나타나서 말한다.

“너나 잘 하세요.”

나는 자꾸 가슴에 되새긴다. 그래, 내가 이웃에게 잘하면 우리 교회가 잘하는 거, 우리 교회가 잘하면 한국 교회가 잘하는 거, 한국 교회가 잘하면 세계 기독교가 잘하는 거......

나는 나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쳐준 금자씨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친절한 금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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