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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 가로되

추억의 알찬 소세지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6. 6. 16.

거의 일년 만에 백설햄 추억의 알찬 소세지부침을 만들어 먹었다.

눈물겨웠다.

지난 일요일, 연어회를 얼음에 쟁여서 우리집까지 공수해오신 친구 부부와 대화 중 나온 말.

내가, 하고 운을 떼는 나의 표정이 어떠했을까?

"작년 7월(발병시기를 말한다)이후 그렇게도 좋아하던 부침개를 한 번도 못만들었엉."

"아니, 왜?"

"몸에 안좋다고 서방님이 야단해설랑 내가 그렇게도 좋아하는 소세지부침도 못만들어먹었궁."

거짓말 안보태고 서러움에 눈물이 핑 돌았다.

친구 눈이 똥그래졌다. 아니, 왜 몸에 안좋다는 거지? 가끔 먹어도 될텐데. 포도씨유나 카놀라유로 하지않아?

"당근. 기름은 모두 카놀라유, 올리브유, 포도씨유 뿐인걸. 그래도 안된다구....잉잉"

 

나는 남편의 식생활, 취미생활에 제재를 가한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남편은 나의 식생활을 간섭하는 취미가 계시다.

엊그제도 남편 앞에 놓인 크림 생맥주 몇 모금 얻어마시느라 애교작렬시켜야 했다. 한잔 술에 마음이 너그러워진 남편이 슬쩍 한 잔 더 시켜 어찌하여 당신과 나 사이 중간 지점에 놓는가 말이다. 남편이 한눈 파는 척 하면 얼른 한모금씩 홀짝거리는 나를 (은근)귀엽게 보아주는 것을 내가 모를 줄 알고?

 

어쨌든

친구의 말에 힘입어 월요일 수퍼에 들른 김에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백설햄 추억의 알찬 소세지하나를 집어들었다. 내 입맛에 따른다면 수많은 옛날 소세지 제품 중에서 추억의 알찬 소세지가 가장 옛날 맛이 났다.

크고 길쭉해서 숨길 수도 없는 터라 대놓고 말했다.

"나, 소세지 결핍증 걸려서 죽을 것 같아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사왔엉"

어이없다는 표정의 남편. 깊은 한숨을 쉬는 남편. 지금 제정신인가 하는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는 남편.

아니, 내가 뭐 그리 죽을 짓을 했다고!

어차피 사왔으니 어쩔겨!

그리하여 화요일, 수요일, 오늘 목요일까지 매일 아침 삼등분한 소세지를 계란물에 풀어서 부쳐 한 접시 그득하게 올려놓으시고 야금야금 먹었다.

그렇게

오늘 마지막 소세지부침을 먹는데 이거 다시 언제 맛보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하니 하염없이 슬퍼지는 것이었다.

내가, 이 나이에, 소갈비도 아니고 소세지부침 하나 마음대로 먹지 못하다니 내 목숨이 산 목숨인가 아닌가.

 

그래도 사흘동안 매일 아침 소세지부침으로 행복했어라.

다시 언제 슈퍼에 가서 추억의 알찬 소세지를 집을 수 있는 용기가 생길른지 알 수 없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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