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6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 가로되

꽃도둑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6. 6. 18.

하나님.

멋진 토요일 아침 문안인사 드립니다.

오늘은 아침 산책길에 그만 꽃도둑이 되었어요. 정말 저는 전혀 그런 생각을 해본적이 없는데요, 앞서 가시던 분이 들꽃무더기 앞에서 서성이며 꽃을 꺾고 계시더라고요.

아, 꽃을 꺾고 계시는구나 하면서 무심히 지나쳤는데 걷다보니 여기 저기 들꽃더미들이 (그제야) 눈에 뜨이데요? 그래서 난생 처음으로 공연히 두리번거리면서 여린 줄기를 꺾었어요.

미안하다, 이것들아. 내가 지금 뭔가 헤까닥한 모양이다. 하면서.

 

잠깐 하늘도 쳐다보았죠. 어깨를 으쓱하면서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짓꺼리 용서하실꺼죠? 아양도 떨었잖아요.

죄송. 들꽃의 소유주가 하나님이시니 하나님께 죄송한거죠^^

아시잖아요, 제가 꽃에 대한 애착이 미미한 거요.

아름다움의 대명사인 꽃을 보면, 어쩐지 교만해보이고, 잘난척 하는 것처럼 보이고, 해서 꽃이라는 단어도 그닥 좋아하지 않게 되었는데요, 작고 여린, 그저 소박한 하얀 색의 들풀 무더기를 보니 애잔하면서 이쁘더라고요.

 

얼마 전 이장우 목사님 설교에서 꽃이 아무리 예뻐도 내 마음이 상해 있으면 그 꽃을 확 꺾어버리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말씀에 완전 동의!

이년 전, 길고 어두운 터널 한 가운데를 기어가는 듯한 시간을 보냈을 때

여든 몇 살의 어르신을 오전에 몇 시간 케어한 적이 있었잖아요. 그 어르신이 요양원가시기 전까지 한 열달 했나? 그 때, 어르신을 휠체어에 태우고 허름한 아파트를 한 바퀴 도는데 흐드러진 철쪽무더기를 보고 이렇게 생각했더랬죠.

너는 이쁘고 나는 비참하다. 너는 아름답고 나는 수치스럽다. 너는 빛나고 나는 죽어간다. 너는 화려하고 나는 누더기같다(구더기라고 쓰고 싶지만 참아야지).... 그렇게 수없이 비교하면서(감히 꽃에 비교하다니) 상대적 빈곤에 시달렸더랬죠. 아, 그때 정말 힘들었어요. 꽃이 아름답게 피어있을 수록 더욱 고통스러웠던 기억.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나는 왜 지옥을 헤맬까. 어르신 휠체어를 밀면서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던 기억...

 

오늘 새벽에 만난 들꽃은 소박하고 정결해 보였어요. 싱그러운 아침이슬을 머금고.

힘을 주어 여린 줄기를 꺾는데 미안했어요. 하나님, 오늘 대체 내가 왜 그런 걸까요?

고요하고 아름다운 일주일이 이렇게 가고 있습니다. 모두모두 하나님의 은혜죠, 뭐.

더 이상 무엇을 바랄까, 하면서 유리 그릇을 하나 찾아  꽃들을 꽂았습니다.

처음 해보는 짓꺼리라 별로 조화롭지는 않아보였지만 신기했어요.

내가 꽃도둑도 되어보는구나. 단 한번도 탐내지 않았던 것들을 꺾을 수도 있구나.

 

며칠 째 오래된 원고를 교정하고 있는데요, 참 많이 한심했습니다. 글쓰기가 뭔지도 모르면서 마구 써내려간 것 같아요.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어요. 지금도 다시 화끈거리네. 창피해서...

나를 이기고 글을 다시 만들려면 시간 많이 걸릴 것 같아요.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할 부분, 아셨죠?

아, 커피가 식어가네. 딱 한 모금 마시고 이글 또 줄줄 쓰느라 잊어버렸네요.

 

오늘 성경모임을 기대합니다.

들꽃같은 순수함으로 가겠습니다.

저를 만나는 모든 사람이 미소짓게 해주시기를요.

사랑해요, 나의 하나님.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어요. 꽃도둑의 장물입니당^^)

 

 

 

'2016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 가로되' 카테고리의 다른 글

Needs  (0) 2016.06.20
남편의 꽃꽂이 솜씨^^  (0) 2016.06.19
추억의 알찬 소세지  (0) 2016.06.16
가끔 삶이 지겹다  (0) 2016.06.14
실비 오는 소리  (0) 2016.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