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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 가로되

코 앞의 하나님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4. 12. 22.

"아니, 뭘 이렇게까지.....^^"

엊그제 토요일, 내가 하나님께 드린 속엣말이다.

"하나님. 굳이 이렇게 하지 않으셔도 제가 다 알고 있거든요~~"

이 말은 약간 면구스러진 내가 다시 하나님께 드린 속엣말이다.

 

사연은 수요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요일 수필 모임에서 한 년(이뻐서 하는 욕)이 이것 저것 챙겨주면서 아무도 모르게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하트가 그려진 새빨간 카드였다. 카드의 내용은,

"자기야. 원두 커피 분쇄기 갖고 싶다고 했지? 커피 마실 때 가끔 생각이 났어. 내가 골라보려고 했는데

자기 취향에 맞는 거 고르라고...."

그 사이에 끼어있는 신사임당 두 장.

와, 진짜 멋진 크리스마스 선물이넹. 왕 감사!

나는 거의 입이 찢어질 지경이었다. 정말 갖고 싶었던 것이다. 아침마다 드르륵드르륵 커피를 갈고 그 향내를 맡으며

드립 커피를 내려서 마시고 싶었던 것.

신이 나서 인터넷을 검색해보았는데 마음에 드는 커피 분쇄기 고르기도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올해 안에 꼭 살 결심을 하고.

 

그리고 토요일 아침.

성경공부 가려고 꽃단장하면서, 쯔쯔 했다.

일주일부터 선크림이 떨어졌는데 아직도 리필이 안된 것이다. 할인코너에 가면 비싸지 않게 살 수 있는데 그런 곳은

왜 그렇게 발길이 안가는지 모르겠다. 선크림 과정을 건너뛰면서 생각했다.

이것은 화장품 회사의 상술이야. 옛날 선크림이 존재하지 않았을 때는 대체 어떻게 살았느냐고욧.

 

전날 준비해 놓은 굴과 오징어와 조갯살을 듬뿍 넣은 김치부침개를 열라게 부치면서 진짜 행복했었다.

선물 교환이 있다기에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던 더치커피 한통을 골랐다. 

올해는 더치 커피 실컷 마셨길래 커피 좋아하는 분에게 그것이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따끈한 김치 전 한 보따리 싸들고 성경공부 크리스마스 파티장으로 고고씽~

 

과연. 대단히 파티스러운 파티를 끝내고 선물을 나누는데....

나에게 돌아온 것은?

누구나 받은 '무한도전'달력( M본부 드라마 부국장이신 이 감독님의 선물. 대체 이런 유치한 달력을 하면서 받았는데

혹시나 해서 아들에게 가질래 하고 전화했더니 뛸 듯이 기뻐한다. 알고 보니 우리 하나가 무한도전 광팬이라는군.

어제 고스톱 칠 때 가져갔더니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대박~'이라는 것이다. 참나...정말 세대 차이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50도 선크림!!

마음속으로 으악,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하나님은 자상하기도 하셔라~~

내가 준비한 더치커피를 받은 김 뭐시기 탈렌트는 거의 죽음이었다. 아내가 무지하게 좋아할 거라능~~

그리고... 파티의 끝무렵, 정작가가 나를 구석쟁이로 은근히 부르더니 쇼핑봉투 하나를 전해주며 하는 말.

"이거...모모 감독님이 선생님 드리라고 특별히.... 저보고 전달하라고 하셔서.... "

내성적인 감독님은 선물도 제대로 전해주지 못하신다. 나는 그런 감독님이 참 좋다. 멀찌감치 서서 보고 쑥스럽게 웃으시기만.

그 봉투안에는  일제 커피분쇄기, 커피 거름종이, 블루마운틴 원두 알갱이 커피, 커피 내리는 받침대까지 세트로 구비되어 있었다.

이게...

이게...

이게 뭐지?

 

입에 헤 벌어진 채 집으로 돌아왔다.

커피분쇄기를 사려던 빨간 카드 속에 있던 신사임당 두 장은

다음 주일로 다가온 남편 생일날 축하금으로 고스란히 남겨놓기로 했다.

그러면서 위쪽을 흘낏거리며 절로 흘러나오는 미소를 감추지 못하는 나^^

"아니...하나님, 뭐 이렇게까지...."

 

즐거운 월요일 아침.

하나님이 주신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클래식을 들으며

하나님이 주신 선크림 바르고

하나님이 주신 원두커피를 갈아서 드립 커피 내려서 한 잔 마시고

그렇게

코 앞에 계신 나의 하나님과 어깨동무 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조은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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