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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 가로되

하나님의 디데이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6. 6. 22.

디데이

  • 계획한 실행하기로 정한

 

 

 

 

신생아 머리통만한 감자 두 알을 깎아 감자볶음을 만들어 아침을 풍성하게 먹었다. 하지 감자 한 박스 사서 쟁여놓고 싶었지만 저장할 곳이 없어서 하는 수 없이 2890원짜리 봉지를 샀다.

블랙 커피에 얼음을 띄워 마시면서 김민희 홍상수 스캔들을 읽고 있다. 누가 보내준 것인데 소설처럼 재밌다.

마침 엊그제 결혼 기념일에 남편과 손잡고 집앞 메가박스에서 '아가씨'도 보았겠다, 김민희의 매력적인 독회 장면이 아삼삼하였다. 동성애 장면은 너무 이쁘게 찍으려고 고심한 흔적이 보여 점수를 좀 깎였다.

아침 뉴스를 보면서 난생처음 패티큐어를 한 발톱을 깎았다. (사랑스런 하나가 두시간이나 공을 들여 해 주었다. 나는야 고객이자 실험대상) 네이비 블루에 사파이어까지 박은 엄지발톱을 마치 알라딘 마술램프처럼 문지르는 버릇은 그때부터 생겼다. 나는 자면서도 문득, 하면서 엄지발톱에 도드라져 있는 작은 구슬을 만진다. 그 감촉이라니. 나는 마치 감미로운 또 다른 세상에 있는 느낌이었다.

 

오늘 아침 산책은 땡쳤다. 어제 밤 박영선 목사님의 설교에 필이 꽂혀 몇 개나 거푸 듣는 바람에 너무 늦게 잠들었고, 뱃속 사정이 그닥 편치 않아서 누워 밝아오는 베란다를 바라보면서 시체놀이를 했다.

기도는 하지 않았다. 머릿속이 거의 말갛게 비어진 느낌이었다. 눈을 말똥말똥 뜨고 굴리다가 내가 좋아하는 초콜릿색 차렵이불을 바스락거리면서 이리저리 뒤척이며(꿈틀거리는 모습이었겠지)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강박은 없었다. 빨리 일어나서 시를 필사해야 하는데, 산책을 가야 하는데, 말씀을 들어야 하는데, 그런 거 없었다.

오늘은...하다가 떠오른 생각.

오늘 두 시에 대추방울토마토가 배달되어 오기로 했군. 배달오는 친구는 올해부터 토마토농장까지 하게 되었다는 백석 갑부인 나의 네번째 제자이다.

두 박스는 내 것, 다른 두 박스는 친구의 주문으로 내가 배달해 주기로 했다.

원래 월요일에 오기로 되어 있던 터라, 남편에게 4만원을 빌려 가방속에 고이 넣고 있었는데 다행히 오늘 온다는 것이다.

 

어제, 출판사에서 계약금조로 선인세 100만원을 보내왔다.

이제 나는 놀라지도 않는다.

어제 헬쓰가면서 은행에 들러 미얀마 선교비용 40만원 이체해드리고 30만원은 남편 용돈으로 빼고, 나머지 30만원은 25959원 남아 있는 내 생활비 통장으로 이체했다. 25일까지 너무 힘들게 쪼이지 말라고 그분이 하신 일이다.

 

2011년 6월에는

5년 후의 내가

헬쓰에 가서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자전거를 타고 남편과 영화를 보러가고 발톱에 패티큐어를 하고 출판사에서 선인세를 받고 미얀마 선교여행을 가리라고는 전혀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었겠지.

아들과 아들의 연인과 매주 만나 고스톱을 치고, 작고 아름다운 새 아파트에서 화장실의 물기를 수건으로 닦고, 아침마다 새처럼 노래하며 산책을 하고, 시를 필사하고, 독서회에 가서 발표를 하고, 무엇보다 매주 토요일마다 성경모임을 가서 천국같은 시간을 오년 동안 보내리라고는 정말 생각할 수 없었겠지.

(2011년 7월부터 성경모임에 나갔던 것 같다)

매달 나를 죽음같은 고통에 이르게 했던, 소망없는 삶을 살게 했던 무지막지한 짐이었던 나의 모든 빚을 탕감받고, 나의 소원대로 지갑에 있는 금액만큼만 살아갈 수 있게 된 지금이 정녕 꿈이 아니다.

나를 힘들게 했던 늙고 병든 개도 죽었고, 엄마, 저녁에 뭐야, 하면서 나를 들볶았던 아들도 분가하여 제멋대로 잘살고 있고, 딸이 이보다 더 이쁘고 사랑스러울까 싶은 아들의 여자친구인 하나와 일주일에도 몇 번이나 같이 서너시간을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도 믿을 수 없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나의 산타.

커피에서부터 샌달에서부터 온갖 화장품에서부터 케이크와 초콜릿과 고춧가루까지. 거의 모든 생필품과 내가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물심양면으로 안겨준다.

게다가 이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생면부지의 믿음의 동역자들이 매일 순간순간 끊임없이 격려해주고 있는 이 감격을 대체 어떻게 감사해야 할까.

눈물을 흘리며 피아노를 쳤던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를 오늘 다시 찬양하리라.

 

오년 전, 내가 5년 후를 기대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5년 후를 나는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하나님의 열심을 보고만 있으면 되었던 것이다.

 

이제 오후가 되면 나는

깨끗하게 씻은 대추방울토마토를 먹고 남편의 손을 잡고 수요예배를 가겠지.

고요하고 평화로운 밤이 오면

가물거리는 눈을 비비고 읽던 책을 덮고 바시락바시락 감촉이 좋은 이불을 들추고 눕겠지.

 

내일 산책길에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 들꽃들을 만날까.

내일 또 내일에는 또 어떤 하나님의 열심을 보게 될까.

 

 

 

(그땐 너무 힘들어서 5년후를 계속 생각했나봐. 열씨미 씨를 뿌려야한다는 것은 내 생각이었고

나는 결국 가만히 있기만 했다능........2011년이 나의 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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