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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를 들었다

100주년 교회의 새벽묵상 중에서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2. 10. 18.

(오늘 아침 새벽묵상에서, 또 하나의 (하나님의)지혜를 알게 되었다. 이쪽일까 저쪽일까 고민하던 것들이 좀 앞이 보이는 느낌?

이런 좋은 말씀을 왜 이제껏 목사님들은 해주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 이것은 원망 섞인 하소연이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양심을 갖고 판단해간다면 둘 중 어느 길이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으리라 저는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이쪽이냐 저쪽이냐를 정해주는 지시적 개념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달려있다고 믿을 때 더 마음에 평강이 찾아옵니다.

,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이쪽인지 저쪽인지 철저히 검증하면서 따라가려 한다면 매우 이성적으로 탁월한 합리성과 지성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든 하나님의 뜻을 분간하고 따라가는 데 있어 이러한 결정은 매번 두렵고 부담스럽지 않겠습니까? 잘못된 결정을 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기적인 맘으로 접근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선한 마음이 동기가 되어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나아간다면 그것이야말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둘 중 어느 한 쪽만이 틀림없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정말 잘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만, 어느 곳을 선택하여 가더라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면 그만큼 분명하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일은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님들. 이 같은 상황(이 길일까 저 길일까 헷갈리는 상황^^)에 처하면 단 한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일입니다. 고난당한 자에게 필요한 것은 함께해주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때 가장 필요한 것은 견디는 것이지 이겨내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그 험난한 과정을 다 뒤엎고 이겨낼 수 있겠습니까? 그저 힘없고 어찌할 수 없는 순간에는 비참하지만, 또는 실패자요 낙오된 자처럼 여겨질지라도 그 자리를 버텨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때로는 그 자리가 너무나 힘들면 나중엔 그 자리를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자살로 달려가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우리가 버텨내기만 해도 이 기나긴 랍사게의 말이 우리에게 신앙적인 말로 들려질 수 있습니다. 비록 적의 말이지만 랍사게는 그 누구도 의지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앗수르 왕을 의지하면 약속한 복을 내려주겠다라는 말이 이 고난의 위기 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메시지로 들릴 수 있습니다.

앗수르 왕에게 항복하는 것이 아니라 더더욱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약속의 내용을 기억해내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말씀으로 들려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큰 위기의 순간에 닥쳐있을지라도 우리가 하나님 바라보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눈과 귀를 열어 적군의 입술에서조차 들려오는 주님의 위로와 주님의 되물으심을 경험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오늘 이 아침이 바로 그런 주님의 말씀을 우리 안에서 들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 뜻대로 잘 살려고 해도 세상에는 우리보다 더 능력있고 더 힘 있는 세력과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과 경쟁하다 금새 지치고 금새 평정심을 잃어버립니다. 심지어 남 유다처럼 잘 믿어보려 하는데 우리들 삶의 터전이 엎친 데 덮치는 격이 되면 도저히 살아갈 희망을 찾지 못할 때가 참 많습니다.

주님. 바라고 원하건대, 절체절명의 고난의 위기가 닥쳐올 때 우리가 주님의 뜻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와 동행해주시기에 우리가 평정심을 잃지 않고 결정되는 대로 걸어갈 때 그 길이 바로 하나님의 길이었음을 알게 해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지금 힘든 시기라면 그저 버텨내면서 하나님 바라봄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비록 우리 앞에 서 있는 원수의 말일지라도 그 말과 행동이 오히려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인이요 하나님의 메시지가 되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작성: 박종호)

 

(박종호 목사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