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린구유에 도착하자 나는 고민에 빠졌다.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에게 잊혀졌던 대규모의 지하도시다. 발견되기 전, 몇 천 년 세월을 사람들은 지하 도시 위에 밭을 일구고 집을 짓고 대대로 살면서도 그 존재를 몰랐다고 한다.
지하도시라...
나는 미미한 폐쇄공포증이 있었다. 그런 증세가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몇 년 전이었다.
베이징 연극단이 공연하는 패왕별희를 보러 갔는데 마침 좌석이 중간에 있었다. 사람들이 로얄석이라고 좋아하는 앞자리 중간이었다. 사람들의 다리를 비집고 자리에 앉으면서 가슴이 답답해왔다. 밧줄에 꽁꽁 묶인 것처럼 온몸을 옴싹달싹할 수 없었다. 호흡이 가빠지고 알 수 없는 두통과 함께 가슴이 폭발할 것 같은 충격이 왔다. 양해를 구하고 가장자리로 좌석을 바꾸고 나자 조금 가라앉았다.
그 후, 멋모르고 갔던 판문점 근처 땅굴 견학에서 나는 거의 쓰러질 뻔했다. 좁고 어두운 곳에 들어가면 여지없이 숨이 막히고 진땀이 났다. 경미한 폐쇄공포증이 아닌가 하고 자가진단을 내렸다.
언제인가 교회 어느 모임에서 강원도 한계령을 가게 되었는데 창문을 열 수 없는 승합차의 맨 뒤 칸에 앉데 되자, 나는 그냥 내려버렸다. 저, 안 가겠습니다.
곰곰 생각하니 내가 마음대로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그것을 못 견디는 것 같았다.
해외여행을 처음 했을 때 가장 큰 고민이 바로 비행기 탑승이었다. 일단 비행기를 탔는데 어느 순간 내가 갇혀있다, 내가 나가고 싶어도 못나간다, 하는 생각이 들기만 하면 미쳐버릴 텐데 이를 어떡하지...
첫 비행시간은 다섯 시간이었는데 그 다섯 시간 동안 나는 내 머릿속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 갇혀있다 라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기를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데린구유는 깊이 55미터의 지하 도시였다. 땅굴처럼 깊게 내려가서 지하 도시를 걸으면서 관람해야 하는 것이다. 그 좁고 어두운 길, 가면 다시 되돌아나가기 힘든 곳을.
각 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데린구유 입구에서 나는 한없이 망설였다. 이 곳 어디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까. 순례자들이 지하도시를 돌아보면서 한없는 은혜 속에 잠길 동안 나는 어느 찻집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차를 마시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열 살 안팎의 소녀들이 관광객 틈 사이로 다니면서 구걸을 하고 있었다. 무엇인가 조악한 관광 상품을 들고 있는 소녀도 있었고, 그냥 손만 내미는 소녀도 있었다. 낡고 허름한 원피스를 입은 소녀들의 바싹 마른 정강이가 애처로웠다. 소녀들의 눈망울은 어쩌면 그렇게도 크고 아름다우며 검은 것일까. 흰자위는 하얗다못해 파르스름했다. 터키의 옥빛 하늘을 닮았다.
그 가난의 슬픔을 나는 안다. 먹어야 하고 입어야 하고 어디에선가 몸을 뉘어야 하는, 생존의 고통을 나는 알고 있다. 소녀들에게 지갑을 열려고 하는데 가이드가 만류한다. 버릇을 들이면 다른 여행객들에게 민폐가 된다는 것이고 결국 소녀들로 하여금 구걸을 생존의 수단으로 택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기어이 조악한 팔찌를 몇 개 사고 말았다. 겨우 1달러였다.
숨이 막히지 않게 해달라고, 고통당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 후, 데린구유의 지하 동굴로 내려갔다.
미로처럼 얽혀있는 도시. 교회, 광장, 주방, 포도주 시설, 하다못해 병원까지 있는 완벽한 도시였다. 박해 시절 기독교인들의 일시 피난처였던 데린구유.
동굴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아,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문명이 과연 필요한 것인가. 저렇게 동굴을 파고 살 정도로 신앙이 깊은 사람들은 대체 무엇을 낙으로 살았을까. 그곳에서도 아이를 낳고 키우고, 다시 그 아이가 자라 또 죽을 때까지 그들은 하나님의 그 무엇을 발견했던 것일까.
그토록 좁고, 밑으로 지하 몇 층까지 내려갔는지 모르겠다. 그 여러 가지의 지혜로운 시설을 보니 참 인간이란 어디서든 살 능력이 있구나, 하는 경탄이 저절로 나왔다 아, 정말 신앙심이라는 것이 그토록 무서운 것이로구나, 하는 경외감.
굴속에서 사회, 문화, 나라, 그런 문명과 완전히 단절된 채, 그곳에서 생로병사를 진행한다는 사실은 좀 무섭기까지 했다. 많게는 십만 명이 있었다니 정말 굉장하지 않은가!
배터리가 없어서 사진을 많이 찍지는 못했지만 다른 분들이 대신 몇 장 찍어주었다. 조심스레 부탁하면 모두 기꺼이 사진을 찍어주셨다. 그토록 친절한 것은 아마도 같은 교인이라는 끈끈한 유대감이 작용한 것이 아닐까.
'그리스터키 성지순례' 카테고리의 다른 글
9. 비시디아 안디옥 & 파묵칼레 가는 길 (0) | 2014.12.16 |
---|---|
8. 콘야(이고니온) (0) | 2014.12.16 |
6. 파사바흐체 골짜기 (0) | 2014.12.16 |
5. 카파토기야 (0) | 2014.12.16 |
4. 수리아 안디옥 (0) | 2014.1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