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를 하기로 했다.
꾸려온 짐 속에 있던 이불과 베개를 둘둘 말았다. 장롱 깊은 곳에 처박아두었던 얇은 이불과 오래 된 베개에서 큼큼한 냄새가 났기 때문이었다. 불결을 말해주는 냄새. 나를 세탁할 수 없으면 더러운 이불이라도 빨아야지 하는 심정이기도 했다.
아래층에 공용 세탁실이 있었다.
최신 성능의 세탁기 곁에는 세제와 섬유유연제도 구비되어 있다. 세탁기를 돌려본 적이 없는 나는 설명서를 세심하게 읽고, 조심조심 동작 버튼을 눌렀다. 55분. 시간이 떴다. 물줄기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세탁기는 나의 더러운 빨래를 깨끗하게 빨아줄 것이다. 그것들이 묵은 세월의 때를 벗는 동안 나는 너른 잔디밭을 거닐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커피 한 잔을 마시면 된다.
힘차게 돌아가는 세탁물을 보면서 생각했다.
왜 더러운 것들은 사라지지 않을까, 영원히?
닦거나 씻어도 해결되지 않는 많은 것들을 나는 알고 있고, 소유하고 있다. 그런 소유권은 정말 주장하고 싶지 않지만 그것들은 늘 스믈거리면서 핏속을 돌아다니는 바람에 그 ‘불멸의 불결’을 차라리 견디는 것이 사는데 편안할 것이라고 나 자신에게 협상카드를 내밀었다. 그게 벌써 언제 적 일인가? 십년 전? 이십년 전? 그보다 더 오래 전?
...비겁하지만 그게 옳았다고 생각한다. 아침마다 일어나서 녹슨 거울을 닦듯 그렇게 수많이 더러운 것들의 목록을 내장 속에서 끄집어내어 이렇게도 닦고 저렇게도 닦으면서 하루를 맞이한다는 것이야말로 끔찍하지 않은가!
게다가 아무리 닦은들 줄어들거나 희미해지거나 없어지지 않는 것들인데 하물며! 그런데 그렇게 살다보니 습관이 되었는지 그 불결함을 즐기게 되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랄까.
언제인가 열이틀 동안 발을 닦지 않았다고 수업 중에 말해서 모두를 기절시킨 적이 있는데, 나는 가끔 꼬질꼬질한 발을 보면서, 문지르면서, 그것을 즐기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야 우스개소리로 말한 표면적인 문제이지만 깨끗하지 않은 어떤 것들의 목록을 비밀 소장품처럼 간직하고, 역겹고, 추하고, 더러운 것들을 가끔씩 꺼내보면서 희열에 빠질 때도 없지는 않으니, 그것도 참 못 말리는 심성이었구나.
세탁기가 나를 대신하여 열심히 빨래를 하는 동안 고요한 잔디밭을 혼자 거닐면서 담배를 피우면서 문득, 대체 핏속에는 얼마나 많은 불결한 것들이 쌓여있을까 궁금해졌다.
기억을 계속 우려내고 있는, 그러므로 더욱 진해지고 걸쭉해지는, 그러므로 원활하게 핏속을 떠돌아다닐 수 없게 만드는 이름들과, 이름들이 존재했던 시간들이 느리고 길게 되풀이되면서 산화철처럼 피를 부식시킨다. 부서지는 피.
그렇게 녹슨 남자의 가슴을 만진 적이 있다. 손끝에 경멸이 녹처럼 묻어났다. 더러운 경멸! 슬럼프는 자기표현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것이라고 그 인간은 말했다. 똑같이 더럽게 굳어져가는 주제에, 똑같이 녹슬어 가는 주제에, 그는 잠언을 입에 달고 다녔다.
어쨌든 나에게는 보물 목록처럼 소중하게 간직하는 불결한 것들이 매우 많았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이물질이거나 불순물이 아니었다. 나를 살아있게 한 것은 아마, 그런 나쁜 피가 흐르는 연유일 터이다. 나쁜 피! 그런 나쁜 피를 결코 투석하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하면서 살아온 날들도 있었다.
갖은 상념으로 가득 차 잔디밭을 거닐었지만 시간은 아직 반도 흐르지 않았다. 길기도 하여라, 55분.
어차피 불결에 대해 생각한 만큼, 남은 시간 동안 나날이 불결해가는 내 몸도 닦기로 했다.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샤워를 하기에는 너무 비좁은 욕실에 들어갔다. 몸을 돌리기도 쉽지 않은 공간이었다. 늙어가는 몸을 고스란히 비춰주는 거울이 흐릿하여 다행이었다. 뜨거운 물줄기를 맞으면서 온 몸 가득 거품을 묻히면서 갑자기 쓸쓸해졌다. 마음이나 영혼은 보이지 않아 가늠하기 힘들다 해도 그것을 담고 있는 몸은 이렇게 만질 수도 있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몸이 하는 말을 아직도 해독하지 못했다는 느낌? 이제껏 눈에 띄지 않았던, 길게 자란 손톱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 언제던가? 손톱을 깎으면서 쓸쓸했던 마음을 적은 적이 있다.
-나는 내 몸과 이야기하고 싶다.
손톱을 자르기 전, 슬픔처럼 쑥쑥 잘도 자라는 그 손톱을 자르기 전 손을 깨끗하게 비누로 닦고 촉촉해진 손톱을 어루만지고, 곧 내 몸에서 떨어져나갈 눈썹 같은 손톱을, 떨리는 손톱을 떨리는 손으로 쓰다듬는다. 그것은 나의 몸이었지만 곧 나와 헤어져야 한다.
살아온 많은 날, 나는 그렇게 내 몸을 잘라왔다.
심장이 자란다면, 그렇게 베어낼 수 있었을까, 눈물이 그렇게 자란다면, 가슴이 쑥쑥 자란다면, 손톱처럼 팔이 길게 자란다면?
술 마시고 열이 나면 습관적으로 만지는 귓볼, 내가 그리워하는 어떤 사람이 다가와서 귀엣말을 해주기를 바랐던 어제, 그제, 그 전의 나날들이 귀 속 어딘가 들어가 이제 나오지 못한다.
나는 늘 그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했지만, 날마다 잠들기 전 그의 목소리를 기억하려 했지만 내 귀, 이제 그의 목소리를 구분할 수 없을 것이다.
다가올 어느 날 죽은 내 귀에 다가와 작별인사 해주기를 바라지만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비의 흐느낌과 바람의 노래와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와 꽃이 지는 소리들 속에 그의 소리가 묻혀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 몸과 이야기하고 싶다.
즐거웠던 한 때가 있었다면 그 때, 저릿저릿했던 감각들이 푸르게 자라던 그 때가 있었다면, 그때는 과연 언제?
그가 보고 싶어 살갗이 희열로 부풀어 오르고 그를 부르고 싶어 입술을 달싹이며, 그를 안고 싶어 두 팔을 넓게 벌릴 때, 그때가 있었다면 아직도 기억하는지?
손, 그의 손을 만지고 싶어 사무치는 손, 그에게 전화하고 싶어 자정 너머 달려가던 발, 힘줄이 툭툭 솟아오르던 정강이, 늘 허전한 가슴, 그 속에 있는 것들을 토해내고 싶었던 그 순간을 내 몸은 어떻게 견디었는지?
나는 내 몸과 이야기하고 싶다. 그를 보내고 손톱을 자르면서, 뭉텅 잘려나간 내 몸의 끝을 보았다.
사람들은 그것을 기억이라 부른다.-
빨래를 널었다.
너른 마당에는 길게 빨랫줄이 매어 있었는데 각종 색깔의 빨래집개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모습이 정겨웠다. 어디서 본대로 빨래를 탁탁 털어 반듯하게 아귀를 맞춘 후 마음에 드는 색의 빨래집개를 골라 단단하게 빨래를 고정시켰다. 살랑거리는 봄바람이 갓 빨아 널은 이불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다. 하늘을 보았다. 하나님께서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골고루 비춰주신다고 말씀하셨던 그 해가, 마악 구름 속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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