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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유배지에서 한 달

10-눈물 머금은 神이 나를 보고 계신다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2. 7. 3.

 

눈물 머금은 이 나를 보고 계신다

 

저기, 예수님이 나를 위해 기도하시네.

나는 지금 텅 빈 방에서 아프다. 어딘지 모르는 곳의 통증을 느끼고 있다. 맞은편 벽에 붙여 놓은 카드 크기의 예수님 그림을 나는 보고 있었다. 예수님 그림은 시선에 따라 성모 마리아로 바뀌기도 했다. 예수님, 나의 예수님은 기도하는 모습이었다. 두 손을 모으고 하늘을 쳐다보고 계시는 나의 예수님.

그 옆에는 바싹 마른 꽃다발이 매달려있고, 그 옆에는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은 벽걸이 고리 하나가 무엇을 매달까 고민하는 듯 보인다.

예수님은 계속 나를 위해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고 계시고, 나의 지난날들은 저 꽃다발처럼 완전히 말라서 만지면 곧 부서질 듯 그렇게 바싹 말라서, 죽은 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빈 고리에는 무엇을 매달까. 나의 미래에는.

 

나흘 째 나의 생각은 멈추어 있었다. 가끔 울었고, 아주 오래 동안 잠을 잤다.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밤에도 계속 잠을 잤다. 신기하리만큼 잠은 잘 왔다.

자야지, 하면서 똑바로 누워 두 손을 납작한 배 위에 올려놓고, 호흡을 고르고 깊은 숨을 쉬었다. 내가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아, 나는 계속 살아있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었다. 나는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이곳을 떠나는 것이다. 의지적으로.

 

깊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던 어느 목사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두어 달 전일까? 우연치 않게 처음으로 안수기도를 받았는데 그 목사님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세요.”

생각이 바람직하고 비전이 있는 생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

그렇다. 나는 아무 쓸데없는 생각에 가득 차 있는 것이다. 그 생각은, 나의 일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그런 부질없는 생각들이다. 엄밀하게 말한다면 생각하지 않은 생각이다. 내 머릿속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지만, 실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시퍼렇게 살아계시는 하나님은 이렇게 맑게 소외된 곳에서도 매 순간 설교 말씀마다 나를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 나의 하나님.

지금 다시 읊조리고 있다. 믿음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믿는 용기, 라는 말씀.

아멘. 하나님이 지금 이 시간 나와 함께 하시므로 말씀으로 나를 깨우치는 것을 압니다.

 

-금송아지라는 자기 숭배의 우상은 오늘도 존재합니다. 자아를 채우는데 주력하는 우리 모습을 직시하십시오. 자아 숭배자를 예배 숭배자로 바꿔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주인은 내 자신이 결코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와 법을 버리고 자신의 죄 된 생각과 의도를 내세우는 것, 그것이 죄입니다.

우리가 성령에 이끌려 살지 않으면 여지없이 이 자아를 채우고 만족시키는데 우리의 시간과 물질과 정력을 소비합니다. 조금만 방심하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자리에 우리를 올려놓는 우를 범합니다. 우리가 성령님의 조명하심 가운데 그리스도의 옷을 덧입고 매일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죄 된 본성은 오늘도 어김없이 우리의 자아를 만족시키라고 부축일 것입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다. 우리의 주인은 오직 한 분이며 그 분의 통치함 아래서 그 분을 좇아 살아가는 것이 가장 행복하고 가장 만족하는 삶이라는 것을.

 

새벽기도회에서의 목사님 말씀이었다.

으윽. 신음이 절로 나왔다. 살아계신 주! 시퍼렇게 살아서 나의 행동거지와 마음의 향방을 꿰뚫어보시면서 송곳으로 나의 희미한 정신을 뚫어버리는 하나님을 느꼈다. 몸서리쳐지는 경험이었다.

그 다음 새벽 예배의 말씀도 나의 마음을 완전히 박살냈다.

-사단은 우리 마음을 혼미하게 합니다.

혼미. 혼미..... 지금 나의 정신세계를 표현하기에는 혼미라는 단어가 얼마나 정확한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 새벽묵상을 읽었을 때 나는 항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확보된 싸움임을 잊지 마십시오. 이 지루한 싸움도 하나님이 끝장을 내시겠다고 약속을 하고 있는 확보된 싸움입니다...그러므로 여러분은 인내하십시오!

 

지난 토요일부터 목요일인 오늘에 이르기까지 파일을 열 힘조차 없었다. 책도 겨우 두 권을 읽었을 뿐이다. 파일속의 원고는 280장에 머무른 채 굳게 닫혀 있었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은 나의 머리는 무엇으로 채워져 있었던가.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나의 손으로는 무슨 짓을 했더란 말인가.

 

일주일 후의 이 시간쯤이면 나는 집으로 가 있을 것이다.

모든 짐을 꾸려 넣은 커다란 가방 몇 개를 풀면서 이곳의 흔적을 나의 일상의 서랍 속으로 책상으로 집어넣을 것이다.

묵전요를 지나는 산책길을 걸었던 운동화는 신발장에, 그곳을 지나다닐 때 입었던 옷가지는 서랍에 혹은 옷걸이에, 작은 세면대서 조물락거렸던 속옷이나 수건도 제자리에, 허름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얇은 담요는 다시 소파 귀퉁이에 자리 잡고 내가 낮잠을 잘 때 나의 아득함을 덮어줄 것이고, 지금 창밖을 바라보면 듣고 있는 이 음악도 집의 작은 내방에서 다시 듣게 되겠지.

 

 

한 달 전보다 불쑥 자란 나무와 수풀을 본다. 무성하다. 들을 때마다 뻐꾸기시계를 먼저 떠올려 참 미안했던 진짜 뻐꾸기들은 내가 이곳에 있지 않아도 여전히 뻐꾸기시계처럼 울 것이고, 여름은 깊어질 것이고, 세찬 장맛비가 그들의 열기를 식혀 줄 것이고, 한 여름의 더위가 머물고 가면, 내가 지금 바라보는 저 나뭇잎들은 하나하나 떨어질 것이고....

내일 쯤, 창밖의 풍경을 사진에 담아야겠다. 해가 가장 찬란하게 비추는 시각에 17살 소녀의 뺨 같은 햇살과 함께 빛나는 초록의 덤불의 찰나를 가져버릴 것이다.

 

시체처럼 늘어져 있던 몸을 겨우 일으켜 산책을 나갔다.

담배를 사기 위하여 작은 가게를 들렀다. 거의 언제나 닫혀 있던 가게는 모처럼 문을 열고 있었다.

-양담배는 팔지 않아요.

내가 즐겨 피우는 말보로 라이트는 팔지 않는다는 가게 주인의 말이었다.

,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 양담배. 모든 것을 지난 일로 되돌려 버리는 이상한 관념의 촉수를 날카롭게 후벼 팠던 말이었다. 양담배는 팔지 않아요.

고작 담배를 팔지 않는다는 그 말에 나는 왜 그토록 심한 절망감을 느꼈던 것일까. 담배를 사지 못하는 대신 나는 휴대폰으로 내가 지나쳤던 모든 길을 담았다.

2억 원에 매물로 내놓았다는 그럴 듯한 삼층 연수원, 구부러진 길에 멀뚱하니 세워져 있던 커다란 후면경, 물이 바짝 마른 작은 하천 너머의 쌍둥이 전원주택의 나른한 잔디, 겨우 몇 개의 운동기구가 세워져 있는 아주 귀여운 공원과 그 벤치까지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잠시 걸음을 멈추고 서서 짧았던 시간들을 떠올렸다.

벤치에서 나눈 수많은 이야기들은 어떻게 찍을 수 있나. 푹신한 흙의 감촉과 눈가와 뺨과 귓불을 간질이던 어둠 속의 잔디, 그리고 아득해 보이던 하늘은 어떻게 찍을 수 있나. 아니, 그보다. 무모한 충동으로 수없이 갈등했던 마음의 행간은 또 어떻게 보관할 것인가. 나도 모르게 나는 울고 있었다. 어린아이처럼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지금 나를 함몰시키는 적은 바로 나의 어리석은 감성 덩어리였다.

 

어둑해진 길을 돌아와 다시 나의 방으로 돌아왔다.

책상 위로 올라가 무릎을 끌어안고 담배를 피웠다. 여전히 벽에 걸린 나의 예수님은 나를 위하여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고 계셨다.

아주 다행히, 눈물 머금은 이 나를 보고 있으므로 나는 눈물을 멈출 수 있었다. 시퍼렇게 살아계신 하나님이 내 손목을 발목을 꽉 붙잡고 계시므로 지독하고도 아득한 구멍에서 기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곧 이곳을 떠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배려였다. 혼자 있고 싶어 했던 나의 오랜 꿈을 완전히 박살내주신 하나님의 축복이었다.

이제 다시는 집을 떠나지 않으리.

 

감각이란 홀로 지탱할 수 없는 것 같다. 그것은 정신의 의미망과 깊게 결부되어 있어서 고독한 억제기제와 더불어 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한 저 홀로 피어날 수는 없다.

기도하는 예수님의 두 손을 나는 맞잡고 있었다. 나도 예수님처럼 두 손을 꼭 잡고 기도할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이다. 고마운 일이다. 이제 비로소 힘이 솟는다. , 비어있는 (나의 미래를 상징하는)벽걸이 고리에는 인내와 절제를 달아 맬 것이다.

그리고, 당당하되 겸손하게. 이제부터의 나의 마음가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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