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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 가로되

詩 읽는 오후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5. 2. 15.

나의 하나님, 모처럼 주일 평안하시죠?

하루종일 자녀들의 기도를 들어주시느라 쫌은 피곤하시죠?

나의 예상대로라면 하나님도 피곤하셔서 나처럼(아시잖아요, 오늘 넘 일찍, 4시 반에 눈을 뜬 거요) 낮잠 한 숨 주무시고

일어나셨을 겁니다만.

 

오늘도 저는 변함없이, 아, 변함없이라는 말은 얼마나 소중한지요, 그말은 사건사고 없는 아주 평안한 날이었다는 말이잖아요, 아들과 남편과 함께 예배도 드리고 엊그제 심방오신 목사님과 악수도 하고, 설날 먹을 떡도 사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꽤 친했던 일년 선배 장로님으로부터 모모 행사기획에 함께 하자는 제의도 받았고(그런 것을 스카우트라고도 할 수 있겠죠), 집으로 돌아와 땅콩호도조림을 완벽하게 완성하고, 100주년 기념교회에 들어가 11시 예배 라이브도 시청하고, 어제 독서회에서 3월의 도서로 간택된 '일본의 내면풍경(매우 속독력있고 매우 잘 넘어가고 매우 글자도 큰, 헐렁헐렁한)을 몇 장 넘기고,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의 거리 2부 중에서 못들은 부분을 틀어놓고 듣다가 슬며시 잠이 들어(하긴 잠이 올만도 한 것이 따뜻한 이불속에서 남편 베개위에 휴대폰을 놓고 들었으니...쩝) 눈을 뜨니, 어머나 시간이 꽤나 흘렀네요.

아, 이토록 평안한 주일 오후라니요!

 

잠이 깼는데도 그 아늑함이 너무 좋아 누운 채 휴대폰으로 네이버 검색질을 하는데, 하다가, 고만

詩를 읽게 되었지 뭡니까.

하나님, 요즘, 약간 우울했어요.

던킨 도너츠처럼 가슴 한 구석이 휑하니 뚫려 있는 느낌이랄까요. 그 빈 공간은, 음, 무엇인가 하면요, 하나님은 머리카락 한올까지 다 세고 계시니 물론 아시겠지만서두, 미래에 대한 약간의 막막함이랄까요?

아니, 그렇게 거창하게 말고, 진도가 진도라고 말하기 힘들정도로 제자리 걸음인 나의 작업에 관해서인데, 요만큼 애를 썼으면 조만큼은 나와줘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그 열매의 덩어리가 깨알만하니 참 많이 실망이 되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이쯤에서는 책이 한 권 나와줘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마음도 없지는 않고요. 하여튼.

그런, 가슴 한 쪽이 스멀스멀한 상태에서 막닥뜨린 詩 한 편이 그만 내 마음을 완전히 녹여버렸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 왜 그런 詩를 읽게 해 주셔서 저녁 나절 한쪽 어깨를 맥빠지게 하시는 겁니까.

 

내 고통은 자막이 없다

읽히지 않는다

 

이런 구절은 또 왜 눈에 번쩍 뜨인답니까!

 

내가 살았던 시간은 아무도 맛본 적 없는 密酒였다

나는 그 시간의 이름으로 쉽게 취했다

 

이런 구절은 또 어떻구요.

하는 수없이 고장이 나려고 발버둥치는 프린터를 살살 달래어 그 길고 긴 詩(단편소설 한 편정도는 될 것같은 길이)를

인쇄하고 말았어요.

읽으면서 고통스럽기는 하겠지만 고통 못지않은 희열 또한 있는 것을 알기에 지금 옆에서 팔랑거리고 있는 장장 A4 용지 일곱 장 분량의 詩 한 편을 혀끝에 녹이면서 심장 끝까지 쿵쿵거릴 그 감동을, 전율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사람마다 달란트가 있다고 하셨는데 나에게 있는 것은 대체 뭐란 말입니까?

어제 독서회에서 두분 멘토께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언급하신 걸리버 여행기 5편을 교회편으로 쓰라는 말인가요?

(어제 스무명이 넘는 독서회원 앞에서 멘토님은 '그 책 쓰면 내가 천 권 산다'하고 호언장담하시기까지 하셨죠. 하긴 그 분은 능히 그럴 수도 있는 분이시긴 하시죠)

어떻게 써요.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 가로되, 하고 써요?

 

몰라요. 오늘은 일단 하나님의 자녀답게 주일을 잘 누리고,

저 길다란 詩에 열심히 빠져들면서 황홀감을 맛본 후에

내일 다시 생각해 보겠어염.

 

배고프다....

나의 하나님, 밥도 좀 주시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