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이윽고 슬픈 외국어>는 오래 전 <슬픈 외국어>로 출간되었을 때 읽었다.
어설픈 기억으로는 하루키가 미국의 어느 대학이 있는 도시에서 일년인가 살 때 쓴 거 같다.
좋은 단편소설이 많았다. 하루키의 초기 단편은 매력적인 게 많았다. 지금은...하루키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하루키에게는 슬픈 외국어였는지 몰라도 지금 나에게 외국어는 기쁜 외국어이다. 사연인즉슨.
Kbs 1Fm 광팬인 나는 한 달 전인가 어찌어찌하다가 콩 비밀번호를 잊어버리는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깜놀하여 이리저리 들어가서 하라는대로 다시 했지만(기계치 컴맹인 나로서는 최선을 다했다) 로그인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래도 하면서 나중에는 남편 이름으로 새롭게 가입도 하고 다시 어찌어찌 로그인을 시도했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계속 내가 알아먹을 수 없는 지시사항만 뜨는 것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내 핸폰이 내 명의가 아니라 남편 명의로 되어 있는 바람에 인증받기가 매우 힘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는 나의 존재가 휴대폰 명의자로만 증명된다는 사실에 슬픔을 가눌 길이 없었다.
(그것은 일년에 몇 번 있는 인터넷 쇼핑에서의 인증절차에서도 똑같이 서글픈 경험을 하게 된다. 그래서 쇼핑을 잘 안하는 것은 다행인지도 모르징)
그리하여 클래식 라이브가 없는 한 달 여를 보낸 후부터 심신미약, 박약 상태가 되어버릴 정도의 클래식 결핍에 시달리게 되었다.
클래식 연이어 30곡 50곡 이런 곳을 아무리 클릭해도 거반 엉터리였다. 괴로웠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다.
한국 인터넷의 그 많은 싸이트에 어찌하여 클래식 이어듣기 하나 제대로 올려놓은 곳이 없더란 말이냐, 하면서 원망도 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열 흘 전쯤 영국 클래식 방송을 하나 알게 되었다. 24시간 라이브이다^^ 지금도 듣고 있다. 아, 음질도 장난 아니다. 문제는 영국 주소를 입력하는 안내문이었는데 그것도 어떻게 가리(ㅋㅋ)로 써 넣은 힌트를 주신 착한 블로거의 도움에 힘입어 무사히 진입할 수 있었다. 그 때 얼마나 즐거워 했던지 옆에서 보던 남편이 무슨 좋은 일이 있길래 입이 귀에 걸렸느냐고 했다.
(지금 여기까지 쓰다말고 화면을 찍어 멜로 보냈다. 인증사진으로 보여주고 싶어서^^ 아, 벌써 도착했네요, 멜)
(아....화면을 보여준 것 까지는 좋았는데 포스트 잇의 내용까지 고스란히 찍혀버렸군.
하지말라는 구체적인 내용까지도.. 셀카질 하지 말자. 페북하지 말자. 믹스커피 먹지 말자. 소세지(길고 뚱뚱한 옛날 소세지) 먹지 말자
낮잠 한 시간 이상 자지 말자. 카톡하지 말자. 쿠팡하지 말자. 이런 금지사항을 새해 표어로 내걸었는데 거의 지켜지고 있다. 다행이다^^)
정말 정말 기똥찬 방송이었다. 몇 년 전에도 미국의 어딘가에서 보내주는 클래식 방송을 즐겨 들은 적이 있는데 노트북 개비하면서
주소를 잃어버려 아쉬워하던 참이었다.
외국 클래식방송에서 가장 좋은 점은, 약간의 수다와 설명이 곁들여지지만 그것이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라는 점이다!
지금도 뭔가 수다를 떨고 있는데 그 사근사근한 영어, 즉 외국어는 전혀 나의 뇌까지 접근하지 못하고 그냥 이쪽 귀바퀴로 들어갔다가 저쪽 귀바퀴로 흘러나가버린다. 구태여 단어의 의미, 수다의 내용을 머리속에 저장하려고 나의 무의식이 애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시다. 아, 정말 좋다. 이렇게도 기쁜 외국어라닛!
외국 여행에서도 느낀 것인데 주변 사람들이 외국인일 경우, 나의 생각이 방해받을 일이 없어서 정말 좋았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저 영국 방송에서 감(식)초처럼 튀어나오는 외국어가 마치 클래식의 8악장 쯤으로 들려오기까지 하는 것이다.
귀가 심심하지는 않을 정도의, 가끔 좋아하는 클래식이 나오면 잠시 귀를 쫑긋했다가 이내 다시 집중할 수 있을 정도의 볼륨으로 지금도 나의 귀와 텅빈 뇌를 즐겁게 해주는 클래식 플러스 외국어를 사랑한다. 아울러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처럼 매일 매순간 클래식을 하염없이 하사하시는 저, 영국방송도 사랑하기로 한다.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어가 나를 행복하게도 하는군^^
(요 아래 아래 나쁜 사람 글이 좀 신경쓰여서 얼른 다른 글로 깔아뭉개버렸다. 이제 완전히 신경 꺼버려야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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