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당신이 바로 천사

가난한 천사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2. 3. 21.

 

카톡에 올린 선배의 사진을 보았다. 선배라...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그 언니는 가족과의 친분에서 시작되었다. 엄마의 친구의 딸이었다. 우리집과 언니의 집은 똑같은 시기에 무너지는 중이었다. 파산을 향해 치닫는 두 집안은 그래서 더욱 끈끈했는지 모른다.

언니의 권유로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장학금 받으면서 공부 할 수 있어. 하하. 1년 선배였던 언니는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해서 장학금받고 나는 공부를 심각하게 멀리하는 바람에 하위권에서 서성거렸다. 장학금은 커녕 문학 예술에 미친듯이 빠져드는 바람에 나는 하마터면 유급할 뻔 했다^^;;

 

 

교대에 들어간 언니가 선물한 책이 떠오른다. 레마르크의 개선문이었다. 덕택에 나는 칼바도스에 대한 위대한 갈증이 생겼고, 나와 비슷한 성정을 지닌 주인공 조앙마두에 대해 연민을 품었고, 단단하고 이성적이며 날카로운 라비크에 대해 연정을 품었다. 그런 스타일의 남자를 나는 좋아한다^^...

 

언니는 나에게 천사였다. 성모 마리아처럼 처녀가 애를 낳은 나를 품고 반 년을 같이 살았다. 새끼 손톱만한 아이의 발을 신가한 듯 만지작거렸던 언니.

 

 

그 언니가 교직생활을 접고 파리로 유학을 갔을 때, 나는 십삼년 동안 겨우 한 통의 전화를 했다.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온 언니를 만났다. 파리지엔느 냄새가 물씬 풍기는 지성인의 모습으로 나타난 그녀는 아름다웠다.

카톡의 사진을 물끄러미 보았다. 당당한 아름다움이 매혹적이었다. 파리 유학시절 찍은 사진이라고 한다.

 

귀국한 후, 언니와 나는 날마다 정독 도서관에서 만났다. 언니는 강의 준비를 하고 나는 소섫을 썼다. 매일 그녀와 함께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고 좋은 책을 교환해서 읽고는 했다.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이름 난 몇 몇 대학을 전전하면서 강사를 하던 언니는, 연구소에서 나오는 부수입으로 가난한 나를 아낌없이 섬겼다. 옷을 사주고, 책을 사주고, 맛난 음식을 사주고, 용돈까지 주었다.

가족보다 더 사랑해.

언니의 고백이었다. 독신인 그녀는 많이 외로워보였지만, 실제로 참 많이 외로웠지만 바쁜 일상은 그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바로 언니였다.

 

하지만 언니의 삶은 고달팠다. 이리저리 돌아다녀야 하는 강사 생활을 접고 특수학교에 취직해서 몇 년 동안 어린 학생들을 가르쳤다. 언제인가 언니가 근무하는 학교에 들른 적이 있었는데 그녀의 놀랄만큼 지독한 책임감에 혀를 내둘러야 했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 또한 아름다웠다.

그러던 그녀가 어느 날 그 학교까지 때려치웠다.

이제는 좀 쉬고 싶어... 언니의 얼굴을 보니 과연 피곤해 보였다.

그리하여...고급백수가 되었다.

 

 

남에게 베푸는데 달란트가 있던 언니는 소유한 그 무엇도 없었다. 가난한 천사 언니는 그 알량한 퇴직금을 아낌없이 나에게 주면서 성지순례를 가게 했다.

잘 다녀와서 좋은 글 써.

내가 등단했을 때는 나를 끌고 가서 노트북을 사주기도 했다. 뿐인가, 자신이 교류하는 하이클래스급 지성인들의 모임에 나를 데리고 다니면서 소개하기에 바빴다.

내가 좋아하는 후배야.

언니는 나를 늘 그렇게 소개했다. 말끝에 이렇게 덧붙이기도 했다.

정말 사랑스럽지?

하이고.... 겨우 두 살 어린 나를 그녀는 그렇게 대하고 있었다. 단 한 번도 너라고 부르지 않았고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녀의 인간에 대한 존중을 나는 존경한다.

언제인가 너무 힘들어서 언니에게 도움을 구한 적이 있었다. 언니는 즉각 나의 구원요청을 들어주었고, 언니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고맙다고 메일을 보냈더니 언니는 나에게 이런 답메일을 보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나를 떠올려주어서 정말 고마워.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바보처럼 사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예도 하나 있다.

성가대의 반주를 하던 교회 후배가 독일로 유학을 가는데(그 후배와의 친분은 성가대에서 같이 있었다는 그 정도였다) 형편이 어려운 것을 알고 자그마치 천만원을 쥐어준 것이다. 아무 조건도 없었다. 그 때 언니는 월세에 살고 있었다. 그 말을 듣고 기가 막혀 하는 나에게 언니가 말했다.

내가 유학을 해봐서 아는데 유학 생활은 정말 힘들거든.

그렇다고 친분이 깊은 것도 아니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으로 그냥 베푼 것이었다. 그렇게 심각하게 남을 도와주다가 '좀 쉬어야겠다'면서 일을 그만 둔 그녀는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세상에...소르본느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은 그녀는 지금 만 이년 째 아무 일도 하지 않고(혹은 하지 못하고) 교회에만 열심히 다니고 있다. 객관적으로, 비신앙적인 눈으로 바라본다면 계속 나락으로 떨어지는 중이겠고, 자기 앞가림도 못하면서 뭔 구제냐고 눈총를 받을 수도 있겠고, 인력 낭비라고 할 수도 있겠고, 일 할 때 일만 하고 놀지 말아라, 하는 찬송가 구절에 위배되는지도 모르겠다.

 

하나님을 믿으면 성공해야 하고, 남들 위에 서야 하며, 뒤로 자빠져도 돈이 펑펑 쏟아지는 그런 삶을 생각한다면 그녀는 완전 망해버린 삶을 살고 있다....처음은 미약했지만 나중은 창대하리라,가 아니라 처음은 창대했지만 말할 수 없이 미약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녀의 일생을 찬찬히 돌아본다. 세상적으로 말한다면 지금 너무 어리석게 사는 것이겠지만 과연 그럴까?

남의 고통을 돌보는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그녀는 과연 잘못 산 것일까?

그녀의 진실한 기도와 물질적인 후원으로 어려운 삶을 헤쳐나간 많은 사람들에게 그녀는 무엇이었을까...

작은 예수, 천사였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언니의 미래를 나는 알 수 없다. 그녀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이 어떠한지 그것도 나는 모르겠다.

그녀가 쉬면서 교회 일을 하는 동안 하나님이 어떻게 그녀의 삶에 역사할지 그것 역시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써 그녀는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

 

수십년 동안 치열하게 살아온 그녀에게 쉼이 필요해서 그녀는 지금 쉬고 있는 것일 테고, 그 쉼의 시간 동안 그녀의 영혼은 더욱 맑고 밝게 빛날 것이며, 그녀의 앞날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평안이 깃들 것이라는 것은 안다.

 

내 옆의 작은 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주어도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듣는데

내 옆의 작은 자에게 자신의 몸을 잘라내어 보답을 바라지 않고 주는 언니를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하실까.

 

 

내 앞가림도 못해 고통당하는 나에게 언니의 삶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아, 예수님의 명령은 정말 지키기 힘들다고 나는 생각했는데 그녀는 내 눈앞에서 그것을 여실히 증명해 보여준다.

타인을 타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너와 나의 경계를 허물어버린 언니를 위하여 오늘도 기도하고 있다.

그리고 결심한다.

나도 누군가에게 천사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당신이 바로 천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3월의 산타  (0) 2012.03.14
친구란 무엇일까  (0) 2012.02.28
삼천원, 삼만원, 삼십만원  (0) 2012.02.27
다정이의 도시락  (0) 2012.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