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가족을 제외한 사람중에서 인생에서 가장 귀중한 존재.
오죽하면 독일에서는 인생에서 가장 귀중한 작업(?)이 바로 친구를 만나는 것이라고 할까.
친구.
친구라는 단어를 입으로 되뇌이기만 해도 가슴이 뿌듯해지고 풍성해지는 느낌이다.
그런데 친구라고 다 친구인가? 물론 친구는 친구겠지. 친구가 남편이나 자식이나 친척이나 옆집 아줌마는 아닐 테니까 말이다.
친구... 친구에도 여러 레벨이 있는 것 같다.
악하고 추하고 퇴폐적이고 비이성적인 속내를 맨살 그대로 내어 놓을 수 있는 친구, 나의 고통은 토로하지 않고 상대방의 고통만 말없이 들어주는 친구, 일년에 몇 번 만나 반갑게 손흔들고 세상이야기 자식 자랑 나누는 친구,
멀리 있으나 마음만은 일미터 전방에 있어서 감성과 이성을 동시에 나누며 교감할 수 있는 친구, 글 쓰는 친구, 술마시는 친구(아, 술을 끊었으니 이 술친구들을 대체 어케 관리할 것이냐...), 공부같이 하는 친구, 그리고 오래 전 자주 만났던 사람이지만 어느 덧 마음과 몸에서 멀어져 기억이 날까말까 하는 친구, 그 친구의 근황이 조금도 궁금하지 않은 친구, 만날까봐, 전화올까봐 겁이 더럭나는 친구도 없지는 않다...
그렇다면 친구의 정의는 어떻게 내려야할까...
적어도 서로의 고민과 아픔과 기쁨과 즐거움을, 마음을 나눌 수는 있어야 비로소 친구라도 이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친구가 얼마나 있는지, 과연 나는 누구에게 그런 친구가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어제 저녁, 고등학교 시절과 그 이후 스무 살 초반을 드문드문 어울려 다녔던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어떻게 내 전화번호를 알고 있었는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그 친구와는 신혼집을 서로 한 번씩 왕래한 이후, 거의 삼십 년간을 왕래없이 지냈다. 그러다가 몇 년 전 같이 공유(^^)하는 친구가 아픈 바람에 병문안가서 얼굴을 보았다.
가끔 소식은 듣고 있었다. 사업이 어떻게 되었다는 둥, 아이가 둘이었는데 셋이 되었다는 둥 하는, 안개처럼 아득한 소식이었다. 어릴 때 같이 만나기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었지만 속내를 서로 드러낼 정도는 아니었고, 코드도 맞지 않아서 그냥저냥 얼굴만 마주치는 친구였는데...
다짜고짜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약간 황당했지만 그래도 전화를 했다는 사실에 반가웠다.
그런데 그 친구는 연락처가 없다고 하면서 같이 공유하던 옛친구들에게 부음을 전해달라는 것이다. 그런 미션을 왜 나에게 주는지 의아했지만 약간의 불편한 마음을 얼른 접고 그러마고 했다. 그러구러 장장 한 시간에 걸쳐 기계치인 내가 휴대폰을 검색하여 친구들 명단을 뽑고, 문자를 보내고, 잘 못 보내서 다시 보내는 수고를 감당해야 했다. 나의 문자를 받은 열댓명의 친구들이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나에게 전화를 걸어온 친구들도 몇 있었다. 그 친구들과도 지속적인 만남이 없어서 모두 몇 년 만에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중 한 친구는 문자를 보내 나에게 조의금을 전달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얼결에 그러마고 했다. 또 다른 한 친구는 전화를 했다.
문상을 가게 되면 같이 가자는 것.
전화를 걸어온 친구 역시 수십 년 동안 말 한 번 섞지 않은 사이였지만 이번 기회로 대화를 나누게 되니 반가웠다.
예전 같으면 귀찮아했을 텐데 요즘의 고난을 통해 많이 착해지기로 결심했는지라, 그리고 사순절이기도 하므로 나는 천사가 되고 싶은 마음에 그러자고 했다. 그러면서도 마음은 좀 복잡했다.
가는 길도 멀고, 힘들고, 게다가 조의금은... 에구...
결국, 문상을 같이 가자는 친구와 몇 번의 문자질로 내일의 문상을 약속했다.
새벽기도회가 끝나자마자 여의도까지 달려가서 7시 20분이라는 기가 막히게 이른 시각에 영안실 앞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었다. 나는... 목숨처럼 아끼던 신사임당 한 장을 뺐다.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음...그 돈은 쌀 20킬로 사고도 7000원이 남는 돈이다. ^^;;
새벽 4시에 일어나 부지런히 준비하고 25킬로 떨어진 교회까지 달려가서 열심히 예배드리고 짧은 기도 겨우 한마디 올리고는 교회밖으로 뛰쳐나갔다. 바빴다. 여의도, 여의도. 내가 대체 언제 여의도를 갔더란 말인가.
여의도는 고등학교 시절이던 1974년 빌리그레함 목사님이 집회할 때 밤새워 기도하면서 걸었던 기억밖에 없다.
오늘따라 기온이 급격히 낮아졌다. 영하 10도!
발을 동동거리면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띵, 하고 문자가 떴다.
<미안해서 어떡하니. 내가 며칠 전 이스라엘로 성지순례 다녀왔는데 시차가 아직 적응되지 않아서 그만 깜빡하다가 이제서야 일어났구나, 정말 미안하다....>
아....이런 일이...
칼바람 부는 오전 7시의 여의도 바닥에서 나는 한동안 공황상태에 빠졌다. 결국, 열 몇 명의 친구들 중에서 겨우 나 혼자만 문상을 가게 된 경우였다. 이 궁핍이 줄줄 흐르는 핍진한 상황에서 말이다!
그러다가... 마음을 바꿨다... 어제 문자할 때부터 알아봤지만 결국 자신의 형편과 마음에 따라 결정하는 것은 각자의 판단인 것이다. 나는 문상 같이 가자는 친구의 꼬임에 빠져 왔으니 하는 수 없지...
갑자기 천사가 된 나는 미안하다고 연발하는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괜찮아. 나 혼자 잘 다녀올께^^> 그렇게 하고 하트까지 하나 그려 보냈다. 그러니까 정말 사랑이 생기는 것 같았다. 비록 나에게 바람을 넣어 신새벽에 여의도 한복판에서 방황하게 만들기는 했지만 어제 친구는 정말 같이 문상할 생각이었고, 저렇게 피치못한 상태에 이르면 어찌할 수 없는 것이겠지, 하면서 바다같이 넓은 마음으로 이해했다. 그렇게 마음을 바꾸니까 놀랍게도 나의 마음이 정말 평안해지고 조금 지나가 기분까지 좋아지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콧노래라도 부르는 명랑쾌활한 마음이 되어 차갑던 손까지 따끈해지는 느낌이었다.
영안실은 비어있었다. 하긴 아침 7시에 문상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잠시 기다리고, 잠자던 친구가 눈을 비비면서 나왔고, 그의 남편과 아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아직 문상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기다리라는 말에 나는 아예 마음을 비웠다. 상조회 직원도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여서 나는 차가운 식혜 캔 하나 앞에 놓고 간만에 친구와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잘 몰랐는데 나에게도 들어주는 은사가 있었나보다. 한 시간 넘게 앉아있는데 거의 그 친구가 이야기를 했다. 나는 문상을 온 사람답게 얌전하게 앉아 내가 몰랐던 그녀의 삼십 년 인생 파노라마를 들었다.
음...
그 친구에게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문제였다. 그녀는 심각한 무기력감과 우울증, 그리고 정신적 장애를 겪고 있었다. 옛날의 그녀에게서 느꼈던 어수선함은 결국 병이었던 것이다. 너무 힘들었다고 말하는 친구에게 나는 무한대의 연민을 느꼈다. 과연 힘들었을 것이다. 맨정신으로 피튀기면서 살아도 힘든 세상에서 결혼하고 직장나가면서 살아온 삼십 년은 보통 사람들에 비해 몇 배의 고통이었을 것이 분명했다.
정말 가슴 아팠다. 그녀의 고백은 나에게 작은 충격을 주었다. 그녀는 참 외롭고 주위에는 변변한 친구 하나 없었고, 물론 사귀지도 못했고, 사귈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시절을 겪었다.
이번 큰일을 다 치루고 나면 병원을 찾을 생각이라고 했다. 휴...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본인의 자신의 병을 스스로 자각하게 되었다는 것일 것이다. 예전의 그녀는 자신의 상황을 잘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만나면 횡설수설하기 일쑤였고, 대화를 해도 너무 산만해서 도통 주제를 잡을 수 없었는데 그것은 정신적인 병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옆에서 조언을 해도 씨알머리 하나 먹혀들어가지 않아서 옆에 있는 사람들을 얼마나 답답하게 만들었던가! 자기만의 생각에 골몰한 나머지 대화의 시간에도 혼자 맹하니 앉아있기 일쑤였던 친구.
너무 힘들다고 그녀는 말했다. 아, 친구....그동안 힘들었구나...
친구를 보면서 생각했다. 나도 지금 너무 힘들지만 앞으로는 자주 전화도 하고 이야기 상대도 되어주어야겠다...
위로와 격려도 잊지 말아야겠다...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일이다...앞으로 중보기도 명단에 저 친구의 이름을 꼭 넣어야겠다...
정말 다행인 것은 무지하게 팍팍하던 남편이 온화해지고, 신앙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예전의 날카로움은 많이 사라진 친구의 남편을 보니 정말 마음이 기뻤다. 게다가 아들은 신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잠시 동안 친구의 아들과 신앙과 문학에 대하여 대화를 했는데 속이 꽉찬 젊은이였다. 번듯하게 잘 자란 친구의 아들을 보니 마음이 정말 뿌듯했다. 친구는 고통 중에 삼십 년을 살았지만, 그래도 가족은 아주 잘 지켜주었다. 그것도 참 대견했다.
그녀는 교회를 다니지만 사순절도 제대로 알지 못할 정도로 어수룩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이고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아들은 결심하고 신학대학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것도 알아주는 아주 좋은 신학대학이었다. 대화를 나누어보니 장차 한국의 기독교계를 이끌고 나갈 위인이 될만했다. ㅋㅋ
젊은 녀석이 부모의 말씀이 너무 순종도 잘하고, 예의도 바르고, 말도 질서정연하고, 심지도 굳었고 믿음도 아주 탄탄했다. 그 아들을 바라보는 내 눈길이 얼마나 애정이 듬뿍 담겼을까나...
한참을 기다린 후에(한 시간 하고도 이십 분이나 기다렸다. 문상을 받을 상주들이 도착하기를^^) 겨우 국화꽃 한 송이 들고 문상을 했다. 소피아라는 이름을 가진 시어머니의 영정사진을 보았다.
친구의 말인즉슨, 자신이 집안일도 잘 못하고 시어머니도 잘 모시지 못해서 참 죄송했는데 어머님이 잘해주셨다고 한다. 그저 미안하다고 친구는 말했다. 좋은 시어머니였던 모양이다.
나는 영정앞에 기도를 하면서 친구 시어머니께 말했다. 제 친구를 잘 거두어주셔서 감사해요.
여전히 정신없어 보이는 친구가 배웅을 나왔다. 그녀의 어수선해보이는 표정을 보면서 생각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만으로도 너는 참 대견하다... 더 대견한 것은 너를 지켜준 너의 가족이다...그리고 너를 지금도 지켜주고 계신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나를 신새벽에 여의도까지 달려가게 하시고, 친구의 고백을 한 시간 넘게 듣게 하신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친구는... 친구에게 바라기 전에 내가 먼저 그의 친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친구는 친구에게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는 것이다. 친구는 친구를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먼저 다가가서 위로자가 되고 격려자가 되고 그렇게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다. 그러면 언제인가는 저 외로운 친구가 나의 친구 노릇도 톡톡히 할 때가 오겠지?
그렇다. 하나님은 오늘 나에게 미션 하나를 주셨다. 거룩한 미션. 나를 비우는 미션이기도 하다.
이전 같으면 어림반푼어치도 없을 마음의 여유도 나에게 주셨고, 열받을 상황인데도 느긋하게 괜찮다는 문자를 보낼 천사(ㅋㅋ)같은 마음도 나에게 주셨고, 비상금 중의 비상금을 털어 조의금을 내면서도 아깝지 않는 마음도 주셨다. 그니까니 하나님은 이렇게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남들의 천사 이야기를 쓰지만 말고 너도 좀 천사가 되어 보아라, 내가 그 기회를 주마!
아멘.
그렇게 해서 나에게 관리대상(ㅋㅋ)이 또 한 사람 생긴 것이다. 나의 위로가 필요한 또 한 사람, 내 친구를 나는 오늘 만났다.
많이 사랑하고 많이 기도하고 많이 이야기 들어줄께, 나의 친구야!
'당신이 바로 천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난한 천사 (0) | 2012.03.21 |
---|---|
3월의 산타 (0) | 2012.03.14 |
삼천원, 삼만원, 삼십만원 (0) | 2012.02.27 |
다정이의 도시락 (0) | 2012.0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