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은 나의 생일이었다. 2월 24일^^
원래 음력이지만 날짜가 주는 매력에 이끌린 나로서는 생일을 꼭 두 번을 챙켜 먹는다.
양력 2월 24일은 날짜가 같다는 이유로, 음력 2월 24일은 진짜 내가 태어난 날이라는 이유로 달력에 형광펜으로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함께 사는 두 인간에게 날마다 주입시키는 것이 나의 취미이기도 하다.
물론 다른 식구들에게는 통용이 되지 않는 나만의 특권이기도 하다.
전날 프로이트 학파 책걸이 때문에 늦게 잠들었는데다가 아침에 일어나니 내 손으로 미역국 끓이기는 싫은 묘한 생일이 되었다. 기분도 그다지 활기차지도 않고 해서 교회까지 가야하는 연합속회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고민 십 여분 만에 결정을 내렸다.
집에 있는다고 해서 무슨 영양가 있는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면 올해에는 연합속회를 한 번 잘 나가보자, 하는 기특한 생각을 한 것이다.
가려는 쪽으로 마음을 돌리고 나니 한결 가뿐해지면서 콧노래가 나왔다.
아항. 하나님은 내가 교회가는 것을 바라셨는가 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미지근하게 고민하던 것은 아예 잊어버리고, 상큼한 마음으로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커피 한 잔 뽑아들고 지하기도실로 직행하려고 하는데, 구역 모임이어서 세 구역으로 나뉘어서 연합속회를 한단다. 그런데 내가 속한 구역은 바로 지하기도실에서 모임을 갖는다고 한다....?
나 홀로 지하기도실에서 하나님께 앙탈을 부리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따끈하고 아늑하고 포근한 지하기도실에는 벌써 많은 어르신들이 앉아계셨다. 부지런한 어르신들!
특송이 있다고 해서, 특송이 없다고 해도 앞자리에 앉았겠지만, 제일 앞자리의 방석에 자리를 잡았다.
숨을 헉헉거리면서 하나님께 저, 왔슴다~하고 짧은 기도를 하고 돌아보니 반가운 얼굴이 많이 계시다.
그 중 몇 년 동안 같은 속회에 계셨던 어르신 한 분이 눈에 들어왔다. 반가운 마음에, 아직 예배 전이므로 내 자리를 이탈하여, 어르신께 다가갔다. 반갑게 인사를 드리고 대강 근황을 여쭙고 손도 잡고 그렇게 화기애애한 친교의 시간을 갖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 어르신이 내 자리로 찾아오셔서 살짝 귀엣말을 하는 것이다.
요즘 글은 어떻게 되어가는가, 나도 무슨 글인가 쓰려고 하는데...하면서 서두를 떼시길래 속으로 생각했다. 아하, 자칭타칭 글쟁이인 나에게 무엇인가 조언을 구하고 싶으신가 보다 하고 귀를 기울이는데 어르신 말씀인즉슨.
(아주 조그만 목소리로)
"저기, 내가 성경책 속에 뭐 쫌 넣었어. 권사님이랑 요 앞에서 냉면이라도 먹으라고...너무 적지만 받아요..."
당황하는 내 표정에 어르신은 어깨를 토닥여 주시면서 멋진 미소를 날리며 바람처럼 사라지셨다.
어르신의 마음에 감동받은 나는 설교 말씀에도 은혜 받고 완전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 주님의 사랑을 나도 저렇게 전할 수 있으면 좀 좋으냐고, 하면서 반성도 했다.
성경책을 펼치니 삼만원이 낑겨져 있다. 에그머니나!
별로 풍족하지 않으신데도 사랑으로 베풀어주신 것이었다. 하나님과 어르신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집안식구들은 슬쩍 눈감고 있는데 어르신은 나에게 뜻밖의 생일 선물을 주셨다. 물론 그분은 모르시겠지만.
만원으로 교통카드를 충전하니까 기분이 좋아졌다. 나머지 이만원은 남편이랑 아들과 나누어 줄까, 말까, 이런 행복한 고민을 하면서 집으로 왔다.
어제는... 거의 두 달만에 쏘울메이트를 만났다. 그간의 세월을 어떻게 견디었는지 서로의 간증을 은혜롭게 교환하는데 무려 세 시간 반이 걸렸다. 서로의 약함과 추함과 완악함과 슬픔과 고통을 나누는 시간이었고, 반성하는 시간이었고, 서로의 격려와 위로에 다시 힘을 얻는 시간이었다.
헤어지기 전, 빠리바게트에서 모닝빵을 사오라는 남편의 미션에 따라 빵집에 들렀다. 나에게는 피같은 배춧잎이 두 장 있었다. 모닝빵과 식빵을 사니 오천원. 잔돈을 거슬러 받는데 중간에 잠시 어딘가 들렀던 친구가 뒤따라 빵집으로 들어왔다.
내가 말했다. 빵 사줄께, 여기 돈이 남았어. 친구가 싱긋 웃었다.
"이왕이면 비싼 거 골라도 돼?"
"당근이지!!"
내가 오천원짜리 지폐를 내보이면서 큰소리쳤다.
친구가 웃으며 맛난 빵을 골랐다. 삼천원짜리 곡물식빵이었다. 나는 이천원짜리 식빵 골랐는데 ㅋㅋ
계산을 하려고 카운터로 가려는데 친구가 슬며시 나를 붙잡았다.
"이거...쌀 사먹어."
주머니에 지폐 뭉치를 꽉 쑤셔넣어주는 친구.
에구, 이게... 잠깐의 실랑이 끝에 나는 묵직한 지폐 뭉치를 고대로 가질 수밖에 없었다.
"많지 않아. 근데 꼭 쌀 사야해!"
그동안 내가 살아 있는지 너무 궁금했단다, 친구는.
밥이나 먹고 있는지 걱정했단다, 친구는.
그 친구는 말기암 환자가 된 남편 뒷바라지에 재산이 거의 거덜나서 고민중에 있었다. 돈 한 푼 벌지 못하고 일년 반이 지났으니 집안이 온전하겠는가. 그동안 딱 일 억을 까먹었단다. 집 기둥뿌리가 거의 뽑힌 상태였다....
자신을 위해서는 만원 한 장 꺼내는데도 수십번 기도하는 친구였다....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지폐뭉치를 세어보았더니 삼십만원이었다.
그 돈을 물끄러미 보면서 든 생각은...
그 금액이면....4순절 특별새벽기도회 동안 마음놓고 새벽에 택시타고 전철 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쌀도 사고 말이다.
밀린 관리비, 밀린 가스비, 휴대폰 비용, 곧 해지될 지경인 보험비는 생각이 안나구 어째서....^^;;
진심이 담긴 인사 한 마디가 삼만원이 되었고 삼천원짜리 곡물식빵이 삼십만원이 되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뻥튀기!!
.... 내, 이 사랑의 빚을, 이 가슴 푸근한 은혜를 기필코 갚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