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지 팔 년만에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은 친구가 있다.
열정이 지나쳐 광신도에 가까운 친정엄마 덕택에 교회문턱을 닳도록 다녔고,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로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그녀는 중창단으로 활약하기도 했지만
불심이 깊은 집안의 며느리가 되는 바람에 결혼 후에는 교회와는 인연을 끊어야 했다.
시댁의 결혼 허락 조건이 교회에 다니지 않는 것이었다나...
조신하고 순종적인 친구는 시댁의 가풍에 따라 절에 다니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그녀의 집에 월세를 살고 있었다.
나보다 한 살 어린 그녀는 가끔 나에게 와서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곤 했다.
교회에 다니고 싶은데 여건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시댁 어른들의 말씀에 순종하는 착한 그녀에게 말은 하지 못했지만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저 친구를 우리 교회 성가대에 앉게 하여 주십시오.
정말 말도 되지 않는 기도였다.
그녀는 시댁 형님들과 함께 불교 합창단에 들어갈 정도로 시댁의 가풍에 순종했던 때였으니까.
급작스런 사고로 남편을 잃게 된 그녀는 오래 동안 거의 죽은 듯한 모습으로 지냈다.
옆에서 지켜보기에 그녀는 산 목숨이 아니었다.
삼십 대 초반에 과부가 된 그녀는 이제 막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간 아들과, 유치원에 다니는 딸이 있었다.
무척 아름다웠던 그녀는 얼굴에 로션 하나 제대로 바르지 않고 오로지 아이들 뒷바라지에 최선을 다했다.
나는? 중보기도 명단에 그녀의 이름을 적어놓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랄밖에...
그녀의 착한 마음은 시댁 어르신들의 엄명을 거스를 용기가 있을 리 없었다.
나는 섣불리 그녀에게 교회에 가자는 권유를 할 수는 없었다.
교회에 다니지 못한다고 해서 그녀의 신앙심이 없어진 것은 절대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초등학교 3, 4학년쯤 되었을까.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들과 같은 반에 있는 여자애가 있는데 집안이 불우하여 도시락을 제대로 싸오지 못한다는 말을
아들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자신이 그 애의 도시락을 싸주기로 결심했다고.
자그마치 일년동안 친구는 아들과 한 반이 여자애의 도시락을 싸주었다.
아들보다 더 정성스레 마음을 다해 싸주었다고 한다.
아들의 담임 선생에게 부탁해서 도시락은 담임 선생이 싸오는 것으로 했다고.
그 아이의 이름이 다정이다.
성은? 모르겠다. 친구가 늘 다정이, 다정이 하고 말했으므로.
친구는 다정이의 도시락 반찬을 위해 시장을 더욱 열심히 들락거리고 요리책을 들추었다.
정말 그런 정성이 없었다.
아들과 다른 반이 될 때까지 꼬박 일 년 동안 친구는 다정이의 도시락을 싸는데 최선을 다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던 나로서는 정말 그녀의 아름다운 마음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천사가 아닌가말이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그녀는 스스로 우리 교회의 속회(구역공부)에 참석하기 시작했고, 교회의 특별행사에
초대하면 얌전하게 옷을 차려입고 참석하기도 하고, 그렇게 슬슬 우리 교회에 발을 디디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신 용기로 그녀는 시댁에 선언했다.
교회에 다니겠습니다.
늘 어딘지 아파서 골골거리던 그녀를 안쓰럽게 지켜보던 시댁 어른들은 마땅치 않지만 그녀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해질까 싶어, 아니면 마음의 병이 낫지 않을까 싶어, 아니면 다시 활기차게 사는 모습을 보고 싶어
마지못해 승락하고 말았다.
사람이 죽기도 하는데 산 사람 소원 못 들어주겠냐, 하는 심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교회 다니는 것을 허락받은 그녀는 더욱 열심히 시댁 어른들을 섬기고, 행여 누가 될까봐 교회 핑계를 대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교회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분들이기에 더욱 조심스러웠으리라.
그렇게 해서 어느 날, 드디어 그녀는 교회에 등록을 하고, 또 다시 몇 년이 흐른 후,
거짓말처럼 그녀는 우리 성가대에 들어왔다.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다.
카풀로 같이 교회에 가면서 나 또한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친구를 떠올릴 때마다 다정이의 도시락이 저절로 떠오른다.
당시에는 교회에 다니지 않았지만, 그것은 예수님의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별로 음식을 잘하지도 못하고, 음식 만드는 것을 즐기지도 않는 그녀가 어떻게 일 년 동안
다정이의 도시락을 싸주었는지 정말 지금 생각해도 미스터리다.
친구의 작은 베품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부끄러워진다.
내 식구만 잘 먹이려고 열심히 음식을 만들고, 우리끼리 맛나게 먹고 땡치는 나로서는 더욱이나
경외감마저 드는 그녀의 선행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새삼 예수님의 나눔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나에게 그런 친구가 곁에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그런데...나는 언제 나의 주위에 있는 또 다른 다정이에게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대체 그런 마음은 언제 생길지 모르겠다....
이 강팍한 마음을 하나님이 녹여주시지 않는다면 참 어려운 일일 텐데
하나님은 나의 마음을 녹이시기가 매우 힘들 것 같다. 워낙 냉정하고 쌀쌀맞으며 이성적이고, 강팍해서 말이다...
'당신이 바로 천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난한 천사 (0) | 2012.03.21 |
---|---|
3월의 산타 (0) | 2012.03.14 |
친구란 무엇일까 (0) | 2012.02.28 |
삼천원, 삼만원, 삼십만원 (0) | 2012.0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