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3일 수요일
고스톱과 하나
먼 후일, 2013년 이후의 일요일을 떠올린다면 고스톱일 것이다. 주일 예배는 너무 당연하므로 그렇다. 요일은 오전과 오후로 나뉘는데 오전은 아들과 남편과 함께 장장 25킬로미터나 떨어진 교회에 가는 것이었고 (교회의 위치는 내가 태어난 곳과 몇 백 미터 오차 범위 안에 있다. 그러므로 나는 교회에 가는 것이 마치 친정에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많다. 하긴 하나님 아버지도 계시고, 초등학교를 같이 다니던 친구들도 있고, 어릴 때의 나를 기억하는 어르신들도 계시니 교회를 친정이라고 해도 무방하겠지? 1974년 이후 제기역 1번 출구 계단은 나의 절망과 희망과 소망이 절절하게 배어있다)오후 6시 무렵부터 10시 어귀까지는 아들과 남편과 아들의 여자 친구인 하나와 같이 고스톱을 치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둘 다 매우 중요했다.
교회를 가고 오는 동부간선도로는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였고 운전하는 아들과 음악, 영화, 소소한 일상 등을 수다 떠는 시간은 행복했다. 일주일 동안 전화 한 통 문자 한 번 안하다가 일요일만 되면 엄마 아들의 끈끈한 관계를 확인하게 되는 셈이다. 우리는 모자지간이라기보다는 오래된 친구 같은 우정을 공유하고 있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들이 서른여섯 살이 되도록 별다른 훈계를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위아래가 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그런 교류가 나에게는 맞았다.
아들과 함께 미국 캐나다 패키지여행을 하는데 둘이 어찌나 친구처럼 다정한지(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요상스런 관계가 아닐까 의심했다고 두 딸과 여행하던 동갑내기 여인이 나중에 말해주었다)여행 일주일이 지나도록 우리 사이가 설마 모자지간이라고 짐작도 못했다는 전설(ㅋㅋ)이 있다.
이곳으로 이사하기 전인, 작년 8월 이전까지는 우리 집 작은 방 창문과 아들 아파트 현관이 20도 각도로, 한눈에 보였다. 우리는 사이좋게 서로의 집을 오가며 고스톱 판을 벌였다. 같이 식사를 하는 경우는 드물었고 두어 차례 배달 음식을 먹은 거 외에는 커피와 약간의 다과로 충분했다. 하나(아들과 같이 사는 여자 친구의 이름이다. 이렇게 공개해도 괜찮은지, 혹시 하나가 싫어하지는 않을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나는 '하나'를 '하나'라고 부를 때 너무 기쁘고 쓸 때는 더 기분이 좋아지므로 어쩔 수 없이 그냥 쓰기로 한다)의 집으로 가서 고스톱 판을 벌이면 하나가 주로 냉커피를 만들어 놓았고 우리 집일 때는 내가 만들었다. 진하고 달게, 라는 취향이 네 식구 모두 동일했으므로 냉커피 제조는 아주 쉽고 편했다.
고스톱을 시작하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은 자신의 판돈을 공개하는 것이다. 정확하게 세어 여기 봐, 맞지? 맞지? 나 이만오천원이다, 이렇게 말이다. 늦은 밤 누군가는 실컷 잃고 누군가는 쫌 따고 누군가는 막판에 잃고 이런 식으로 희비가 엇갈리면서도 꼭 하는 일은 수익 계산이었다. 나 이번에 팔천 육백 원 잃었네, 나는 이천 삼백 원 땄네, 하는 식의 결산 말이다. 판돈은 일인당 이만 오천 원에서 삼만 원 사이인데 몇 주 연짝으로 누군가 기세등등하게 딸 때도 있지만 실력도 비등비등하고 가끔씩 멍청기가 도는 것도 비슷하고 어이없이 고 해버리는 것도 비슷하고 흔들고 쓰리고라고 좋아라하면서도 정작 계산 안하고 후회하는 일이 균등하게 있는 수준이어서 환상의 고스톱 패였다.
요즘은 고스톱을 시작하는 시간과 K-pop 방영시간이 맞물려 있어서 고스톱과 노래 평가를 같이 하느라 남편 빼고 세 사람은 좀 혼돈스러운 한 시간을 보내는데 그 때를 놓치지 않고 남편이 따버리는 경우가 많다. '열고'가 별명이 될 만큼 약발을 많이 타던 남편은 요즘 뒤늦게 약아져서 웬만해서는 고를 안 하고 안전빵 위주로 가는 바람에 야유를 한 몸에 받기도 한다. 막판에 돈을 좀 딴 것 같으면 패가 좋은 것 같은데도 또이또이라는 둥 흔든다는 둥 쌀집(홍싸리 흑싸리가 많다는 것이징)이라는 둥 하면서 죽어버리고 뒤돌아서서 동전을 세느라 여념이 없는 것이다.
그 시간은 정말 좋았다.
내 인생에 고스톱이 그렇게 많은 시간을 차지할 줄은 정말 몰랐다.
아들 어릴 때 테트리스 몇 달 같이 해본 것이 전부일 정도로 게임 혐오증이 있는 나이지만 남편의 유일한 낙이고, 아들에게 고스톱을 배운 하나의 취미생활이기도 한지라 도저히 고스톱을 막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나는 남편에게 늘 지는 편이고 아들은 하나에게 꼼짝도 못하니 말이다.
두 달 전인가, 허리디스크 때문에 응급실까지 끌려갔던 남편이 아이고 아이고 앓는 소리를 내며 누워 있기에 오늘 고스톱은 못하겠네, 했더니 벌떡 일어나 할 수 있다고, 오히려 신경을 다른 곳에 쓰면 된다는 것이었다. 하도 보채기에 아들에게 전화했다.
아들이 전화 받고 놀라는데 아들 옆에서 얏호, 하는 하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가 아파서 오늘은 못하겠거니 했는데 고스톱 치자고 호출이 오니까 하나가 너무 좋았던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남편은 쌩쌩하게 세 시간이나 고스톱 판에 앉아 있었다. 놀라워라. 하지만 끝나고 아들이 가자마자 다시 앓는 소리를 하며 밤새 앓았다. 그런 것을 보고 정신력이라고 하는 것일까?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고스톱을 치고 돌아가는 아들에게 반찬을 싸주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비지찌개가 먹고 싶다고 해서 서리태를 불려 갈아서 토요일에 맛있게 익어가는 비지찌개를 찍어 보냈더니 당장 받으러 온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아들과 하나가 (둘은 껌딱지처럼 붙어 다닌다)받으러 오는 김에 또 고스톱 한 판이 벌어졌다.
그런 경우가 가끔 있는데 추석 연휴이거나 설 연휴(아마 올해도 연짝으로 사흘은 고스톱 판을 벌이지 않을까 싶다), 아니면 하나의 여름휴가 기간에는 며칠 씩 연짝으로 판을 벌린다. 어쨌든 남편은 로또 맞은 표정이었다. 늘 심심해하는 남편은 가장 재미있는 시간인 셈이다. 그렇게 해서 토요일 밤도 떠들썩하게 보냈다. 겨우 몇 천원밖에 안 잃었으니 나도 선방을 한 셈이었다.
그런데.
추운 밤 다시 차를 타고 가야하는 아들과 하나에게 비지찌개 냄비를 들려 보내고 차까지 배웅을 하고 돌아왔더니 남편 입이 십리는 나와 있는 것이 아닌가. (이 말을 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서론을 늘어놓았다. 난 말이 너무 많다)
도대체 하나는 집에서 하는 일이 없다, 는 것이다. 가끔 보면 설거지도 밥도 빨래도 아들이 하는 것 같다, 는 것이다. 하나가 집에서 음식을 전혀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늘 밖에서 사먹거나 시켜먹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랑 아들이랑 통통, 에서 뚱뚱 을 지나 왕뚱보들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었다.
내가 보기에도 하나는 집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부모와 함께 사는 젊은 여자가 그렇듯 차려주는 밥이 있으면 먹고, 게임하고, 놀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는 눈치였다. 식사 때가 되어도 무엇을 만들어서 먹어야 한다는 개념이 없는지도 모른다.
덩달아 나까지 욕을 먹었다. 가르치지도 않고 훈계도 안하고.
맞는 말이었다.
남편이 맘대로 하는 말을 그냥 듣기만 했다. 나도 할 말은 있었지만 내 경험에 비추어 보건대 해봤자였다. 사람은 일흔 살이 넘으면 남의 말은 듣지 않는다. 예순 살이 내일 모레인 나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사람들은 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나면 자신이 옳지 않았다는 것과 자신이 침 튀기며 주장한 것이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것은 슬프게도 너무 늦어버린 시간이다. 상대방이 떠났거나, 사라졌거나, 죽었거나.
나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여보, 나는 하나가 좋아. 하나가 이뻐. 하나가 하는 짓은 다 이뻐. 하다못해 아들에게 화를 내는 모습도 정말 귀여워. 고스톱에서 박을 쓰고 열 받아서 베란다에 나가 새빨간, 그 독한 말보로를 빡빡 피워대는 모습도 이뻐. 하나의 앙증맞은 새끼발가락까지 이뻐. 천진스럽게 웃는 모습은 말할 것도 없고 과자를 아삭거리는 입술도 이뻐. 고를 할까 말까 눈을 반짝이며 고민하는 표정도 너무너무 이뻐.
여보, 나는 아들과 하나가 같이 있는 게 좋아. 하나가 없는 집에 아들이 혼자 산다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어. 음식을 못한다거나 안한다거나 하는 것은 별로 나에게 중요하지 않아. 하나도 성인이고 아들도 성인인데 누가 옆에서 말한다고 듣지 않아. 그 나이 때의 나 역시 그 누구의 말을 듣지 않았던 것처럼. 나는 하나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행복해. 하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아마 그럴 거야. 그렇지 않다면 삼 년 가까이 매주일 마다 와서 놀지는 않을 거야. 나는 그것을 평생 하나에게 감사하고 싶어. 아빠를 즐겁게 해주어서 고맙다고 늘 마음속으로 감사해. 무엇인가 작은 어떤 것들이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일요일 저녁마다 집에 와서 몇 시간 동안 같이 노는 그 시간은 천국 같아.
아들이나 하나나 어느 순간 새로운 자각이 오면 다이어트도 할 것이고 집에서 음식도 만들 것이고 좀 더 가정적인 서포트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그들의 문제가 아닐까. 우리는 그냥 우리 이쁜 하나와 아들을 힘껏 사랑해주면 안될까?
다음 주에는 아들이 나에게 동태찌개를 미리 주문했다. 식당에서 동태찌개를 사먹으면 요만한 게 두 토막 겨우 있는 것이 감질났다는 것이다. 한 삼십 마리 사다 줄까 엄마? 아들은 정말 동태찌개가 먹고 싶은 모양이었다. 두 마리만 사서 찌개를 만들어도 큰 냄비에 가득 찰 텐데...
오후에 햇볕이 좋으면 시장에 가서 동태를 사올까?
'난 동태는 싫은데 국물은 좋아'
동태 타령을 하는 아들 옆에서 쪼그만 목소리로 말하던 하나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번에는 좀 시원하게 국물을 많이 넣어야겠다. 우리 이쁜 하나가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2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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