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째 노트북 가방을 짊어지고 동네 카페를 순례하는 재미로 살았는데 어제로써 카페 순례는 쫑 쳤다.
아침먹고 휭 나가서 두시 넘어서 겨우 집에 들어오는 소행을 마땅찮게 여기던 남편이 방을 만들어 준 것이다.
방 하나, 거실 하나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큰 방 하나 작은 방 하나라고 해야할지 모르지만 어쨌든 우리집은 방 같은 게 두 개 있다.
거실인지 큰방인지에는 피아노 소파 TV 책장 서랍장이, 작은 방에는 매트리스만 하나 달랑 놓여있었다. 너무 작았던 것이다.
현관에 화장대가 있고 싱크대 앞에 책상이 있는 기묘한 형태로 몇 달이 지났다.
난 새로 장만한 노트북에 부엌에서 조리할 때 필시 발생할 기름때가 앉을까봐 늘 노심초사였다. 이전에 쓰던 노트북은 매트리스 옆에 딱 붙어 있는 바람에 이불 퍼덕이는 먼지가 온통 들어붙어 컴퓨터 수리 기사를 경악하게 만들기도 했던 것이다.
식탁이 놓여야 할 바로 그 자리에 책상을 놓았으니 사방이 다 뚫여 있는 길바닥에 있는 꼴이었다. 오른쪽으로는 현관이 바로 있고 왼쪽으로는 항상 TV가 켜져 있는 큰방이 붙어 있었다. 바로 뒤 싱크대에서 남편이 설거지(윽)라도 하면 음악이나 강의나 아련한 빗소리처럼 찢어져서 들을 수밖에 없었다. 나의 한쪽 귀는 막장드라마 일일 연속극의 대사를 따라다니고 다른 한 귀로는 미츠코 우치다의 베토벤을 들었다. 나는 정말 정신분열증에 걸리는 줄 알았다.
병원 치료가 끝나자마자 동네 카페를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기똥찬 카페가 코앞에 몇 개나 있었고 한달에 몇 개씩 새로 문을 열었다. 상가가 형성되는 지역이므로 눈을 뜨면 새로운 식당, 슈퍼, 카페, 병원이 깜짝 놀랄만큼 수없이 생겨났던 것이다.
나는 아침마다 집을 나서는 순간이 좋았지만 남편은 베란다에서 안녕을 수없이 하면서 겨우 몇 시간 후면 돌아올 나를 그렇게도 아쉬워했던 모양이다.
결국 매트리스를 큰방으로 빼고 소파를 부엌 앞으로 옮겼다. 식탁 자리에 있던 나의 책상은 매트리스가 놓였던 자리에 놓였다. 좋았다.
의자에 앉아있다가 쉬라고 소파에 곁들여 있던 널찍한 스툴도 벽에 붙여주었다. 그것도 좋았다.
그렇게 해서 2013년 3월 26일까지 존재했던 나의 방이 몇 년 동안 구름속을 헤매다가 다시 내곁으로 돌아왔다. 거의 삼년 만이로군.
고시원 면적보다 한 뼘 쯤 더 클까말까한 면적의 방이지만 문을 닫으면 오롯한 나만의 공간이 된다는 것이 감사했다.
이제 언니가 와도 머물 곳이 생겨서 다행이다. 트렁크를 여기저기 늘어놓고 책상 밑에 다리를 들이밀고라도 잠을 잘 수는 있겠지.
이제 나도 숨을 좀 쉴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에게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세상의 공간이 필요하다.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이 방에서라면 어쩌면 '작가의 장벽'을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미소와 함께 시작하는 하루.
나만의 공간, 나만의 서재, 나만의 여유, 나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게 해주신 나의 하나님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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