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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무술생의 아름다운 무술년

귤 한 박스의 놀라운 행복!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8. 1. 28.

지난 수요일은 24일.

25일 연금들어오기 바로 전날.

이런 날은 은행의 잔고는 거의 제로에 가깝고, 수중의 현금 역시 지폐를 찾을 수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월급전야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함.

아니, 어쩌면 카드를 디립따 긁거나 이자 겁나게 비싼 마이너스 대출을 받고 있을지도.

거기에 비한다면 나는 얼마나 얼마나 건전한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냐!

있으면 쓰고, 없으면 안(못)쓰고. 이런 심플한 인생을 꿈꾸며 살아왔는데 내가 지금 그러하다니

정말 놀라울 따름...

 

지난 수요일은 말도 못하게 추웠다. 그 와중에도 우리 남편과 나는 몸 전체를 꽁꽁 싸매고

빙판길을 조심조심 걸어서 동네 교회 수요예배를 가셨다. 대견한 크리스천 부부.

역시나 목사님은 기도하시고, 사모님은 화면 조정하시고, 아드님은 키보드로 반주하시고-

주일에는 감신대 대학원 다닌다는 아드님이 섬기는 교회에 가므로 이번에 수능 보았다는 따님이 반주해준다. 둘 다 반주 잘한다- 따님은 엄마 옆에도 갔다가 오빠 옆에도 갔다가 하면서 놀고 있었다. 십분 먼저 도착했더니 사모님께서 드륵드륵 커피를 갈아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신다.

여전히 가족뿐인 예배자였는데 우리 부부가 오니 좀 활기차 보이는 것 같았다.

목사님은 설교 하시면서, 권사님 부부 잘 계셨느냐고 인사까지(이게 실화냐. 설교 중에 오고가는 문안인사가!)하시고...

우리가 없으면 가족끼리였을 텐데 목사님은 단정하게 양복입으시고, 설교 준비 빵빵하게 해 오셨다. 찬양곡까지 몇 곡이나 미리 준비하시는 모습이 참, 참, 아름다웠다.

큰아들의 잘못은 아버지의 마음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결론도 좋았다.

 

그렇게 포근한 수요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나 : 우리 귤 먹은지 오래 되었네.. 귤 사자.

남편 :그러자!

둘이 손 꼭 붙잡고 롯데 슈퍼로 직진하여 귤의 가격과 상태를 살펴보았던 바...

갑자기 간이 부은 나는 디따 큰 귤 박스에 필이 꽂혔다. 삼만원!

내 인생에서 통틀어 삼만원짜리 귤 한 박스를 산 적은 단 한번도 없었는데!

나 :(남편을 힐끗거림) 이거 사면 원없이 귤 먹겠넹

남편 : 그러면 살까? 

나 :근데...삼만원이면 너무 비싼 것 같기도 하궁...난 돈 없엉.

남편 : (호기롭게) 내가 살께.

나 : 와, 정말??(매우 즐거워하는 표정을 남편에게 보여줌 ㅋ) 왕고마웡~~~

 

그리하여, 남편은 마치 공사장 인부처럼 귤 한 박스를 어깨에 매고 뒤뚱뒤뚱

빙판길을 겨우겨우 걸어왔다. 나는 무거운 것 들면 안된다고 해서(의사가 그렇게 말했는데 남편은 그말을 아직까지 잊지 않고)일흔 다섯살이나 된 노인이 혼자 그 무거운 귤박스를

들었다는...

 

당도는 완전 보장한다는 직원의 말을 철썩같이 믿고 짜잔, 개봉하였는바...

기가 막힌 귤이 하나 가득! 하나 까서 맛을 보고 우리 남편과 나는 완전 기절할 뻔.

세상에 이렇게 달고 맛있는 귤이 있었다니!!

 

우리는 하루에 8알씩 꺼내어 먹기로 했다.  

그래서 아침마다 내가 베란다의 귤박스에서 여덟 알을 꺼내어 식탁에 놓으면

성실한 우리 남편이 기가 막히게 예쁘게 까서 접시에 펼쳐놓는다.

나는 그냥 냠냠 집어먹기만 하면 된다.

 

수요일 저녁부터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까지 귤을 먹을 때마다 우리는 놀라고 있다.

아니, 이렇게 달고 맛있는 귤이 있나!!

정말 놀라운 귤을 먹으며 먹을 때마다 깜짝 놀라며 귤을 먹고 계시다는...

 

오늘도 베란다 세탁기 위에 놓인 귤을 여덟 알 꺼내면서 완전 행복....

박스 안을 보니 아직도 허벌나게(ㅋㅋ) 많은 귤이 있는 것을 보고 더더 행복....

 

지난 주일 친구 부부가 와서 경치좋은 야외에서 파스타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깢 몇 천(만원) 때문에 이러저러 할 일도 없고 해서 그냥 냅뒀어."

그런 이야기 들으면 나는, 이 세상에서 사는 사람 같지 않은 느낌이 든다.

만원도 아니고 십만원도 아니고 백만원도 아니고 천만원이 넘는 돈을 그까짓 몇천 만원,

이라고 말하는 것이 너무너무 놀라웠다.

근데 집에 와서 TV를 보고 더 놀랬다. 일용직 노무자 하루 일당이 15만원 20만원 한다는 것. 식당에서 설거지 하는 분들 월급이 180만원에서 200만원이 넘는다는 것.

(내 친구가 실제로 주방에서 일을 했는데 230만원 받고 했단다. 억)

(그럼... 문창과 나와서 방송사에서 작가 일을 하는 사람이 한달에 100만원도 못받는다는 이야기는 어찌된 셈일까나..... 그것도 분명 사실인데....)

 

돈버는 능력 제로인 나는 사람들의 돈에 대한 생각이 너무 쎄지 않나 그런 생각만....

3만원짜리 귤 한 박스만 있어도 이렇게 좋은데 그깢 몇 천 하는 친구는, 불만이 너무 많아보였으니.

 

하나님.

그저 감사드립니다.

연금 들어오기 전날, 남편이 기마이(ㅋㅋ죄송)쓰는 바람에 황홀한 귤 한 박스 생기게

되었네요... 그리고 귤 한 박스가 우리에게 기가 막힌 기쁨을 주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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