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1일
그녀는 믿는 버릇이 있다
매달 시집을 하나 골라 매일 두 편씩 필사하고 있다. 작년 3월에 시작했으니 어언 일년이 되었다. 그동안 열두 시인의 시집을 일일이 필사했다. 김경주에서 시작하여 조연호까지. 좋은 시간이었다. 3월은 최문자 시인의 <그녀는 믿는 버릇이 있다>를 필사한다. 새로운 시인의 새로운 시는 낯설지만 곧 적응이 되겠지. 시인의 시를 옮겨 적으며 시인의 마음을 상상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지금 스리랑카를 여행 중인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호텔방에서 필사한 시와 여행지에서의 아름다운 사진이었다.
필사를 같이 하는 모임은 이십년이 훌쩍 넘은 수필 동인 모임이다. 매달 한 번씩 거의 빠지지 않고 작품을 써서 만난다. 한 달에 한 편씩 써오는 수필이 어찌 생각하면 쉬운 듯도 보이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날마다 조금씩, 이라는 올해의 나의 슬로우건도 그런 의미가 담겨있다. 허둥지둥 무엇엔가 쫓기는 듯 삼십 년 넘게 살아왔지만 마음만 조급할 뿐 결과물은 빈약했다. 욕심이 앞섰던 탓이다. 무엇인가 이루려는 욕심, 어딘가로 올라가려는 목표의식은 종종 사람을 '어리석게(피곤하게만 하고 영양가 없는)' 만든다. 이것은 내가 살아온 삶의 경험을 말하는 것이다.
엊그제 인터뷰에서 발레리나 강수진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일을 별로 생각하지 않아요. 오늘만 생각해요. 오늘 만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요... 그런 류의 이야기를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을 때 나는 그녀의 높은 경지를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페퍼민트 향이 짙은 차를 마시면서 '푸른 숄'이라는 제목의 러시아 민요(Le Chale Bleu // Les Yeux Noirs [4:13])를 듣고 연애에 미친 듯한 어느 여인의 시집과 사순절 묵상집과 중동 테러리즘 책이 어찌 보면 대단히 언앙상블하게 놓여 있는 나의 방에서 지금 글을 쓰고 있다. 시집의 제목은 <그녀는 믿는 버릇이 있다>이다. 내용에 관계없이 제목이 좋았다. 어수룩해 보이는 여자가 나는 좋다.
남편은 컬러링 북에 색칠을 하고 태극기를 달고 그리고 세탁기를 돌리고 있다. 칼칼하도록 싸늘한 바람이 콧 끝에 감기지만 기가 막히도록 아름답게 맑은 3월의 첫날이다. 고요한 일상이 나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더 없이 평안하게 해준다.
지난 일요일 남편은 친목 도모 고스톱을 완전 망쳐버렸다. 누가 봐도 시시비비가 분명한데 남편은 끝까지 억지와 투정과 말도 안 되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조목조목 따지던 아들은 분연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앞으로의 인생에 고스톱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대 선언을 하고 가버렸다.
그 모든 원인제공자인 남편은 어이없게도 모든 원인을 나와 아들에게로 돌리고 있었다. 세상에. 아들이 가장 화가 난 것은 아빠는 남의 말은 전혀 듣지 않고 자신의 말만 한다는 것이다. 내가 아들에게 말했다. 같이 사는 사람도 있는데 뭘 그래. 그냥 참고 넘어가면 효도하는 건데.
대화를 아무리 해도 통하지 않고, 소용없는 사람이 간혹 있는데 그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바로 나의 남편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어제 기분전환용 펌을 하고 시장에 들러 남편이 좋아하는 홍어무침을 난생 처음 사고, 남편이 좋아하는 사골국물 한 통과 머리 고리도 샀다. 남편이 좋아하는 백숙을 만들어 주려고 큼직한 닭도 한 마리 샀다. 오전에 집을 나와 미용실에서 너덧 시간, 오후가 훌쩍 넘어 찬바람 부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남편의 전화가 왔다.
거기 어디야~~ (꾸민 듯한 상냥한 남편의 목소리)
나도 상냥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러고 보니 무엇인가 남편이 실수를 하거나 대놓고 잘못할 때 나의 반응은 남편이 좋아하는 먹거리였다. 더 잘해주고 싶었다. 자신이 한 잘못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지금 세상에 자기 혼자라고 쓸쓸해 할 남편이 안쓰러웠다.
집에 가서 홍어회를 꺼내 식사를 차려주었는데 남편은 역시나 맛있느니 어쩌느니 언급 한 마디 없었다. 그것은 칭찬에 인색한 남편의 특기. 어제의 분란에 대해서는 서로 언급을 피했다. 남편은 이제 일요일 저녁을 무슨 재미로 살까 내가 오히려 걱정이다.
남편은 내가 사다 준 컬러링 북을 펼치고 예쁘게 칠을 하고 있다. 순한 양처럼. 여보 지금 무슨 생각하고 있어요?
커피 한 잔 타다 주고 옆에서 꽃 잎 몇 개를 같이 칠했더니 남편은 너무 좋아한다. 나는 그 모든 것이 감사하다.
나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있다. 복 있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나는 누리고 있다. 그리고 그 '누림'은 인과응보에 관계없이, 나의 행위와 관계없이, 그냥 마구 쏟아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자랑치 못할지니라. 이것은 바울의 말씀. 아멘.
나의 내일을 나는 알지 못하지만 그녀만 믿는 버릇이 있는 게 아니라 나 역시 믿는 버릇이 있으므로 아무도 알지 못하는 비밀한 미소를 지으며 이 순간을 살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신의 딸내미를 결코 고통 중에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이고 가장 좋은 것으로 예비해 두실 것이고 무엇보다 서로 사랑하며 그렇게 웃으며 살기를 바라시고 그렇게 살 수 있도록 해주실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그녀만 믿는 버릇이 있는 게 아니란 말이다.
창밖을 보니 남편이 달아놓은 태극기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남편은 밖을 살피더니 태극기를 달아놓은 집은 우리 집뿐이라고 한다. 대한독립만세다.
(원고지 15장)
(첫 컬러링북의 첫번째 그림이므로 좀 촌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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