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와이퍼가 소용없을 정도로 퍼붓는 빗줄기를 뚫고 교회로 출발했다.
내심 걱정이 많았다. 도로는 무참할 정도로 쏟아지는 물폭탄으로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처음 십여분 간은 언제쯤 차를 돌리라고 해야하나, 그런 생각만 줄곧 했는데
동부간선도로에 들어서자 비가 그쳐버렸다. 세상에나.
서울과 경기도의 차이인가보다, 하고 우스개소리를 나누었다.
찬양으로 시작하는 2부 예배도 나름 좋았다.
좌청룡 우백호 사이에 앉아 예배의 감격에 빠져들려는 찰라, 아들이 귓속말을 했다.
-엄마. 목사님이 갑자기 엄청 늙으셨네?
-그렇게 보이니?
-봐, 갑자기 폭삭 늙으셨어(58개띠 목사님인디....)
교회 사정을 알 리 없는 아들은 한참 목사님을 보다가 다시 말을 덧붙였다.
-걱정이 많으신가봐. 표정이 너무 어두우시네. 근심 걱정 가득찬 모습이야...
예배에 별 관심이 없고, 요령껏 조는 일에 최선을 다하던 아들의 눈에도
목사님의 이상한(?)변화가 눈에 띄었던 모양이다.
아들 말을 듣고 찬찬히 목사님을 살펴보았더니...
아들 말이 맞았다.
약간 불안해 보이는 눈동자 하며 어두운 기색이 가득찬 얼굴, 게다가 누가봐도 근심 걱정이
가득찬 모습이었다....
그런 목사님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울컥했다.
연민이 한없이 솟으면서 나도 모르게 기도가 나왔다.
하나님. 우리 목사님의 마음을 위로해 주시고 평안을 주시고 그리고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십시오.
진심이었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나보고 안티목사라고 하는 모양이지만 결코 그런 적 없다.
나로 말한다면 정의를 주장하는 편 보다는 사랑을 택하는 쪽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정의로 판단하셨다면 세상 어느 인간 하나도 구원받지 못했으리.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라는 말씀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니잖은가.
예수님은 정의를 외친 적이 없다.
오히려 정죄하지 말라고 하고 판단하지 말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지 않나?
믿는자마다 영생을 얻게하기 위함이라고 하지 않나?
그 모두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 때문 아니런가.
하지만, 내가 보기에 교회에서 사랑을 거론하면 오히려 책망을 받게 되어있다.
참 이상한 일이지만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자신들의 잣대로 옳고 그름을 가르려하고, 자신들의 생각이 하나님의 편에 서있다고 믿는다.
세상에... 하나님은 누구의 편도 아니잖아?
어제, 독서회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자신이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은 옳은 쪽이며 다른 사람들은 참 어리석으며
자신은 너무 똑똑하며 다른 믿는 사람보다 믿음이 우월하며
남보다 잘났으므로 큰소리치며....
아아, 이게 교회중진이 된 보수꼴통 기독교인들의 철면피하고 막무가내인 믿음이다.
나는 참 많이 슬펐지만 그래도 감사했다.
그 어르신들의 자랑을 별로 가슴아프지 않게 잘 받아줄 수 있었으니
(고만큼 그릇이 커진 것이 스스로 대견했다. 미쳤어, 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어르신들이 저렇게 왜곡된 신앙을
가지고 있으니, 하면서 혀를 쯧쯧 차지도 않았고, 속으로 흉보지도 않았다.
나는 그냥 그분들의 담화를 듣기만 했다. 와, 정말 나는 많이 컸나봐!!)
이 세상에 정의는 없다고 생각한다. 정의 사회 구현은 그러므로 신군부 때부터 이미 사장된 슬로우건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샌델 교수도 언급했지만 쉽게 손으로 잡을 수 있는게 아니다. 어쩌면 정의는 영원히
보이지 않는, 잡아지지 않는 사전적 용어로 그칠지도 모르겠다.
단, 비교차원에서 얼만큼 정의 쪽에 가까운가는 짐작해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 역시 객관적 잣대가 미약하다.
특히 신앙에서는 더하다.
누가 옳은가, 무엇이 옳은가, 어떤 방향이 옳은가, 어떻게 해야 옳은가.
남녀노소 빈부격차 그외 모든 차이점을 극복하고 합일점을 찾기는 어렵다.
실은 아주 쉽기도 하다.
'나는 당신보다 낮아요. 나는 당신보다 못해요. 나는 당신보다 낮은 자에요. 나는 당신보다 훨 어리뻥뻥해요.
나는 당신보다 나은 것이 하나도 없어요. 나는 당신보다 못났어요. 나는 당신보다 착하지 않아요...
그 외에도 괄호를 치고 수많은 단어를 대입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겸손과 온유로 상대방을 대한다면
정의로운 사람은 정의롭지 않은 사람에게 무너질 수도 있고, 그 무너짐은 사회질서의 파괴가 아니라
새로운 '사랑'의 질서안에 모든 것이 편입됨으로
길고 긴 수저로 상대방에게 밥을 떠먹여주는 천국 생활이 시작될 것이다.
내 생각이다.
그냥 내 생각이다.
오늘 그, 역사적인, 목사님을 고뇌에 빠트린 임원회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어떻게 끝났는지,
그래서 어떤 결론에 이르렀는지 알 바 없지만
이 말 한마디는 꼭 하고 넘어가야겠다.
좀 전에 들은 설교 말씀인데
믿음은 (발)쭉 뻗고 쉬는 것이라넹?
그렇다면 (발)쭈욱 뻗고 아주 편하게 쉬어야징^^
목사님, 사랑해요.
임원회에 참석한 여러분, 사랑해요.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 사랑해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 사랑해요.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며 모든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는 하나님,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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