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은 '향유'라는 단어를 들으면 반사작용처럼 떠올리는 성경의 한 장면이 있다.
죄많은 여자가(분명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주석가들은 그녀가 창녀였을 거라고 짐작한다. 그녀의 이름이 마리아로 나와있기도 하다. 그 마리아가 막달라 마리아인지 확실하진 않은 것 같다)
예수님 발에 계속 입을 맞추고 자신의 긴 머리카락으로 발을 씻기고 급기야는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님 머리에 값비싼 향유, 즉 향기로운 기름을 부어 버리는 장면 말이다.
내가 말하려는 향유는 주이상스의 번역이지만 나 역시 그리스도인인지라 주이상스보다 먼저 죄많은 여자의 향유가 떠오른다. 그래서 서두가 이상해졌넹...
요즘 나의 향유는
'드림'으로 가득차 있다. 소박한 드림으로 하루를 향유한다는 사실이 참 경이롭다...
눈을 뜨자마자 짧막한 감사기도를 올려'드리고'
천변을 걸으면서 이 세상의 고요, 이 세상의 아름다움, 이 세상의 질서에 대하여 감사기도 '드리고'
꿀보다 더 달콤한 말씀을 들으며 걷는 그 시간 내내 '엑스타시' 수준의 놀라운 감동에 대하여 또한
감사기도 '드리고'
느지막히 일어나는 남편이 약 먹을 때 마실 물을 미리 컵에 따라 '드리고'
냉장고를 탈탈 털어 한 두 가지 음식을 만들어 '드리고'
식사 중에 옆에 앉아 조잘대면서 식사의 즐거움을 두 배 더 '드리고'
식후 약을 먹기 위한 물을 따라 '드리고'
식후의 커피를 만들어 '드리고'
분이 나는 하지 감자를 간식으로 쪄'드리고'
또한 심심풀이로 육포를 몇 개 다탁위에 놓아 '드리고'
16곡인지 18곡인지 하여튼 영양만점 미수가루를 우유에 타고 쉐이크로 잘 흔들어 '드리고'
뉴스 끝의 일기예보를 같이 보아'드리고'
잠시 수다에 동참하면서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 '드리고'
샌드위치를 한 쪽 만들어 '드리고'
점심으로 비빔국수를 만들어 '드리고'
샤워를 시켜'드리고'
샴푸도 시켜'드리고'
덧난 부위 이곳저곳 세심하게 찾아서 피부병 약도 발라'드리고'
등도 긁어'드리고'
낮잠 자는데 선풍기도 돌려서 틀어'드리고'
온도차이가 나는 왼쪽 팔도 주물러 '드리고'
세계 여행 프로그램도 같이 보아'드리고'
담배도 사다'드리고'
닭죽도 만들어'드리고'
밥상머리에 앉아 이것저것 반찬도 집어'드리고'
냉커피 한 잔 만들어'드리고'
팥도너츠 해동시켜 '드리고'
저녁 약 드실 물 따라 '드리고'
미드보시는 옆에서 잠시 참견도 해'드리고'
뉴스 보고 같이 깜짝 놀래'드리고'
걷어찬 이불 덮어'드리고'....
하루에 대체 몇 가지를, 얼마나 많이 '드리는지' 헤아릴 수 없지만
참으로 경이로운 것은
그 '드리는'시간이 결코 힘들지 않고, 결코 괴롭지 않고
참, 많이 즐겁다는 것이다.
일상의 기쁨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 좀 억울한 감도 없진 않지만
모르고 죽을 뻔 한 거 이제라도 알았으니 그 또한 감사하여
그래서 어제도 열씨미 감사기도 올려'드렸다'
이런 것을 향유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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