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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라 60

나의 나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7. 12. 22.

2016329일에 쓴 글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는 나의 나

 

 

나의 나

 

 

여권 사진을 찍었다. 현상된 사진을 보니 전혀 나의 얼굴 같지 않았다. 아무리 보아도 이상했다. 내가 코가 저렇게 생겼나? 내가 입술이 저렇게 생겼나? 내가 표정이 저렇게 색깔이 없었나? 아무리 점수를 주려해도 도저히 인정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여권 사진을 멋스럽게 미소 짓는 셀카 사진 옆에 나란히 붙여놓았다. 무뚝뚝하고 무디게 생긴 나이든 여자는 자연스러운 표정의 셀카 속 여인과 전혀 다른 사람인 것처럼 분위기며 느낌이 정말 달랐다. 하지만 나는 자주 그 두 여인을 들여다보았다. 여권 사진 속의 나와도 친해지고 싶었다.

나이가 들수록 변하고, 기분에 따라 변하고, 누구를 만나는가에 따라서도 변하는 얼굴이 신기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는 겉모습도 그러할진대 사람 속은 대체 어떨까?

사람은 자신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자신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는 한 것일까. 살면 살수록 나 자신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이러이러하다고 내 나름 정리했고 그렇게 수십 년을 살아왔는데 어느 순간 그것이 아닌 것을 알게 되었다. 당혹스러운 순간이었다. 하지만 나만 그런 시행착오를 겪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오죽하면 고대 철학자도 너 자신을 알라고 하지 않았던가. 현대 사람들은 너무 바빠 자신이 누구인지 파악할 여력이 없어 보인다. 그것은 분명 불행한 일이다. 죽을 때까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산다는 것 말이다.

이제껏 내가 알던 나와는 전혀 다른 낯선 내가 불현듯 목소리를 낼 때 나는 놀랐다. 처음에는 혼돈스러웠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서 그 낯선 모습도 결국 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무지 낯설기만 한 나의 내면아이는 하나가 아니었다. 내 안에는 무수한 내가 도사리고 있다가 예기치 않은 순간 튀어나왔다. 내 안에 내가 너무 많다는 것을 너무 뒤늦게 알게 되었다.

결국 나에 대하여 나 스스로도 규정지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일정한 테두리 안에 가두어지지 않는 나를 억지로 도덕과 종교와 규범의 틀에 넣어보려고도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나는 거의 언제나 삶의 도정을 야생마처럼 향방 없이 날뛰며 살았다. 당연히 길이 없었다.

길이 아닌 곳만 골라 갔기에 몸은 상처 투성이었고 영혼에도 깊은 상처자국이 패였다. 그곳에 나의 슬픔의 정조가 배어있다. 그것은 줄곧 나의 삶을 관통해왔고 이제야 비로소 나는 그것을 아름다움이라고 칭한다. 그것이야말로 바로 나의 나이다.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신을 인정한다는 것이 어쩌면 가장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

 

나의 글쓰기는 그러므로 나의 나를 표현하는 방식이었고 나의 나를 보듬어 안는 시간이기도 했으며 나의 나를 끊임없이 불러내어 자유로이 헤맬 수 있게 시공간을 넓히는 과정이었다. 파멸과 실패와 쾌락과 고통과 주이상스는 동의어이며 지난날들의 격정과 어제의 희열은 다르지 않으며 내일의 권태와 몰입과 불행의 감각과도 다정하게 손을 내밀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한다.

그렇게 이제는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자각이 너무 늦지는 않았기를. 모든 인간은 다중적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서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많이 너그러워졌다. 그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지만 나의 나를 더욱 사랑하는 가장 이기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나에게는 가족이 있지만 어느 면에서는 영원한 독신이다. 나의 생은 한곳에 머물지 않으며 나의 윤리는 나에 대한 부인과 승복 사이에서 자유롭게 피어나며 나의 인식은 사전 밖에서 더욱 화려해진다. 데카당스의 옷을 입고 있으나 조문객처럼 경건하고 여전히 실패의 돌을 던지곤 하지만 지는 것을 슬퍼할 이유가 없다. 피조물의 아름다움은 운명의 결정론자가 자신이 아니라는 것에 있지 않던가.

나는 밤마다 잠이 들지만 나의 영혼이 가장 활발하게 작동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사랑하고 미워하고 때로 죽음 같은 희열과 눈동자에 유리조각이 가득 박힌 것 같은 고통당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밤새 붉은 피를 흘리며 폐허 같은 꿈속을 헤매기도 하지만 그 모든 감각의 반응을 경이로움으로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피투성의 존재를 알게 하는 시간이 새벽마다 나를 일으킨다. 눈을 뜨면 보이는 세상은 눈을 감고 보이는 세상과 다르다. 여권 사진 속 나에게도 인사를 하고 부드러운 표정의 셀카 사진 속 나에게도 인사를 한다. 몸과 영혼이 분리되지 않는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 둘을 힘껏 끌어안으며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내 존재의 중심에서 들려오는 의 속삭임을 들으면 나의 언어는 바이올린 G 현처럼 겸손해진다. 그렇게 나는 시가 된 나의 나, 음악이 된 나의 나, 그림이 된 나의 나를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그렇게 나는 나의 삶을 지휘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빛이여, 눈물이여, 나에게 오라. 나의 내가 오늘도 황홀한 나만의 콘서트를 열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