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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라 60

눈사람, 새끼 치다^^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7. 12. 22.

아들이 합치기로 했다.

아들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하여 당분간 직업이 없이 지낼 기간동안

그러니까 2020년 1월 멋지고 아름다운 아파트로 입주할 때까지

2년 동안 우리집 안방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아들이 5년간 살았던 아파트는 2월 26일까지 비워주어야 한다.

재개발을 위한 철거 때문이다.

우리 이쁜 하나는 우리집이 너무 좁아서(두 집이 살기에는 좁겠지)

그리고 혼자 잠들수 있는 방이 필요한, 예민한 성능(ㅋ)을 가진 탓에

근처 아버지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아들에게 전해들은 말이다)

 

어쨌든 5년이나 같이 살던 룸메이트와 당분간 헤어지게 되었으니

이를 어쩐담?

 

그래서인지 요즘은 날마다 저녁이면 우리집으로 아들과 이쁜 하나가 고스톱을 치러온다.

수요예배에 갔던 수요일 빼고 매일 출근한다.

 

어제는 일찍 오라고 해서 갈비살을 구워 이른 저녁을 같이 먹었다.

며칠 전에는 고스톱을 하다가 모두 배가 고파지는 바람에 즉석에서 만든 돼지고기 김치찌게 딱 하나만 올려놓고 밥을 먹기도 했다.

정말 가족같은 분위기다^^

우리 이쁜 하나는 내 딸 같다. 너무도 사랑스럽다.

그런데 아들이 우리집으로 오고 하나는 아버지 집으로 들어가게 되면

대체 고스톱은 치러 오게 되는 것일까?

 

아들이 지금 살고 있는 철거 예정 아파트는 이미 이사한 가구가 많아서 텅텅 비었다고 한다. 엊그제도 주인이 전화해서 빨리 방을 빼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고...

(세입자가 나가야 이주금을 받을 수 있는 모양이다)

나도 아들에게 올해 안에 우리집으로 들어와서 새해부터 열심히 공부하라고 했지만

하나와 (당분간이라도)헤어질 것이 너무 아쉬워서 아들은 아마도 그렇게 일찍

집으로 들어오지는 못할 것 같다.

 

요즘 하나는 코트 주머니에 핫초코 네 봉지를 넣어오곤 하는데

커피를 마신 후에 목이 갈갈해지면 모두 2차 티타임으로 핫초코를 먹게 된 것이다.

하나가 가져온 핫초코는 정말 맛있다.

언제나 내가 모두에게 핫초코를 만들어주었는데 어제는 광을 판 사람들이 순차적으로

자신의 핫초코를 만들어먹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큭큭.

내가 맨 나중에 광을 팔고 핫초코를 타려고 보니, 빈 핫초코 봉지가 세개 이쁘게 쌓아져 있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마음속에 행복이 치솟아 올랐다. 너무 좋은 시간이다!

 

이 녀석들은 그렇게도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꽤나 낭만적인 것이, 엊그제 폭설이 내린 밤, 자정에 차에 쌓인 눈을 치우다가 눈사람을 만들었다고 한다.

낡아서 곧 철거될 아파트에 저런 낭만이! 눈사람 바로 뒤가 우리 하나와 아들이 살고 있는 방이다.

어제밤 돌아가기 전에 아들은 나에게 오늘은 뭐하느냐고 물었다. 그 물음에는 내가 별 다른 약속이 없으면 또 놀러와서 고스톱을 치겠다는 말씀이시다.

나는 오늘 예총 송년회에 가서 뭐시기 국회의원 상을 받아야 한다고 했더니 그런 상은 대체 뭐하러 받느냐고.

내 생각에도, 무슨 상 쪼가리 하나 받는 것보다 우리 아들과 하나와 고스톱 치는 시간이 더 영양가 있는 것 같다...

 

 

저렇게나 표정이 살아있는 눈사람은 처음 보았다는 우리 올케의 평^^....

 

우리 아들과 우리 이쁜 하나, 그렇게 늘 낙천적으로 즐겁게 살기를!

 

추신.

그런데 어제밤 집으로 돌아간 아들이 카톡을 보내왔다. 이렇게.

 

그러니까....즐거움도 전염이 되는 것이다. 행복도 전염이 되는 것이다. 눈사람을 보고 다시 그 옆에 새끼 눈사람을 만들어 놓은 누군가는 만들면서, 잘 세워놓으면서 내내 마음이 참 즐거웠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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