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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똘레랑스

나의 모든 비리(非理)를 죽여버리고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2. 3. 2.

어제, 한 교인의 장례식이 있었다.

아름다운 목소리와 아름다운 얼굴과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신 분이었다.

수십 년 스쳐지나가면서 짧은 인사를 나누기는 했지만 사사로이 깊은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은 없었다.

교회가 크다보니 모든 사람과 성도의 교제를 나눌 수 없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한 번의 기회는 있었다.

10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발간하게 된 미담집을 집필하기 위하여 편집위원 몇 분과 함께 그분의 집을 방문하여 두어 시간에 걸쳐 교회에 얽힌 이야기를 인터뷰한 것이다.

교회가 오래 되었다는 것은 믿음의 선배를 그만큼 많이 가지고 있다는 뜻도 되고, 신앙의 멘토를 삼을 만한 분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도 될 것이다. 나는 새삼 우리 교회에 오래 동안 다니고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장례식에 함께 하면서, 키노르의 일원으로 가운을 입고 조가를 부르면서, 그리고 아름다운 모습이 여전한 영정사진을 보면서 잠시 그 분에 대한 생각을 했다. 믿음의 선배로서 존경받아 마땅한 분이었다.

 

병원에서의 천국환송예배 후 벽제에서 화장을 하고, 다시 양평의 납골당에 안치할 동안 동행하신 많은 분들을 뵐 수 있었다. 예배 시간이 달라 마주치지 못했던 분들, 그리고 스쳐지나가면서 아주  짧은 안부만 여쭙던 분들과 제법 긴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그곳에서 오래된 교인 몇 분을 만났다. 이제는 나도 제법 나이 든 축에 끼었는지 이제는 아는 분들의 자녀도 나이가 들어가고 있었다. 노숙해 보이는 사십대 중반의 자녀와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서로 이름만 들어 알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그녀가 너댓살 때 보고는 처음이었다. 아니, 걔가 바로 너란 말이냐...나의 비명섞인 감탄.

우리 교회에서 자랐지만 결혼 후 멀리 이사가고 어쩌구 해서 우리 교회에는 출석하지 않았다.

알고 보니 개종을 했다고 한다. 시댁과 남편의 종교로 말이다. 가톨릭교도가 된 그녀가 궁금했다. 우리 교회도 오래동안 다녔고 했으니 그녀가 느끼는 개신교와 카톨릭의 차이점이 궁금했던 것이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교회와 성당과 제일 다른 점이 무엇인가 하고.

단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가 말했다. 그녀 역시 간결하고도 명쾌한 대답이었다. 단 하나의 단어!

"비리."

옆에 같이 앉아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체 무슨 말이지?

"비리가 없어요."

그녀가 다시 말하자 나를 위시해서 같이 모여있는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非理...

"신부들은 사심이 없고 비리가 없어요. 세습, 그런 것도 없고."

"결혼을 하지 않고 재산도 가질 수 없으니까 비리를 저지를 이유가 없기도 하겠지요."

"그러니까 신뢰가 가요. 믿을 수 있는 거지요. 사심이 없다는 것을 믿으니까."

"깨끗해요."

"교회 건축이나 부흥, 교인 확장에 목매지 않아요. 개인적인, 사사로운 야욕이 없어요."

그녀가 좀 시니컬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개종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똑같은 하나님을 믿는데요, 뭐."

.........

아직도, 여태까지도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장로님의 딸이기도 하고 배울만큼 배웠고 지혜로워보이는 그녀가 내뱉은 첫마디가 마음에 걸렸다.

비리...

교회에 얼마나 비리가 많으면, 교회가 얼마나 비리에 물들어 있으면, 교회가 얼마나 비리 논란에 휩싸여 있으면 그 말이 첫번째로 튀어나왔을까.

목회자들이 얼마나 사심이 많게 느꼈으면 신부와의 변별성을 예식이나 교리나 신앙고백이나 삶이 아니라, 아주 저차원적인 '비리', 그것에 두고 있는 것일까.

그녀가 느끼는 차이점이 예배의 형식이나 교인들의 삶이 아니라 신부나 목사 같은 성직자의 삶에 두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만큼 개신교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다.

 

개신교와 가톨릭의 종교적, 신학적 차이를 나는 잘 모른다. 사람들도 그런 것에는 별 관심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신학자들이 논할 일이다. 우리는 신학자가 아니라 신앙인이다. 그리고 세상사람들은 더욱 그러하다.

그들은 개신교와 가톨릭의 신학적 차이를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냥 눈에 보이는대로, 옆에서 지켜보는대로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개신교도와 가톨릭교도의 삶을 보고도 느끼겠지.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판단할 것이다.

저런 신앙생활을 나도 하고 싶다고.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고.

아직 교회나 성당에 다니지 않는 비기독교신자들은, 그러므로 앞으로 우리가 피터지게 외치면서 전도해야 할 그 대상들은

그냥..보이는 교회와 보이는 성당에 대하여 알 뿐이고 느낄 뿐이다. 아무리 목청껏 외쳐봤자 그들의 눈에 비춰지는 우리의 삶이나 교회, 성당의 모습이 아름다워보이지 않으면, 호감을 가질 수 없으면 어떻게 교회나 성당에 가겠는가 말이다....

우리는 더 이상 말로 전도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말만 해서는 절대 넘어가지 않는다.

그러면 대체 우리는 무엇으로 보여주어야 하나, 예수님의 사랑을,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자들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나는 매주 토요일마다 성경공부를 다니고 있다. 대여섯명의 소수인원이 감리교목사님 부부를 초청하여 짧게는 세 시간, 길게는 너댓 시간 신앙과 삶을 나누는 은혜로운 시간이다. 십 몇 년째 계속되고 있다는 그 모임은 작년 7월부터 다니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얼마 전 그 바이블 스터디에서 나누었던 말씀이 새삼 다시 떠올랐다. 잠시 조금만 인용한다면...

 

<자 그러면 오늘 나의 사는 모습을 저 밖에 있는 불신자들은 무어라 할 것인지 생각해 봅니다. 좀 전에 보았던 사도행전의 이방인들처럼 우리를 바라보면서 좀 바보 같기는 하지만 저 사람들은 무언가 달라. 사는데 힘이 있고, 자기보다 남을 배려할 줄 알고 나눌 줄 알고, 하여간 저들과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고 생각런지?

아니면 저 예수쟁이들 하여간 시끄러워, 만나면 저들끼리 헐뜯고 치고 박고, 지들만 잘살고, 헐벗은 이웃은 나 몰라라 하고, 예배당만 크게 지을 생각만 하고, 혹시 이런 소리만 듣는 것은 아닌지?

 

오늘 우리들도 교회 밖에 있는 저 불신자들에게 특별한 공감을 주지 못하면 핍박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소외되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깨끗하다고 주장해도, 아무리 우리 교회는 깨끗하다고 주장해도, 아무리 우리 목회자는 깨끗하다고 주장해도 우리는 교회다는 사람들에 속해 있고, 우리 교회는 한국 교회에 속해 있으며 우리 목회자 역시 한국의 목회자에 속해 있다.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어버린 개독교인의 슬픔이 여기에 있다....

이미 세상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고 있는 그 눈총에서 벗어나기는 힘들 것 같다.

그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기도 하고, 어쩔 수 없는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6,70년대의 교회 부흥의 유종의 미가 2012년에 이르러서는 '비리'라는 가슴 아픈 단어로 종식되어야 하나, 하는 안타까움이 나를 슬프게 한다. 하지만.

 

하지만!

늘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비리>라는 슬픈 단어에 녹아있는 한국 개신교의 현실을 바꾸어 주실 것을 믿는다.

신부에게 향하는 <신뢰>가 한국 개신교 목회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날이 반드시 오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러기 위하여 나 자신부터 비리 없이,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서부터 신뢰받기 위하여

변하고 깨지고 부서지고 완전히 죽어서 새롭게 태어나기를 바란다....

타인을 향한 손가락이 내 자신을 향하여 방향을 바꾸고, 우리 교회를 위하여 방향을 바꾸고 그리하여

모든 것이 내 탓이라는 곳에서부터 새로운 자각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2012년 사순절 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하여 나를 분명히 변화시켜주실 하나님의 역사를 믿는다.

 

하나님, 사순절을 통하여 나를 십자가에 못박고

나의 모든 非理를 죽여버리고

2012년 부활절, 예수님과 함께 새롭게 부활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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