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요 어제 담배가 떨어져서 편의점에 갔거든요. 그런데 5000원이 남아서, 국익에 보탬이 되고자 로또를 샀지요. 미사 전에는 절대 확인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도 너무 궁금해서 좀 전에 번호를 확인하고 말았지 뭡니까...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다 떨어졌더라구요..."
그제 주일 아침, 동네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리는데 5분도 채 안되는 강론의 서두를 신부님은 그렇게 시작했다.
나로서는 매우 흥미있고 재미있었고, 경건하게 미사포를 쓴 신도들도 웃음을 터뜨렸다.
예배의 형식은 매우 경건하되, 신부들의 강론은(요즘 세 번 참석한 바에 의하면) 그다지 엄숙하지 않았고, 오히려 실생활적인 면이 부각되는 느낌이었다.
하긴 엊그제 월드컵이 한창일때 성당에 갔더니만 강대상 앞에 선 신부님 왈, 어제 밤 늦게 청년들과 호프집에 모여서 밤새도록 축구 보고 노는데 아, 글쎄 어느새 날이 밝더라고요... 시간이 그렇게 갔는지 모를 정도로 유쾌한 시간이었습니다. 지금 정신이 그다지 맑지 않아서 고민임다~~ 오늘 미사를 어떻게 다 집전할까 그것이 매우 걱정입니다...,
그러니까 경건한 주일 직전을 신부님께서는 젊은이들과 호프집에서 음주가무를 즐기시면서 날밤이 새도록 놀아제꼈다는 말씀...
죄 많이 지은 여러분은 앞으로 이렇게 사시오, 하는 명령이 아니라, 우리 한 번 생각해 봅시다 하는 투의 화두를 한, 두 개 슬쩍(알게 모르게) 던져놓고, 길게는 십분, 짧게는 5분 이내에 강론을 끝내는 신부님이 그렇게 멋져 보일수가!
지난 주일. 오전 9시에는 내가 좋아하는 목사님의 예배 실황 중계를 인터넷으로 보시고, 은혜받으시고, 어쩐지 몸이 근질거려, 몸뚱이는 근처 성당으로 가서 11시 미사를 드렸다. 결론, 매우 좋았다!
얼마 전에는 일주일 동안, 성당, 절, 교회를 모두 들락거린 적이 있었다. 나름 흥미있는 경험이었다.
초하루기도회를 간다는 불심깊은 친구를 따라 봉선사를 갔는데, 친구가 법당에서 예불을 드리는 동안, 칸나는 미얀마로 성지 순례를 가는 신도 무리들 곁을 서성거리면서 그들의 여행 일정을 곁눈질하면서 같이 소화해 내었다.
사실, 8월 초에 미얀마로 선교여행을 떠나는 우리 교회 선교팀과 함께 취재팀으로 합류할 생각이었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갈까 말까 망설이던 차였던 터라, 두 종교의 각기 다른 방향의 여행에 대해 쫌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내 생각으로는 마음 편하게 잘 사는 곳에는 굳이 전도를 할 필요가 있는가, 이다.
언제인가 강화도 보문사에 들렀을 때, 장내 방송으로 읊어주는 독경 소리가 하도 좋아서 일행을 놓친 적도 있다. 보문사 아래 주막에 모여 막걸리와 밴댕이회로 낮술을 거나하게 걸치는 바람에 이후의 스케줄이 엉망이 되어버렸지만^^;;
어쨌든 봉선사에서 템플스테이를 안내하는 팜플릿을 하나 집어와서 고이 모셔두었다. 칸나, 언젠가는 꼭 템플 스테이를 갈 것이다.
하긴, 올 7월 들어 두 번이나 중세의 수도원을 업그레이드 시킨 침묵의 집에 가서 일박이일 동안 내면의 소리, 그리고 저 위에서 들리는 소리(^^), 등등을 청취하면서, 갈래갈래 흩어진 마음을 줍느라 나름대로 용맹정진하기도 했다.
나로서는 개신교의 기도원보다는 카톨릭의 피정의 집이나, 절간의 템플 스테이가 훨 마음에 와 닿는다. 개신교에서 젤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바로 그 번잡함, 시끄러움, 너무 많은 프로그램, 목청 큰 목사...(쓰려고 보니 너무 많아 이만 생략해야것넹) 요즘 들어 정신차린 개신교에서 관상기도와 침묵을 할 수 있는 조용~한 수도원을 짓는 쪽으로 방향이 전환된 것 같아 내심 좋아하고 있다.
엊그제 미사를 드리면서 좋았던 것 중의 하나는(너무 좋은 점이 많아서 샘이 날 정도였다), 큰 기도였다.
다문화가정을 위한 기도, 나라를 위한 기도, 세계의 평화를 위한 기도, 젊은이들을 위한 기도, 독거노인을 위한 기도... 적어도 형식에서는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기복신앙은 볼 수 없었다. 신부의 주관이 섞이지 않은 강론은, 최고였다. 그냥 말씀만 전할 뿐이었다. 강론 속에 그 잘난 자신의 학식이나 지성, 가르치려는 영성, 위에서 아래로 내리까는 듯한 엄포 등은 없었다...
(약간 염려되는 부분: 어느 종교이든 겉에서 대강 보면 그럴 듯 한데, 문제는 깊게 알수록 정나미가 떨어지는 일이 수두룩하다는 점. 종교 자체는 흠이 없지만, 종교를 믿는 인간들의 흠 때문에 얼룩이 심하게 생긴다는 점. 어디서나 인간들이 물을 흐려 놓는 거니까. 신부도 인간, 신도도 인간 하하)
하여튼, 나, 변심했다.
지금 생각으로는 한 달에 두 번은 교회가고, 나머지는 성당에 가서 미사 드리고 싶은데, 그건 안될까...?
저녁 산책으로는 봉선사나 보광사 법당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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