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사순절 제 사주일이다. 가톨릭에서는 장미주일이라고 한다. 일명 기뻐하라 주일이라고도.
정말 재미있는 명명이다...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하면 오늘은 동네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기 때문^^
이박삼일 여행중인 아들 때문이기도 했고, 아들이 없으면 교회에 가지 못하는 남편 때문이기도 했고, 홀로 남편을 냅두고 교회에 가기가 좀 미안스러워서였기도 했고, 맨날 새벽 강행군이라 오늘은 좀 느긋하게 주일을 보내고 싶었기때문이기도 했는데...
습관은 무서운 것이어서 새벽 5시 좀 넘자 눈이 저절로 떠졌다. 나의 내면 어딘가에서 너, 오늘 왜 안일어나니, 하면서 내 눈을 번쩍 뜨게 만든 것이었다.... 하긴 새벽 4시 몇 분인가는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 눈을 뜨고는 아참...오늘은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지, 하면서 기분이 좋아 다시 눈을 꾸욱 감았다...
그런 것은 아마 거룩한 습관이리라...
사순절이 끝나 부활하고 난 뒤에서 당분간은 4시면 눈을 번쩍 뜨고 두리번거릴 것 같다. 음....그렇다면 이 거룩한 습관을 그냥 허무하게 없애버릴 것이 아니라 아예 매일 새벽 4시에 기상해서 무엇인가 바람직한 것을 하면 어떨까, 하는 아주 좋은 생각이...^^
원래 새벽 시간은 의식이 가장 활발하게 작동하는 시간이 아니런가. 새벽 4시에 일어나 보람있는 작업을 하면 아침 8시까지 줄잡아 네 시간은 완전 집중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말이다!!
하루를 아주 열심히 살 수 있는 비결은 새벽의 시간을 잘 활용하는 것.
백수니까 오후에 살짝 낮잠을 자도 아무 지장이 없으니까 얼마나 좋아!! 신중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사찰에서는 새벽 3시 반이 기상시간이라는 말이 있던데(종교인은 대체로 참 부지런하기도 하지...)....
말이 이상하게 흘렀네?
푹 자고 싶은데 자꾸 눈이 떠지는 바람에 실컷 잠자지도 못하고 결국 7시 좀 넘어 아예 일어나버렸다. 어제와 그제 풀로 뛰어 피곤했던 몸이 조금은 회복이 되는 느낌?
1월 1일 신년 미사를 드린 후, 간만에 성당에도 가고 싶었다.
나 없는 사이에 일어나면 드시라고 얼큰 콩나물국도 끓여놓고 10분 거리의 성당을 향해 출발했다.
교회나 성당이나 하여튼 집 가까이에 있으면 참 좋기는 하겠다. 생각이 날 때마다 뛰어가서 기도 할 수도 있고, 남의 집 들어가는 것처럼 쭈볏거리지 않아도 되고 (하긴 나는 개신교도인 주제에 성당 드나들면서도 마치 내집처럼 편안하게 들락거리기는 한다....^^;;), 기분나면 혼자 몇 시간씩 훌쩍거리면서 하나님께 애걸복걸할 수도 있고...
이십분이나 일찍 도착해서 가만히 십자가를 바라보았다. 개신교의 십자가와는 달리 벌거벗은 예수님이 축 늘어져서 십자가에 달려있는 모습이...너무 민망했다... 고개를 떨군 모습, 앙상한 팔 다리... 에구 예수님 죄송해요. 저의 죄 때문에 저토록 치욕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고 결국 죽기까지 하셨으니..이를 어쩐대요.... 당신의 목숨과 맞바꾼 저는 이렇게 아직도 못나게 살고 있고만요.... 십자가를 바로보면서 가슴이 먹먹~ 해졌다.
가톨릭 미사는 예전이 아주 복잡하다. 일어서서 낭독하고 따라하고 앉았다가 다시 일어서고 헌금 봉헌도 한 사람씩 앞으로 나가서 크다만 바구니에 넣고, 영성체도 모두 한 사람씩 앞으로 나가서 한다... 성가도 한 열 곡은 더 부르는 것 같다.... 하지만 교우들이 함께 참여하는 예배로서는 더 할 나위가 없었다. 신부의 비중은 아주 미약해 보였다. 나는 그것이 좋다. 함께 드리는 예배의 모습. 목사의 설교가 주종을 이루는 개신교 예배는 좀 변화되어야 할 것 같다. 구경만 하는 듯한 에배 절차도 고쳐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신부님은 오늘은 기가막히게 아름다운 핑크빛 가운을 입고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오늘은 장미주일입니다... 기뻐하라 주일이지요. 그래서 이렇게 너무 이쁜 옷을 입었더니 꽃돼지 같은...."
아닌게 아니라 통통하신 신부님은 꽃돼지 같아 보이기는 했다. 모두들 웃음이 터졌다... 매번 미사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밖에서 바라보는 신부의 느낌과 성당의 미사 시간에 마주치는 신부는 아주 딴판이다. 매우 유머러스하고 교인들과 같은 눈높이에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설교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설교'라는 하는 의미는 별로 좋지 않은 의미다. 일테면 사람들이 뭔가 길게 잔소리 늘어놓으면 하는 말 있지 않은가. 설교하고 있네, 하는 말 말이다. 신부와 교인들의 위치는 동등해 보였다. 모두 같이 생각해 봅시다, 그런 위치? 평등.
미사의 좋은 점은 성가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뒷편에서(이층에 있는 것 같았다) 목소리만 들리니까 쓸데없이 성가대원 구경 할 일도 없고, 그러니까 오로지 미사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
미사시간은 참 경건하다. 게다가 성가 부르랴, 고백하랴, 수없이 많이 하니까 그야말로 졸 사이가 없다. 지루할 사이가 없다는 말이다. 너무 예식이 많아 처음 성당에 온 사람이 적응하려면 몇 달은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종교를 정하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계다가 교리 공부를 철저히 시키니까 잘 적응하는 것 같았다.
나는... 가톨릭교리서와 성가 합본된 책을 사서 열심히 뒤지면서 따라했다. 따라 낭독하는 문장들은 정말 좋았다.
교리 부분을 철저하게 파고 들지 않는다면, 겉으로 보기에는 참 편안한 종교이기도 한 것 같다.
술 담배, 그리고 제사를 허용하므로 부담이 적기도 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데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예수님의 삶을 어떻게 따라가느냐가 아닌가 말이다.
용서와 사랑. 결국 기독교의 본질은 그것이다. 곁에 있는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기. 용서하기 힘든 사람을 용서하고 미워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지만 사랑하는 것... 사랑해야 하는 것, 사랑하고야 마는 것, 기어이 사랑으로 끌고 가는 것...
장미주일... 화사한 핑크 가운을 입은 신부님을 보면서 생각했다.
마음이 좀 더 너그러워졌고, 그리고 교회에 종일 붙들어 매놓지 않는 모습에 나는 감동받는다. 주일을 주일답게 쉴만한 물가에서 편하게 쉬면서 즐기는, 즐거워하는 주일로 만들어 주는 교회가 그립다...
기뻐하라 주일을 그 명명에 걸맞게 기뻐할 수 있는 주일로 만들려면 정말 몸도 영혼도 편히 쉬게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오후에 설교를 들으면서 산책을 하는데 전도사님께 전화가 왔다.
"오늘 안보이시던데 무슨 일이 있나요?"
"아. 네.... 아들이 양평에 가서...남편 혼자 놔두고 교회가기 좀 그래서...못 갔어요..."
"아, 그렇죠. 혼자 계시게 하면 안되지요...내일 새벽에 나오시죠?"
"그럼요, 내일 뵙겠습니다..."
통화를 끝내고 생각했다.
자기 구역의 교인이 교회에서 보이지 않으면, 그 명단을 보고 일일이 전화해서 심방하는 전도사님의 노고.
물론 직업이기는 하지만, 참으로 힘든 직업이다. 사명감 없이는 하기 힘들겠다는 생각.
문득 전도사님이 안쓰러워졌다. 전도사님도 하나님의 자녀인데 주일에 편안하게 푸욱~ 쉬면서 하나님이 주신 안식을 누려야 하는 건데....
얼마 전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세상에나...
온종일 식사할 시간조차 없어서 밤 늦게 겨우 밥 한 술 먹었다고 했다. 에그머니나!!
하나님이 그런 순교자적인 전도사님의 삶을 원하실까 모르겠다. 나는 회의한다. 전도사님, 내일 푸욱 쉬셔야 하는데 내일도 역시 새벽에 나와 맡은 구역의 교인들이 얼마나 특새에 나오는가 체크하려면 또 너무 힘드시겠네요...
이제부터 전도사님을 위해서도 가끔씩은 기도할께요...
뺑뺑이 돌리는 교회에 대하여 생각한다. 진이 빠지게 하고, 지쳐서 쓰러지게 하고, 아니, 또 교회에 나오라고? 하면서 휴대폰 문자를 보면서 한숨 쉬게 만드는 교회 말이다...
어제도 구역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수요예배에 특송을 하는데 꼭 나오라는 것이다. 직장에 나가는 사람이 많아 특송할 사람이 없으니 부탁한다는 애원조의 목소리... 이를 워쩐다냐, 북한도 아닌데 늘 동원체제로 돌아가는 빡센 교회의 일들을!!
교회에서 <기뻐하라 주일>을 맛볼 수는 없는 것일까?
교회에 갔는데 너무 기뻐서, 날마다 오늘은 기뻐하라 주일이야, 하면서 환호성을 지를?
구역장님, 너무 걱정마세오. 힘들어도 수요 예배에 꽃단장하고 가서, 특송 잘 부를께요. 나의 자리는 채울께요.
그런데, 하나님. 하나님도 제가 수요예배에 교회에 가서 특송 부르는 것을 그토록 원하고 계시는 것 맞나요...?
'유다의 똘레랑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모든 비리(非理)를 죽여버리고 (0) | 2012.03.02 |
---|---|
새벽 미사 (0) | 2011.06.25 |
변심 (0) | 2011.06.25 |
성당, 절, 그리고 교회 (0) | 2011.06.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