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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 가로되

내 감히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4. 12. 5.

하나님은 참으로 놀라우신 분, 그야말로 나를 깜놀하게 만드시는 분^^

매일 맘속으로만 하나님께 편지 쓰다가 오늘은 맘잡고 한 글 올려드리나이다.

지금 울 서방님 아침 식사 중이셔요.

새벽에 일어나 얼룩이 몇 개 생긴 가스렌지를 즐거운 마음으로 빡빡 닦고 내친 김에 소고기 조금 넣고 무국을 끓였는데 시원하시다네요. 역시 시원한 서울 김치와 김, 아들 생일 선물로 만들어준 장조림을 (다 줄 리가 있나요 우리것도 조금은 챙겼죠) 렌지에 살짝 뎁히고, 내장 뺀 멸치와 함께 상에 올렸는데 울 서방님 아주 맛나게 잡숫고 계심다.

감사해요 하나님이여.

이렇게 추운 겨울, 따스한 집에 앉아서 난 1 FM에서 모처럼 들려오는  '사랑의 기쁨'에 빠져들면서 얼굴에 뭐시기 뭐시기 찍어바르고요(화장품 앞에서 또 다시 감사 인사 드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엊그제 아이크림 그런 거 나도 바르고 싶다고 일초 쯤 생각했는데 그날 오후 내가 케어하는 어르신 집의 따님이 홈쇼핑에서 샀다고 진냥 좋은 아이크림 맞춤으로 주신 거 바를 때마다 하나님과 그 따님께 감사드린답니당. 세심하기도 하셔라, 나의 하나님은) 커피는 벌써 두 잔째 리필해서 마시는 중인데요, 나, 이렇게 평안해도 되는 건지, 그냥 마구 누려도 되는 것인지 잘 모르지만 하나님의 선물이 대단하시다 생각하고 그냥 마구 감사 인사만 올려드리나이다.

 

게다가 놀라운 것은, 엊그제는 몇 년만에 갈치까지 구워 먹었어요, 하나님.

아, 물론 저는 안 먹었고 울 남편만 고스란히 구워 주었지만 마치 내가 먹은 것처럼 뿌듯~ 했답니다요. 그 며칠 전 울 서방님의 애청하는 6시 내 고향에서 제주 갈치를 보여주는데 늘 그러하듯 방송에서 아주 먹음직하게 구워도 먹고 무 넣고 조려도 먹는 모습에 입을 헤 벌리고 구경만 하는 남편이 넘 안쓰러워 세상에 한 마리에 만원이나 주고 제주산(이라고 주장하는) 갈치를 고민고민하다가 사지 않았겠습니까. 단 네 토막 나오는 갈치(비닐 봉지에 담으니 너무 작았어염)를 보면서 어휴, 이거 한 토막이 울 서방님 이틀 피울 수 있는 럭키 스트라이크 한 갑이로구나 생각하니 후회가 막급이었더랬슴다. 하지만 이미 토막난 갈치를 어쩌겠어요. 한 끼에 두 토막씩 인심 쓰고 두 끼에 나누어 구워주었더니 울 서방님 꿀 보다 더 달게 잡수었다능...^^

그 아까운 갈치 혹시 잘못 될까봐 가스렌지 앞에 지키고 서서 은빛 갈치가 노릇노릇하게 구워져가는 실황을 눈 똥그랗게 뜨고 감시하지 않았겠슴까!

그러면서도 약간 가슴 아픈 것은 울 아들에게도 몇 토막 구워주었으면 참 좋겠지만 올해 내 가계부에 더 이상 갈치 명목의 지출은 허하지 않기로 굳게 결심하였는 바, 아들은 구정 즈음에 만원에 두어 마리 하는 가늘고 길기만 한 냉동 갈치를 바싹하게 튀겨줄 요량을 하고 있어요.

 

하여튼, 요즘 생활비에 이전보다 투자를 좀 하는 편이어서 식탁이 그럴 듯 하네요.

냉장칸에는 김치와 장조림 딱 두 개밖에 존재하지는 않는 텅 빈 공간이긴 하지만 제 지갑에 있는 약간의 현금이 오늘 점심  때라도 수퍼에 가서 몇 가지 먹거리를 갈등때리지 않고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에 감격하고 있어요.

그것 역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쓰다보니 약간 면구스럽기는 하네요. 하지만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감사거리가 설마 누군가 아이크림 주었다고, 갈치 구워먹었다는 일차원적인 감사가 아니라는 것은 하나님도 이미 알고 계시겠죠. 모르신다면 하나님이 아니쥐이~~^^

열라 쓰다보니 아차, 커피가 식어가고 있네요. 시계를 보니 옷을 단단히 입고 일하러 갈 시간도 가까워 오궁....

 

하나님, 어찌 되었든, 뭐라 뭐라 이곳에 유치찬란하게 반찬 이야기를 올렸든 간에

내, 감히 하나님께 참 많이 사랑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새삼 감사인사 드리려고 이 바쁜 아침 시간 잠시 들렀나이다.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시는 나의 하나님, 후딱 준비하고 엊그제 올라온, 박영선 목사님의 쌈빡하고도 명쾌한 강의 '한국 교회 설교자의 길'을 마저 듣고 아멘 열 번쯤 더 하고 찬 바람을 가르며 열라 일하러 갈 생각이옵나이다.

오늘도 잠들 때까지, 비록 내 어리석음과 못남과 여전히 악함으로 별 볼일 없는 하루를 살더라도 하나님의 눈길을 나에게 고정시키시고 사랑으로 보살펴주시기를 감히 간구드리나이다.

하나님, 오늘은 하나님 볼딱지에 살짝 뽀뽀해드림다,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