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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 가로되

하나님의 답신을 기다리면서^^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4. 11. 28.

오늘도 나의 찬양과 감사의 기도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나의 하나님, 아침 문안인사 드려요^^

비 올 확률 80%라고는 하나 아직 비는 내리지 않고, 그러므로 가만히 앉아 비를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 파바로티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행복하겠지만 또한 그의 노래와 함께하니 더욱 충만하나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이 아침 천지 사방 도처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사랑을, 마음을, 기쁨을 느끼고 듣고 봅니다.

세상은 아름답지만 지독히 불평등하고 불평등하면서도 어느면에서는 모두 똑같은, 또한 아름다움의 언저리에 냄새나고 추하고 참혹한 그림자가 덮여있다는 것을 알겠나이다. 그것을 느낀다는 것은 슬프고 아득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주신 감정과 감성과 얄팍한 이성으로 '알 수' 있게 하심을 감사드리나이다. 그 부조화스러우면서도 조화스러운 세상에서 악한자와 선한자를 구별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따사로운 눈길과 손길을 감히 느끼겠나이다.

일단 한없는 감사의 기도와 아부로 시작하는 것은... 삶의 애매함, 혹은 흐리멍텅함 때문이옵니다. 무나 두부 자르듯 모든 이치가 명확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아침에 맞다고 옳다고 주장하던 논리나 상황이 저녁이 되면 (마음이 바뀌어)아닌갑다.....하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드는 숱한 사연들이 왜 이리도 많은 것이옵니까?

이렇게 모든 것이 불명확해서야 원 어디 웬만큼이라도 단단하게 세상을 살아나기나 하겠나이까?

오늘 제가 물고 늘어지는 것은 성도의 교제와 친교의 티미하고도 희미한 경계 때문이 아니겠습니까요!

믿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가족 흉보고 합심하여 수능 합격 기도를 하는 것이 성도의 교제인지, 월례회에 손주들 사진 교환하면서 천재적인 짓꺼리를 하는 손주들을 자랑하느라 정신머리 없어지는 상황을 성도의 교제라고 하는 것인지, 보수 꼴통 수준의 정치색을 아무 거리낌없이 기도 시간 후에 '종북'과 '빨갱이' 분자들을 걸러내느라 입을 모으고 단합하여 '친미'를 견고히 하는 것도 성도의 교제인지, 자식들과 배우자의 험담 속에 섞인 자랑질을 지치지도 않고 쏟아내는 교회 식당에서의 대화도 성도의 교제인지... 그것이 알고 싶지만 이미 알고 싶지 않게 되어버린 그 분별력을요, 하나님 저더러 어떻게 생각하라는 것인지요.

모두다 사랑으로 대할지니라, 하는 원칙적인 말은 빼놓고 돌직구 좀 던져주세요, 하나님.

 

예수님의 복음이 없는 사랑의 나눔이나 후원이나 자비로운  선한 행동들은, 이제와 생각하니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이라고 저는 생각하는데 그것도 아니더이까? 예전의 저는 없는 자에게는 일단 무조건 도와주어야 하고, 보살펴야 하고 사랑의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더랬습니다. 선후 관계에서 말이지요. 수십년 동안 굳게 생각하던 그 우선순위를 지금은 정정하려고 합니다. 현실적인 도움은 일시적이고 그것은 불교에서도 다른 종교단체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 그것이 인생을 통괄하는 구원의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는 것...

남을 돕기 위하여 솔선수범으로 날다마 이곳저곳으로 뛰어다는 분들을 충분히 존경하지만, 아무리 그 봉사자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품고 선행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대상자에게 믿음으로 전달되지 않으면 그저 '고마운'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이지요. 토정비결에 흔히 등장하는 섣달에는 남쪽에서 귀인이 와서 도우리라, 와 똑같은 것 아닌가요?

우리가 전해야 하는 것은 예수여야 한다는 것, 그것이 최 우선이고 제일 나중이 되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저의 생각이 되었나이다.

왜, 이런 생각을 했느냐고요?

 

오래 전 교회에서 알게 된 친구 때문입니다.

오래 동안 교회를 떠나있다가 수십 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된 친구인데요, 거의 십 년 넘게 아무리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도하려고 해도 그 년(욕이 절로 나오네^^;;)의 생각은 - 나도 하나님을 믿는다, 너희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교회에 다니는 것과 다니지 않는 것이 뭐가 다르냐, 교인들은 삶에서 본이 되어야 하는데 니들이 어디 그렇게 사냐, 쳇! 나는 내 역량껏 열심히 나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게 살지 못하니까 양심 찔리는 일이 많아 기도 안한다, 니들은 염치도 좋다 그 꼴로 살면서 열심히 기도나 하면 장땡이냐...등등- 그런 자기 신념으로 꽉 차있는 것이옵니다.

전도사님이나 장로님이 여러 번 찾아가서 사랑을 나누고 예배하고 기도했지만 년은 끄떡도 하지 않고 험한 인생을 자기 힘으로 헤쳐나가느라 개고생을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감사하면 좋겠는데 날마다 년을 생각하면 속이 상해 견딜 수 없을 정도까지 가게 되었나이다..

년에게 필요한 것은 임시변통할 돈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것을 알겠는데 그것을 전해 줄 도리가 없나이다.

오늘, 만날 터인데 어찌하리잇까. 이전처럼 년의 하소연과 말을 잘 들어주고 마음속으로 기도나 빡세게 하고 입밖으로는 암말도 하지 말고 걍 돌아와도 괜찮을까요?

오늘, 년과 만날 때 친교가 아니라, 성도의 교제로 만나려면 대체 내가 어떻게 하여야 하겠나이까?

비를 기다리듯 하나님의 명철하신 답을 기다리는 아침입니다요!

저는 일단 이렇게 쓰고 도망을 가지만 오전 중에 저의 마음속으로 침입해들어오셔서 한 말씀만 하고 가시기를 부탁드리나이다,

오늘도 감사로 시작했으니 비도 좀 뿌려주시옵고 년과 만날때 행복감, 충만함, 기쁨 그런거로 꽉 채워주시옵소서.

열라 몇 자 쓰다보니, 하소연이 격해져서 쫌 길어졌음을 양해바라나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아, 오늘 늦었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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