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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하루

내 뜻을 버렸습니다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3. 3. 15.

(2013년 1월 4일 유다의 일기)

 

청년 시절, 교회에서 성탄극을 하는데 마리아 역할을 한 적이 있었다. 이른바 주연이었다. 모두 청년부원들로 구성된 순수 아마추어 연극이었지만 그 열의와 성의는 대단했다. 당시 교회에 다니던 유명 연극배우(이름을 거론하자면...박정자 씨다^^)가 기꺼이 연출을 맡아 주는 바람에 우리는 거의 전문배우와 다름없이 혹독한 연습의 시간을 거쳐야했다. 발음과 동선과 시선, 동작 하나하나까지 예리하게 체크하시는 열정적인 지도로 우리는 땀을 흘리면서도 나날이 실력이 나아졌고, 당일에는 제법 그럴 듯한 무대를 보여줄 수 있었다.

마리아.

그 후, 연극을 본 몇 몇 사람은 농담조로 마리아라고 나를 불러세우곤 했다.

성경에는 여러 명의 마리아가 있다. 성모 마리아. 예수의 발을 씻겨준 여인도 마리아라고 하는 설이 있고, 그 마리아가 간통으로 끌려온 여인이라는 설도 있고, 죽었다가 살아난 나사로의 여동생 마리아도 있다. 언니 마르다가 부엌에서 예수님 일행 접대에 정신없이 바빠 죽을 지경인데도 손끝 하나 까딱이지 않고 예수의 발밑에 앉아 턱을 쳐들고 말씀에 빠져들었던 마리아 말이다.

 

오늘, 새벽 말씀에 그 마리아가 다시 등장했다. 주님 발 앞에 앉은 삶이 되라는 말씀. 아멘.

교회의 여인들은(어쩌면 남자들도 일반이지 않을까 싶은데) 두 가지 부류가 있는 것 같다. 마르다처럼 발벗고 교회일에 뛰어들어 거의 목숨 바쳐 봉사하는 여인네들. 그네들의 헌신이 없으면 우리가 어떻게 교회에서 점심밥을 편하게 먹을 수 있을 것이며, 그네들의 헌신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수많은 행사를 진행할 것이며 그네들의 헌신이 없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 많은 사회 구제와 봉사를 할 수 있을 것인가.

또한 마리아 부류도 있다. 기도회나 예배나 성경공부나 제자훈련에 집중하는 여인네들. 그네들은 성경과 성경을 보완해주는 각종 서적과 기도서와 인터넷 설교자들의 명단을 꿰고 있다.

나는, 마리아 부류이다. 매일 예배의 앞자리에 앉아 눈도 깜빡이지 않고, 언제나 준비하는 노트를 뒤적이고, 형광펜 자국이 무지개처럼 현란한 성경책을 뒤적이면서 몰두한다. 그러면서도 한편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지금 주방에서 파 썰고, 부침개 부치고 생강차 끓이는 많은 마르다 여인들의 손길을 생각하면 참으로 미안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도저히 말씀의 자리를 떠나기 싫은, 나만 아는 이기심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언제인가 여선교회 회장이 되어 신년 성회를 하는 동안 주방에서 생강차를 끓이느라 산더미같은 생강을 까는데 너무 말씀이 듣고 싶어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 그 때의 결심. 내, 다시는, 이런 임원은 하지 않으리! 정말 자기 희생이 없이는 할 수 없는 봉사가 교회에는 너무 많다.

 

아무리 마르다 여인들에게 죄송하고 미안해도 나는 나의, 마리아 스타일을 도저히 버릴 수 없다. 그것은 성격과 취향의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마르다 여인들이 혹,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실제 그렇게 말하는 소리를 직접 듣기도 여러번이었다.)

-누군 편안히 예배당에 앉아 말씀 듣고 싶지 않은 줄 알아? 나 아니면 할 사람이 없으니 하는 수 없이 주방 구석에서 김치 썰고, 설거지 하는 거 아니냐고!

맞는 말씀이긴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선택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우리의 '삶' 자체를 예수의 발 앞에 두라는 것이다. 마리아는 말씀을 들으면서 몸과 영혼이 예수님 앞으로 바싹 다가서 있었고, 그럼으로 삶까지 온전히 주님 앞에 내려놓을 수 있는 결단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의지를 포함한 모든 것을 다 주님의 발 앞에 내려놓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었다. 아멘, 다시 아멘이었다.

 

예배의 마지막 즈음 목사님께서 따라하라고 했다.

-나는 내 뜻을 버렸습니다.

나는 따라했다. 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남편과 아들이 깰까봐 큰 소리로 외치지는 못했지만.

-나는 내 뜻을 버렸습니다.

-다시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말하세요. 나는 내 뜻을 버렸습니다.

나는 내 마음이 단단한가 한번 가슴 어귀를 만져보고(단단하기는커녕 만질 것(?)도 없었다), 앞으로는 단단해질 것이라고 믿고(마음도 가슴도) 아까 보다는 좀 큰 소리도 따라했다.

-나는 내 뜻을 버렸습니다.

 

예배 후, 한참이나 생각했다. 왜, 오늘따라 목사님은 그런 말을 나의 입밖으로 나오게 만드셨을까. 혹시 하나님은 목사님을 통해 나에게 그런 결단을 내리라고 다짐을 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새해에 책을 읽으면서 나는 계속 새로운 집필에 대하여 연구하는 중이었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너무 많아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머릿속은 꽉 차 있었고, 어제는 거의 비등점까지 올라가 있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곧 무엇인가 튀어나올 것 같은 예감.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네 뜻을 버려라.

 

온종일 나의 뜻은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나의 마음이 원하는 뜻은 무엇일까. 무엇일까.

나는, 나의 마음이 좀 더 비어져야 하는 것을 느꼈다. 좀 더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나를 내버려두는 것이다. 내 몸의 힘을 빼고, 나의 의지를 빼고, 나의 뜻을 빼고.

오늘이 다 지나려는 지금 이 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글의 방향이 잡혔다. 제목도 저절로 떠올랐다.

네, 하나님.

나는 내 뜻을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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