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5일 유다의 하루)
토요 바이블 스터디를 했던 지인으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자신의 기사가 실린 중앙 일간지를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참, 반가웠다. 거의 이 년 가까이 일주일에 한 번씩 그분이 제공하는 멋진 갤러리에서 가졌던 기가 막힌 은혜의 시간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귀한 분이었다.
기사를 꼼꼼이 읽어보던 중, 아름다운 구절을 발견했다.
하염없는 생각.
87년(얼마나 오래된 일인가)의 전시회 제목을 지인은 그렇게 붙였다고 기사에 나와 있었다. 아, 나는 순간 미친 황홀감에 휩싸이고 말았다. 어떻게 전시회의 제목을 그토록 아름답게 붙일 수 있을까.
정성을 다하여 사랑의 답신을 적었다. 진심이었다.
예기치 않은 일로 올해부터는 성경 공부의 장소가 바뀔 듯 하다고, 아무래도 다음에는 그분과 함께 할 주 없을 것이라는 언질을 다른분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던 터라, 그분의 메일은 마치 그분의 화사한 미소를 본 듯 반가웠음은 물론이다. 계속 뵙고 싶은 분이었는데...환경의 변화로 다시는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르는 분이었지만, 같이 한 시간은 정말 유쾌했고, 은혜로웠고, 즐거웠고, 참 많이 행복했다.
그분의 초대로 우이동 산자락에 자리한 박물관에서의 럭셔리한 가든파티에 참석했다. 나로서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이른바 지성인들의 모임은 이런 것이구나, 하는 맛(?)을 보게 해주셨다. 감사해요, 교수님.
하지만 인연은 거기까지인지도 몰랐다. 가끔은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게도 하고 헤어지게도 하시는 하나님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는데 이번 상황이 그러했다.
나의 지론은, 진심은 통한다, 이다. 그것은 진리가 아닐까. 인격적인 만남에는 서로에 대한 존중감을 기조로 하고 그리고 서로에 대해 의지적으로 마음을 열고 허공을 떠도는 객담이 아닌, 가슴 깊은 곳에서 흘러나온 내면의 목소리가 아름답게 섞이는 것.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만남이 아닌가.
지인의 이메일로 인해 한참동안 '하염없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 하염없는 생각은 만남과 헤어짐에 대한 작은 성찰로까지 이어졌다.
난 내 주위의 모든 인간이 그냥 내 곁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모든 인간에게는 배울 점이 있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은 나에게 무엇인가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그분에게 답메일을 보내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저 좋은 분을 계속 만날 수 있게 하여주시기를 바랍니다.
오전, 여느때처럼 말씀의 순례로 하루를 열고 오후에 뭔가 미진한 기분으로 우리 교회 홈피에 들어갔다. 가서, 신년성회의 말씀을 순서대로 두 편을 틀었다. 열정적으로 설교하시는 목사님과 (비록 영상이지만) 눈을 마주치려고 애쓰면서 말씀을 마음에 새기려고 노력했다.
노력해야 했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노력해야만 하는 말씀을 지치지도 않고 5년째 계속하시는 목사님을 애잔한 심정으로 보았다. 목사님은 솔직하게 말하자면 자가당착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새해벽두부터 무슨 은혜 떨어지는 마음일까 싶어 내 마음을 다시 잡으려고 했지만 우울함이 가시지 않는다.
여전히 초등생 교육시키듯 설교하시면서 계면쩍은 질문을 하시는 목사님이 참으로 가슴 아팠고, 그리고 슬펐다. 너무 유치해서 대답하기 싫은 질문들이었다. 목사님, 우리 빨리 진급 좀 시켜 주세요. 중학교에도 가고 싶고, 대학에도 가고 싶어요. 때때옷 입고 재롱하고, 선생님이 하라는대로 해야하는 유치원은 정말 이제는 졸업하고 싶단 말입니다!
단 한 번도 목사님과 면담한 적은 없지만, 설교를 들으면서 목사님과의 면담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올해의 계획 중에는 우리 교회의 연례 행사로 열리는 사순절 특별 새벽기도회를 또 열심히 나갈 결심을 했는데, 오늘 설교를 들으며 포기해 버렸다. 정말 더 이상은 똑같은 말씀을 듣고 싶지 않았다. 열심히 참석하려고 했던 그 마음을 접게 만드신 목사님이 살짝 미워졌다.
목사님은 옆에서 체크해주는 사람이 없는 것일까? 사모님은 대체 뭘하고 계시나? 말씀을 끝까지 들었는데 오히려 갈증이 나서 찬 물 한 컵을 벌컥벌컥 마셔야 했다.
네, 목사님. 하나님과 동행하자는 주제로 신년 성회를 하시고 계시는데요, 그래서 오늘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야 합니다, 하면서 명령 아닌 명령의 제목으로 설교를 하셨는데요, 그런데요...
오히려 사순절 특새를 포기하게 하셨으니 이를 어찌합니까...
지인의 이메을은 나를 즐겁고 행복한 '하염없는 생각'으로 인도했는데 정작 목사님의 설교는 나를 우울하고 맥빠지게 하는 '하염없는 생각'으로 데리고 가버렸다. 빨리 돌아와야 하는데 말이다...
아무래도 올해는 목사님을 위한 중보기도를 작년보다 배를 빡세게 해야할까보다....
에구 목사님, 파이팅입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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