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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하루

자아 중독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3. 3. 15.

(2013년 1월 2일의 유다 생각)

 

한 달 쯤 전이었을까? 나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터넷 인문학강좌 시간에서였다. 글쎄, 어느 새파란 학자가 내 앞에 턱하니 나타나서는 받아쓰기 힘들 정도로 기가 막힌 명언들만 늘어놓던 중에  떡, 하니 던진 한 문장으로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의 삼매경에 빠져있던 나를 최대의 비극적 상황으로 몰고 갔던 것이다.

-감정는 너의 것이 아니야, 몰랐어?

물론 그 학자는 나에게, 아니 강좌를 듣는 사람들에게 정면으로 대놓고 반말지꺼리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예민한 사람만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아주 미미한 함량의 '조소'가 깃든 표정과 빈정대는 듯한 말투에서 유치한 아이를 얼르는 듯한 모욕적 슬픔을 느꼈고, 그것은 나를 완전한 혼돈에 빠뜨렸다. 대단히 많이 배운 자식(죄송하다)이 대중 앞에 하는 말이니 틀린 말은 아닐 것이고 그것은 인문학적으로 증명된 말일것이리라는 신뢰속에서 나는 온몸과 영혼이 불길에 휩싸이는 듯한 환각에 사로잡혔다.

내 영혼의 팔할을 차지했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그 '감정'이 나의 것이 아니라니, 그럼 그건 누구 거란 말인가? 설마 하나님의 것은 아닐테고 말이다! (하지만 가끔은 하나님이 매우 감정적인 성향이 아닐까 하고 의심한 적은 있었다. 그리고 그 의심은 아직까지 아주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 학자는 마치 메롱, 하는 눈빛으로 그렇게 심각한 말을 씹던 껌 뱉듯 확 내 면상에 던져놓고, 내 얼굴에 그가 뱉은 껌딱지가 붙어 쩔쩔 매는 모습을 모르쇠하면서 이내 강의의 방향을 돌려 버렸다. 아, 이런....

강의의 방향을 돌리거나 말거나 나에게는 별무소용이었던 것은 그 이후의 주옥같은 강의는 하나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미칠 것 같았다.

내가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하고 추구하고 아끼고 키워왔던 (예술적 감정을 포함한)감정이 내꺼가 아니라니, 그럼 이제껏 내가 소유하고 있고, 내 속에 존재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던 그 감정은 대체 누구의 것이며 그것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멍청한 표정으로 반나절은 족히 지난 후에야 나는 비로소 하나님께 물었다.

-이 무슨 황당 시추에이션이랍니까, 하나님? 이거, 하나님이 주신 말씀 맞슴까?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이 의미 부여 해주신 것이라고 믿고 있는 나로서는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왜, 지금에 와서, 감정에 대하여, 나의 소유권을 박탈하시는 겁니까? 이 나이 먹도록 그토록 애지중지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감정 덩어리 그 자체라는 말을 들으며 살아온 나에게 왜 이제서야?

한바탕 하나님께 온갖 불순한 단어를 다 동원하여 나의 애통함을 올려드리고도 한참을 씩씩거리며 앉아있다가 밤이 으슥해져서야 겨우 진정했다. 하나님의 완강하신 팔뚝을 꽉 붙잡고 애원조로 말씀드렸다.

-아멘.

그렇다면 그런거겠지요.

똑똑한 인문학자들이 그렇게 말한다면 맞는거겠지요. 그 말이 나에게 필요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그 말을 듣게 하지는 않았을 터이니, 그냥(그냥, 이라고 말하면서 나는 눈물을 한 방울 떨구었다) 받아들이겠슴다...알겠슴다. 감정은 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들어감다...

 

그날 이후, 내가 감정에 휘둘릴 때면 이전처럼 그 감정에 푹 빠지는 것이 아니라, 내것도 아닌 것이 감히 나를 흔들고 지랄이야, 하면서 착착 감기는 감정덩어리를 떼어내려는 제스처를 했다. 제스처만 했는지는 모르지만 이제껏 하지 않았던 노력은 조금 했다는 말이다. 이거, 내것도 아닌 것이, 하면서 도망치려고 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거의 평생 내 몸에 들어붙어 있던 감정이라는 것이, 내 영혼을 백겹 이상 감싸고 있던 감정이라는 것이 쉽사리 물러갈 놈은 아니라는 것을 나도 알고 물론 하나님도 아실 터였다.

그러면서도 감동적인 결심 하나를 했는데 그것은 새해의 모토는 '감정은 네 것이 아니다'는 문장으로 삼는다, 였다. 네 것이라고 객관화 시킨 것은 그 말씀을 하나님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감정은 내 것이 아니라, 라고 쓰면 그것은 나의 결단에 지나지 않으므로 얄미우리만큼 매정하게 한 마디 쏙 던져놓고 내뺀 그 젊은 학자는 하나님이 나를 위해 보내준 예언자쯤으로 격상시키기로 했다. 그렇게 써놓고 나니 어쩐지 기분이 나아졌다. 그것도 감정인지는 모르지만 왠지 앞으로는 이전과는 다른 업그레이드된 삶을 살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을 좋은 조짐으로 받아들였다.

감정을 떠나보내면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주시려나,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나에게는 엄청난 자기중독이 있다.

그것은 오늘, 새해들어 둘째 날 집어든 책에서 확실하게 깨달았다. 그 책의 작가도 거의 나와 똑같은 성정의 인간이었던지라 그의 사고나 그의 행동은 완전히 나의 빙의로 느껴졌다. 정말 그랬다. 아니, 이 인간 미국에 살면서, 게다 남자이면서 어떻게 나와 이토록 생각이 같을 수가 있지?

그런데 그 작자가 자기중독에 대해 고백하는 장면에서 나는 완전 다시 뒤집어졌다.

그 증세로 점수를 매겨보건데 그 작가와 나와 한치도 빈틈없이 똑같은 자기중독에 빠진 인간이었다.

나는, 새해 나를 이렇게 진단할 수 있게 하여주신 하나님께 매력적인 미소를 날려드렸다.

아마, 올해는 하나님이 나를 스스로 진단하게 만드시고, 그 정직한 진단서를 힐링센터로 가지고 가게 하시고 그곳에서 완전 치유를 목적으로 하고 계시는 것이 아닐까?

 

어떻게 해서 연말연시를 책 두 권으로 보내게 하셨는지, 그 많은 책 중에서 내 손으로 그 두 권을 고르게 하셨는지, 그 두 권의 책에서 내 영혼을 새롭게 하고, 새롭게 각성하게 만드셨는지 나는 모른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였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시고, 나에 대하여 깨닫게 하시고 그리고 누구처럼 노란 화살표 하나를 확실하게 그어주셨다. 와, 하나님은 가끔 멋쟁이셔!

너무 이르지만 이렇게 말해도 되겠다.

지금 나는.

기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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