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3일 유다의 일기)
신발을 감추기로 했다. 당분간이다. 그 당분간은 짧으면 두 달, 길면 석 달로 잡았다. 내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길에 나설 그 때, 나는 얼마나 단단해져 있을까. 다만 그것을 바랄 뿐이다. 부디 내 마음이 단단해지기를.
아침, 설교 중에 두 말씀이 귀에 들어왔다.
-지옥이란 죽어서 가는 불타는 어떤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없는 곳이 지옥입니다.
아멘했다.
작년의 나의 소행을 더듬어보건데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불꽃같은 눈으로 나를 지켜보시는 하나님을 차마 볼 수 없어서 내눈을 감아버렸던 시간들. 눈을 뜨면 하나님이 보일까봐 두 손바닥으로 내 눈을 가리고 보지 않으려고 발버둥쳤다. 그리고는 외쳤다. 나는 하나님이 안보여요. 지금 하나님은 안 계신 거 맞죠? 무수한 죄로 모자이크된 나의 형상은 잠시라도 하나님과 떨어져 있고 싶었다. 그래서 스스로 지옥의 불구덩속으로 빠져들어갔다. 그 위험한 불장난을 참 많이도 했다. 나에게, 하나님이 없는 곳은 없었으므로(Nowhere to hide) 수면안대같은 무모한 감정으로 내 눈을 가렸다.
하나님을 의식한 죄의식이나 죄책감은 은혜로 이끄는 통로가 되기도 하지만 하나님을 등진 죄의식이나 죄책감은 온전한 자멸에 이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너무도 자명하게 알면서도, 그렇게 했다.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명주실같은 끈을 내 손목에 붙들어매고 천천히, 끊임없이 하나님께로 당기고 계셨다. 오너라, 그냥 그 모습 그대로 오너라. 네가 면목이 없다고 하니 그냥 가만히 있어라 내가 잡아당길테니 그냥 몸을 맡겨라...
하나님은 아직도 화상의 후유증에 몸부림치는 나를 불구덩이에서 끌어내시고 데인 자국마다 하나님의 입김을 불어넣으시고 조금씩 조금씩 새살이 돋게 하셨다. 하나님, 찬양드립니다.
두번째 들은 설교에서 하나님은 다시 나에게 이런 말씀을 주셨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다시 아멘이었다. 내 마음의 상태를 명확하게 알고 계시는 하나님은 자분자분 나에게 설명해주셨다. 너를 포함한 모든 인간의 마음이 그러하단다. 너만 그런 것이 아니란 말이다. 하나님은 목사님의 설교를 통하여 '모든 인간'이 다 그러하다고 내 어깨를 토닥거렸다.
내가 서 있는 위치를 정확하게 판단하라는 말씀이기도 했지만 또한 그것은 위로의 말씀이기도 했다. 그 다정한 위로에 왈칵 눈물이 솟았다. 하나님, 그 얼룩덜룩한 마음에 찾아와 주시니 감사해요. 두 손을 꽉 잡고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세상의 조도가 조금은 더 밝아진 느낌이었다. 식어가는 커피를 마시는데 그렇게 달콤할 수가!
씩씩하게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영하 20도에 가까운 차가운 겨울의 아침이 더 할 나위없이 따뜻했다. 하얗게 눈이 쌓인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나님은 지금, 감정에 휘둘려 전신화상을 입고 나뒹굴어 있는 나에게 다가와 마치 엄마처럼 상처부위마다 쓰다듬으며 호~ 해 주시고, 눈처럼 하얗고 순결한 성령의 세례를 부어주고 계시는 것이 틀림없었다.
문득 현관 바닥을 보았다. 몇 년째 신고 다니는 통가죽 구두가 눈에 띄었다. 내멋대로 다닌 길의 행적을 알고 있는 공범자였다. 구두도 발람의 나귀처럼 나의 발길을 돌이키게 하고 싶었으리라. 발람의 나귀처럼 말을 할 수 있다면 외치고 싶었으리라. 가면 안돼요!
여기저기 흠집 투성이인 구두를 들고 한참 들여다보았다. 저 많은 흠집을 내면서 갔던 길은 어디었을까.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걸었던 길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었을까. 감정에 휩싸여 달려갔던 길 저편에는 무엇이 있었더란 말인가.
나는, 나의 신발을 신발장에 넣었다. 문을 꼭 닫았다. 나오지 말아라.
오후에 시 쓰는 문우의 문자를 받았다.
-오늘 저녁 시간 어떠신가. 추운 날 빙어 속살 한 점 앞에 두고 싶네. 시 같은 사람들과 같이 앉아.
한동안 망설이다 답문자를 보냈다.
-감기 몸살 급체로
앓아누웠나이다
방랑하던 몸이 꽤나
힘들었나 보오...
물집 가득한 생을
한줌 알약으로
견딜 수 있을지...
신발을 감추고
오래 앓아누울
결심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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