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10일 유다의 일기)
오늘 새벽, 100주년 새벽예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믿음은 최악의 상태에서 최상을 꿈꾸는 것이다. 아멘.
최악의 상태에서 최상을 꿈꾸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이던가. 이제 모든 것이 끝이로구나, 절망밖에 없구나, 할 때 어떻게 마음속으로 최상을 꿈꾸는가 말이다. 절망의 상태라면 희망이 없는 상태인데 최상을 꿈꾸다니 말이 될법이나 한 소린가!
하지만, 나의 믿음의 연약함을 내 자신보다 더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은 완전 그로기 상태로 뻗어있는 나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주셨다. 하나님의 작업은 은밀하셔서 당시의 나는 하나님의 손이 내 손을 잡아주고 있는지 일으켜주고 있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다. 하나님의 존재, 나 자신의 존재 모두 보이지 않았으므로 불행했고, 어느 순간은 죽고 싶었다. 나에게는 나를 절망 속으로 밀고 들어가는 숱한 문제를 풀 에너지도 없었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도 찬양할 믿음도 없었다. 나는 단지 그 고통의 수렁에 함몰되어 끝없이 괴로워하는 지옥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최악의 상태를 만만하게 보지 마라. 최악이라는 단어가 설명하고 있는 그 무시무시하고도 공포스러운 마음의 상태를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그냥 그 속에 널브러진 내 자신을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 힘들었다. 하나님은 내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죄책감과 은혜에 대하여 그토록 열심히 묵상했지만 그 결론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나는 어쩔 수 없어, 영원히 이 죄악의 사슬을 끊지 못할 거야, 하면서 절망적인 자책감에 그냥 내 몸과 영혼을 넘겨주어 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바닥을 치고 서서히 올라오는 나를 어느 순간 깨달았을 때, 아, 하나님은 과연 시퍼렇게 살아계시구나 하는 자각이 왔을 때(그 자각조차도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나는 확실히 알고 있다) 나는 비로소 죽은 듯 힘을 못썼던 영혼이 소생하는 것을 느꼈다. 할렐루야.(감히, 하는 생각에 내 인생에서 몇 번 써보지 못한 단어이다, 할렐루야) 하지만 지금은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할렐루야.
정말 이제는 온전히 내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로 나는 죽고 내 안의 예수님만 살아있게 된 것이다. 아멘.
고백하자면, 최악의 상태에서 최상을 꿈꾸는 분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셨다. 그것은 모두 하나님의 작전 뻑(죄송함다)이었다. 나로 하여금 자신의 어리석고 죄가 가득한 그 실체를 처연한 마음으로 직시할 수 있게 해주시고, 그리하여 내 자신의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존재성에 담긴, 하나님의 은혜가아니면 단 하루, 한 시간도 살 수 없는 나를.
그래서 지난 연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 애벌레가 끝이라고 생각할 때 하나님은 나비가 되게 하십니다. 아멘.
끝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절망하면서 나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내 집착, 내 감정, 내 소망, 내 욕망, 그 모든 것에 대해 손을 털고 빈 손으로 다가가는 순간,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나를 이끄시고 나를 새롭게 만드십니다. 이것은 진심의 고백이다.
그런데 그 다음 그리스도교회의 새벽예배에서 하나님은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
반역은 살아있다.
우리의 죄성은 언제나 남아있다는 것이다. 아마, 우리가 죽을 때까지 그 죄성의 존재로 늘 피흘리며 싸워야 할 것이다. 맞습니다, 주님.
사도 바울도 오호라, 곤고한 사람이로다, 하면서 한탄했는데요, 뭐...
하나님의 법과 육신의 법은 내가 죽을 때까지 내 마음속에서 서로 우위를 차지하려고 죽을 둥 살 둥 쌈박질을 할 터였다. 이전에는 얼마나 많은 순간 육신의 법이 하나님의 법을 이겨먹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2013년은 다르다. 분명히 다르다. 다를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이미 하나님쪽으로 몸을 돌이켰고, 시선을 하나님께로 고정시켰다. 나의 나됨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실 것을 믿고 있다. 내가 아무리 안달해도, 내가 아무리 머리싸매고 노력해도, 내가 아무리 성실하게 책을 읽고 글을 써도,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시지 않으면 파숫꾼의 경성함이 허사라고 시편기자가 말한 것처럼 나의 성실함과 인내와 노력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없다면 허사인 것을 안다.
그것을 알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흘려보내야 했던가. 또한 알기는 아는데 몸으로 체험적으로 다가올 때까지는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흘려보내야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시간 역시 헛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 시련과 연단의 시간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씩 하나님을 향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나를 하나님보다 앞세우지 않을 것이다. 나의 계획 속에 하나님을 집어넣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이고,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이다.
앞으로도 반역의 시간이 많겠지만, 죽을 때까지 두 마음 사이에서 방황하면서 곤고한 자로다를 수없이 외치면서 가슴을 치겠지만, 그 시간조차 나에게는 귀한 시간이리라 믿고 있다.
왜냐?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을 용기가 이제는 생겼기 때문이다. 그 믿음으로 나는 앞으로 닥칠 최악의 상황에서 최상을 꿈꿀 수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열심이 나를 깨우쳐주실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