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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 가로되

내 마음에 주를 향한 사랑이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6. 5. 2.

 

내가 다니는 교회는 주일 예배가 3부까지 있다. 그 중 9시 반에 시작하는 2부 예배는 이른바 열린 예배이다.

워십 팀이 앞에서 찬양을 인도하고 헌금, 광고가 말씀 전에 배치되어 있어서 말씀이 끝나면서 곧바로 예배가 끝나기 때문에 쓰잘데없는 광고나 광고성 광고로 마음이 흩어 질 위험이 적으므로 말씀 집중도가 높은 편이다. 대신 예배 전후로 다른 예배보다 찬양이 많은데 그 찬양 대부분이 가스펠이다.

요즘 가스펠은 왜 그렇게 어려운지(붓점 많지, 싱코페이션 많지, 도돌이 많지, 엇박자 많지, 그 짧은 16분 음표들이 난무하지, 에휴) 성가대 짬밥 수십 년을 자랑하는 나도 따라가기 힘들 정도이다. 그런 가스펠을 겨우겨우 따라 부를 때마다 감동 제로에 음악성만 높은 곡을 줄기차게 선별하신 분이 대체 누군지 궁금해진다. 궁금해지면 뭐할 건데.

그런데 모처럼 어제 말씀 후 결단하는 가스펠이 내가 좋아하는 "내 마음에 주를 향한 사랑이"를 부르게 되었다. 이 기쁨. 이 감동. 원제는 "십자가의 길 순교자의 삶'이라는 어마무시한 제목이라고 한다.

 

예배 후 집에 와서도 가스펠의 감동이 사라지지 않기에 아들과 하나가 고스톱을 치러 온다는 그 짧은 틈을 이용하여 피아노 앞에 앉았다. 정말 좋았다. 두 번 째는 노래를 곁들였다. 더 좋았다. 좋다는 단어는 좋다는 의미를 구현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지만.

마침내 도착하신 아들과 하나와 함께 제육볶음으로 저녁을 먹고 그 녀석들이 베란다로 쪼르르 기어나가 아들은 팔리아멘트 하나는 말보로 레드를 한 대씩 꼬나무는 동안, 그 틈새를 못 참아 또 피아노 뚜껑을 열고 세 번을 거푸 쳤다. 으윽 좋아좋아! 그러다가 이 녀석들 디저트로 커피를 만들기 위하여 의자에서 일어서는데. 그때.

초딩 1학년 때 피아노 학원 안가겠다고 펑펑 울기에 그럼 관두시든지, 하면서 피아노학원을 끊어주었던 아들이 식후 연초 불로장생을 하고는 느닷없이 피아노 의자를 당겨 앉았다. 그리고는 띵가당 띵가당 건반을 두들기는 것이 아닌가. 바이엘 초급을 중도하차한 실력 치고는 왼손 오른손이 그럴 듯하게 움직이고 귀동냥으로 들은 엘리제를 위하여는 무려 네 마디까지(ㅋㅋ) 거침없이 연주하시는 것이었다. 이 녀석이 흡연의 시간에도 귀를 쫑긋하여 엄마가 은혜받는 가스펠에 덩달아 은혜 받았는지도 모르지. 정말 기분이 좋았다. 분위기 좋았고, 그림 좋았고, 천국이 따로 없었다. 엄허나. 이것이 바로 내가 꿈꾸던 우리의 스위트 홈!

 

하지만 꿈은 곧 사라졌다.

고스톱 판에서 또 꼴통 남편이 깽판을 쳐버린 것이었다. 늘 그렇지만 별것도 아니었다. 말도 안 되는 유치찬란한 변명을 일삼는 남편과, 아빠에게 끝없이 정당한 논리를 펼치는 아들과, 되도록 중립을 지키려하지만 대화좌절에 평생 시달리며 은근 남편을 얄미워하면서 말리는 나와 하여튼 패싸움 비슷하게 되어버렸다. 그때부터 11시 너머 끝날 때까지 고스톱 고 자도 모르는 바보 천치 취급당했다. 으윽 이 모멸감이여. (하지만 결론은 내가 20600원이라는 거금을 땄고 남편은 27500원이라는 거금을 잃었다는 거) 몇 시간 동안 남편이 나에게 퍼 부운 말이 진실이라면 지금 남편은 정신지체1급 아내와 살고 있는 것이다. 아니, 바로 전날 토요 성경모임에서 우리 남편 보물이어요, 하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질 했더니만 이게 뭥미?

 

그리고 빛나는 월요일 아침.

맛난 6첩 반상을 차려드렸다. 그런데.

밥을 많이 담았다고 그렇게 모질게 야단을 듣는 세상의 아내는 나밖에 없으리.

하여튼 아침 식사 시간이 엉망이 되고 말았다. 오늘 오후에 엊그제 검진 받은 거 결과 보러 가야하는데 이 양반이 지금 정신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어르고 달래서 비위를 맞춰주어도 시원찮을 판에 스트레스로 나의 뇌 용량이 과부하가 일어날 지경이 되었다. 하여 나도 큰소리. (내 나이도 만만치 않음요! 하면서)

오늘부터 집 앞 카페로 작업하러 간다고 하니까 더 심술을 부리는 남편에게 빠이빠이도 안하고 냅다 카페로 와버렸다.

참 이상하다. 잘 생각해보니 이전에도 그랬군. 성경모임에서 이거 좋아요 저거 좋아요 하고 기뻐 죽을 것 같은 이야기를 은혜 충만하게 나누고 집에 오면 은혜 완전 쏟아지는 이상스런 일이 발생하고 기어이 사단이 난 기억이 몇 번 있다. 하나님 아시잖아요. 제가 원래 왔다리갔다리 해요.

 

어쨌든 4월 한 달 동안 어르신 케어 열심히 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실직()하고 자유로운 실직자가 되기도 했으니 이제부터는 열라 작업에 몰두해야겠다, 라고 결심하고 있다. 그러면서 문득 떠오르는, 어제 나를 황홀하게 만들었던 저 가스펠. 반성하고 다시 불러봅니다.

별로 그렇진 않지만 남편이 계속 이유 없이 스트레스 주면 아, 이것이 십자가의 길 순교자의 삶(ㅋㅋ)이로구나 하면서 주의 순결한 신부가 되기 위하여 노력할게요. 그리고 하나님. 오전에 작업 끝내고 집에 가서 다시 남편에게 손 내밀고 잘 할게요.

 

(원고지 14)

 

 

 

 

(잉, 그럴듯한 글 좀 써볼까 하고 카페까지 왔는데 이런 반성문이 먼저 쪼르르 흘러나오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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