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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QT

히브리서 11장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1. 6. 24.

◆ 히브리서 11장

 

 

(표준 새 번역)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선조들은 이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훌륭한 사람으로 증언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나 있는 것에서 된 것이 아닙니다.

13절 이 사람들은 모두 믿음을 따라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들은 약속하신 것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반겼으며, 땅에서는 길손과 나그네 신세임을 고백하였습니다.

14절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네가 고향을 찾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15절 그들이 만일 떠나온 곳을 생각하고 있었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16절 그러나 사실은 그들은 더 좋은 곳을 동경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곧 하늘의 고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도시를 마련해 두셨습니다.

38절 세상은 이런 사람들을 받아들일 만한 곳이 못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을 헤매며 다녔습니다.

39절 이 사람들은 모두 믿음으로 말미암아 훌륭한 사람이라는 평판은 받았지만,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40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계획을 미리 세워두셔서, 우리가 없이는 그들이 완성에 이르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 유명한 히브리서의 <믿음 장>을 다시 찬찬히 읽어보았다. 개역한글판으로 읽어보았고 다시 표준새번역으로 읽었다. 그런데 개역한글판으로 읽었을 때는 쉽게 눈에 띄지 않았던 구절이 표준새번역으로 읽으니 눈이 시원해지면서 머릿속이 반짝거리는 것 같았다. 처음 느끼는 이 기분은 무엇인가? 갑자기 3부 다이아 반지 하나 선물 받은 것처럼 마음이 기뻐진다. 새롭게 다가온 구절에 빨갛게 밑줄을 쳤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다. 믿음으로 한 어떤 행위는 보인다. 그 믿음은 자신의 유익에서 넘어간 어떤 높은 가치였다. 모세의 경우, 믿음으로 왕의 공주의 아들이라 불리기를 거절하였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학대받은 길을 택했다. 현재 우리들이 바라는 것과는 정 반대의 삶을 산 것이다. 우리들은 학대받는 길에서 벗어나 공주의 아들이라 불리는 영광된 자리로 올라가기를 원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얻기 위하여 열심히 교회도 나가고 헌금도 하고 봉사하는(척)도 하는 것이 아닌가.

 

가슴에 손을 얹고 자기 자신을 한 번 돌아보자.

만일 당신이 사업이 망하면 그것을 축복이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이 병들거나 자식이 죽거나 사고가 났는데 그것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나는 별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사람들로부터 모욕을 당하고 공연히 죄를 뒤집어쓰고, 어이없이 오해당하면 그것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하는가?

 

누군가 그렇게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입을 다물고 얌전히 있을 수밖에 없다. 나에게 돈은 얼마나 좋은 것이며, 어딘가 당선되어 남이 우러러보는 것은 내가 얼마나 바라는 것이며, 자식이 기똥차게 잘 되어 번듯하면 얼마나 좋은가. 요즘처럼 집안에 돈의 씨가 마른 상황에서도 어쩌다 백화점에라도 가면 아, 그 멋진 상품들에 눈이 돌아가면서 지름신이 동하는 것을 인내하느라 입술에 힘을 얼마나 주어야 하는지 모른다. 나는 그렇게 약해빠지고 어리석인 인간이라는 것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다. 나는 모세처럼 살고 싶지 않다.

그런데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모욕을 이집트의 재물보다 더 값진 것으로 여겼다.

 

27절 하반부 그는 보이지 않는 분(하나님)을 마치 보는 듯이 바라보면서 견디어냈습니다.

33절에서 끝 절까지 믿음으로 고난을 견디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에게는 본향이 있었기 때문에, 이 땅에서는 길손과 나그네 신세임을 알기 때문에(13절 말씀) 그것을 능히 견디어 낼 수 있었다.

 

그들은 믿음으로 첫째,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깨달았고,(3)

믿음으로 둘째,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며(6)

믿음으로 셋째, 하늘의 본향이 존재하고 이세상은 나그네라는 것을 깨달았으며(13)

 

모든 어려움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마치 보는 듯이 바라보면서 견디어냈다.

 

믿음은 결국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마치 보는 듯이 바라보면서 인생을 살되, 이곳은 나그네길이고 하늘의 고향이 있다는 것을 믿으면서, 자신의 유익만을 구하지 않으면서 사는 것이라고 히브리서 11장은 나에게 말해주고 있다.

잘 살 것을 믿쑵니다, 자식 잘 될 것을 믿쑵니다, 병에서 나을 것을 믿쑵니다, 좋은 집 주실 것을 믿쑵니다, 에서 좀 더 한 발짝 위로 올라서야할 것을 느낀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현재의 상황에서 날마다 조금씩이라도 더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면서 사는 것이다. 믿음이 자랄수록 매사에 간섭하시고, 같이 동행하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다. 하나님과 같이 호흡하면서 살아가는 것. 약속된 것을 받지 못했다는 말이 2번이나 나오는 것이 포인트. 우리가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한다면 그런 하나님은 모른다고 하나님이 누구냐고 그런 하나님은 안 믿겠다고 그 즉시 배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니엘의 세 친구에서 <비록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을 참 믿음이라고 후세의 사람들이 일컫는 것도 그 이유에서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이다. 내가 낳은 자식을 목숨보다 더 귀하게 사랑하듯, 하나님도 우리 각자를 인격적으로 개별적으로 동등하게, 공평하게 사랑하신다. 제발 <특별>이라는 단어에 대해 더 이상 집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목사님이나, 평신도나, 집사나 모두 공평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

 

언젠가 목사님을 모시고 지방에 가는 중 금란교회가 무지막지하게 건축하는 현장을 지나게 되었다. 목사님께서 정말 기적이야, 능력이 많아, 등등 감탄하시는데, 나는 목사님께 말씀드렸다. “목사님. 저 금란교회를 저렇게 크게 짓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제가 지금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진짜 기적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전권적인 역사이며 은혜이다.

 

몇 주 전 목사님께서 인도자 공부시간에 말씀해주셨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그 교리만 맞으면 모든 것을 다 통과하여라. 작은 교리에 얽매이지 말고, 시시비비가리지 말고, 신앙이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하는 것을 절감한다.

 

아벨의 믿음과 에녹의 믿음 노아의 믿음과 아브라함의 믿음이 같을 수 없다. 그들은 각기 다른 인생의 여정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고 그 임재하심을 따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마치 보는 듯이 바라보면서 고난을 견디어냈다.

믿음의 조상들처럼 오늘도 나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마치 보는 듯이 바라보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함을 느낀다.

 

나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간섭하시는 하나님을 느낀다. 이번 추석의 예로, 하나님이 하늘에서 택배를 보내주셨다!! 하나님은 늘 내가 기대하지 않았던 어떤 곳을 찾아내어 예기치 않은 기쁨을 주신다. 하나님은 머리도 좋으셔라. 늘 나의 예상을 뒤엎는 놀라운 은총과 사랑으로 나를 웃게 만드시는 하나님!

감사하다. 늘 하나님과의 관계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기도, 예배, 묵상과 함께 성령의 도우심을 늘 간구해야겠고, 하나님과 말씀 안에서 교통하여야 함을 느낀다.

 

다른 사람의 믿음도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이다. 판단하지 말아야겠다.

하나님은 우리의 최고의 지 정 의 위에 초월자로 존재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면 그분은 이미 하나님이 아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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