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하루의 거의 전부를 고단한 몸을 위하여 릴렉스하게 보냈다.
여행의 뒤끝이 꽤 길다. 앞으로는 심사숙고해서 여행지를 골라야 할 듯 하다.
일테면 섬은 매우 좋지만 바다낚시는 절대 사양한다거나 하는.
친구들과의 여행은 좋지만 단체여행의 꼽사리는 내 취향이 아니라거나 하는.
어제 일찍 잠자리에 들었기로 새벽 세시가 채 되기도 전에 눈을 반짝 떴다.
상쾌한 기분을 어제 하루의 소비에 대한 후회로 망치고 싶지 않았기에 빨리 기억을 지웠다.
방법은 간단하다. 감사기도를 하고 머리를 두어 번 흔들면 된다.
내가 좋아하는 차렵이불을 덮고(아, 나에게 잠자리에서의 행복감을 극대화 시켜준 싸구려 차렵이불! 짙은 밤색의 아름다움과
까실한 감촉과 누빈 간격까지 나의 마음에 쏙 들어 잠잘 때마다 즐거운 마음으로 기어들어갔다) 네시가 훨 지나도록, 그러니까 자그마치 한 시간 넘게 '시체놀이'를 했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달콤한 시체의 방식이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새벽이었다.
여기에서 비문학적인 분들을 위하여 또다른 내 블로그에서 퍼온 '달콤한 시체의 방식'의 의미를 부언한다.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는 시를 난삽(!)하게 만들었다...
왜 육체가 중요시 되는가? 감각은 육체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결국 내 몸의 깊이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깊이의 확보는 어느 육체적 손상으로 이어진다...
투시자는 다른 것을 보는 사람이다...시인은 투시자이다. 모든 감각의 착란을 극복한 투시자이다...
(아아, 모든 감각의 착란을 극복한!! 감각의 착란이라는 말이 나를 매혹시킨다!)
시인은 이치에 맞게 착란시켜야 한다(내가 가장 충격받은 문장이다!!)
착란된 감각을 감당할 수 있는 언어가 상징주의의 음악성으로 드러난다...
말라르메는 신이 없는 세계에서 부정의 방법으로 규정의 방법을 사용했다...
이성이 간섭하지 않는 방식이 바로 자동기술적인 방식이다...
이성의 통제가 사라진 영역인 것이다...이것을 '달콤한 시체의 방식'이라고도 한다...
그러니까 새벽의 시체처럼 누워있던 나는 이성이 간섭하지 않은, 이성의 통제가 사라진 영역에서 놀았다는 말씀이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성은 깨어 있어서 이런 생각들을 했다.
나는 과연 무엇을 원하고 있으며 그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것인가
내가 지금 이 순간(현재를 말한다)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며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한다면 이유는 무엇인가.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다면 왜 그러한가.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라면 때가 아직 아닌 것이고 또 다른 이유를 찾자면 내가 너무 게으른 탓인가. 나의 게으름은 생각을 느릿느릿 풀어내고 어느 순간 감각을 동원하여 미친듯이 발화(글을 쓴다거나 생각을 확장시킨다거나 어떤 일련의 행동을 개시하는것 포함하여)하기 위함이 아니런가.
내가 누리는 충만함을 결핍되게 만드는 것이 과연 필요한 일인가. 나에게 소용없는 일들을 붙잡고 늘어지지는 않는가...
뭐...생각은 하염없이 흐르고 나는 그 생각이 흐르는 대로 몸(영혼까지)을 맡긴채 명료함과 물안개 자욱한 희미함을 동시에 누리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과연,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네 시가 넘어가자 사흘을 굳건하게 견딘, 서해안 어디엔가 있는 작은 섬 풍도의 바람과 햇살과 바닷물의 짠 것들과 땀이 범벅이 된 채로 토요일부터 화요일까지의 시간을 견디어 준 나의 무지막지한 게으름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머리카락을 정성스레 샴푸했다. 개운했다.
매일 샴푸하는 사람은 절대 알지 못할 희열을 나는 사나흘마다 한 번씩 느낀다. 감격스럽다. 하하.
그리고는 드립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새벽에 걸맞은 독서, 즉 '하나님 나라 리더십'이라는 다소 진부하되 가슴새겨 읽어야 할 책을 펼치고 연필과 빨강펜과 형광펜으로 번갈아 줄을 치면서 읽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책을 좀 우습게 보았던 것이 무색하리만큼 진중한 내용이어서 더욱 좋았다.
(이 후의 글은 새벽예배 다녀와서 이어짐 ㅋㅋ)
5시 20분이 넘어가자 젖은 머리카락을 대강 집게로 고정시키고 신이 나서 새벽 예배를 갔다.
담임목사님이 휴가여서 젊은 전도사가 설교를 했는데 매 문장이 끝날 때마다 기도해야 했다. 그 버벅거림은 답답함을 넘어서서 연민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오, 하나님, 저 전도사님이 앞으로 설교할 때마다 많이많이 도와주셔욧!
아, 새벽에 집을 나서는 그 시간은 얼마나 행복한가. 어스름한 사위에 점점 쾌적해지는 바람을 맞으며 아주 천천히 길을 걷는다. 늘 일찍 나서는 편이라 그 는적한 걸음걸이가 나에게 또다른 여유를 준다.
예배당에 앉아 있는 시간은 또 얼마나 행복한가. 하나님의 숨결이 나의 온몸을 감싸고 있는 것 같은 포근함이 있다. 절정이다.
오늘은 특별히, 가게를 말아먹고 있는 친구의 마음과 조울증에 시달리는 선배와 우리 이쁜 하나의 행복과 친구 아들녀석의 앞날, 그리고 꼴통의 극치를 보여주는 우리 남편의 마음이 좀 더 평화로워지기를 기도했다. 덧붙여 사랑하는 동생들의 안부를 하나님께 물었다. 지금 잘하고 있게끔 뒤를 봐주시고 계시는 거 맞죠? 하면서 아양도 떨었다.
그리고 아침.
새가 노래하는 아침이며 나뭇가지의 이파리들이 가볍게 나부끼는 아침이며 커피 내음이 더욱 향기로운 아침이며 두란노에서 발행한 저 책이 나의 영혼을 살찌우는 아침이며 이 모든 충만함을 주신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는 아침이다.
오늘 시체놀이는 참 많이 달콤했네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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