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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 가로되

협찬품들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4. 8. 26.

(달콤한 시체의 방식에 대한 글을 찾다가 발견한 글인데 이곳이 더 어울릴 것 같아 퍼왔다. 흠,...그때 그렇게 살았군.^^

2012년 10월의 어느날 일기다)

 

어제에 이어 오늘까지 단 이틀동안의 협찬품을 공개한다.

(협찬품은 구호물자로 명칭이 가끔 바뀌기도 하지만 용도는 같다^^)

 

점점 이뻐지는 한 년이 교회에서 만난 울 남편에게 슬쩍 쥐어준 신사임당(담배 사 피우세요~ 하면서).

년은 울 남편을 보기만 하면 지갑을 연다. 어지간히 고집세고 자신만 아는데다가 심통도 장난아닌 여러 모습이 마치 자신의 아버지 닮았다나? 윽, 그럼...? 하여튼^^

오후에 다시 호프집에서 만난 년이 각일병씩 하자고 하넹?

뭐, 각일병?

공개적으로 금주선언을 한 내가 놀라서 되묻자 년이 말했다. 넌 콜라 한 병, 나는 쏘주 한 병^^

그렇게 해서 안주를 질펀하게 늘어놓고 주거니 받거니 술과 콜라를 마셨다. 술마시는 년 앞에서 콜라를 마시자니 어쩐지 나도 취하는 것 같았다 ㅋㅋ 잔에 따를 때마다 빼놓지 않고 건배를 하면서.

그런데 필 받은 년, 다시 각일병씩 하잔다. 그리하여...나는 다시 콜라 한 병, 년은 쏘주 한 병을 말끔하게 비웠다. (맨 처음 기분이라면서 나에게 따라준 소주 한 잔은 어찌나 쓰던지 한 시간에 한 방울씩 겨우겨우 마신 것 같다. 내가 생각해도 믿을 수 없는 사실이다!)

년의 비통한, 슬픈, 애잔한 고백을 몇 시간 들어주었다. 가슴 아픈 진실이었다. 나도 꽤 슬퍼졌다. 사는게 뭔지 모르겠다는 생각만.... 쏘주 한 병이 주량인 년이 취해버렸다. 년이 내 뺨에 마구 뽀뽀를 하면서 말했다.

진정한 친구 한 명만 있으면 그 사람은 인생에서 성공한 사람이래!! 그러니까 나는 성공한 사람이야, 너 같은 친구가 있으니, 완전 행복해!!

... 난...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그려, 년아. 내가 아니더라도 제발, 성공했고, 행복하다는 생각을 늘 하고 살거라...

비틀거리면서도 잊지 않고 큼직한 보따리를 안겨주는 년. 주면서도 (오히려 나에게)고맙다고 입이 닳도록 말하는 이상한 현상이....

하여튼 그 속에는....남편이 무쟈게 좋아하는 누룽지 네 보따리에 내가 좋아하는 카놀라유 두 병, 그리고 무쟈게 럭셔리한 외양을 자랑하는 외제 화장품 두 통이 들어있었다. 영양크림 샘플 몇 개 가져오라는 내 협박을 들은 바로 그 다음날, 제법 윗자리에 계시는 사회적 위치상 선물이 들어왔는데 그것이 바로 영양크림이었단다. 하나님 심부름 하기 힘들다며 엄살을 떠는 년은 주면서도 신나했다.

맨날 남이 얻어다주는 샘플 쓰지 말고 정품 한 번 써보란다.

이제껏 만져보지도 못했던 뭐라나, 무슨 나이트크림(그것도 영양크림의 일종이라고 완전 무식한 나에게 자분자분 설명도 해주었다)과 젤 영양크림이었는데 바르는 감촉이 장난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 나로서는 대형마트에서 파는 큼직한 덕용 크림이 훨씬 필요했지만 주는 것이니 주는대로 받을 수밖에. 그래도 속으로는 생각했다. 분명 이 크림 한 통 값이면 마트에서 파는 크림 다섯 통은 너끈히 살텐데...아쉬웠다....

 

그렇게 오늘.

오후 느지막히 다시 이비인후과에 들렀다. 또 다시 지루하게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이. 비. 인후. 모두 의사의 손을 봐야 했다. 그러구러 잠깐 틈을 내어 들린 또 한 년의 집. 그 맛있는 더치커피를 살곰살곰 마시면서 년의 하소연을 삼십 분 넘게 들어주었다. 착하기도 하징~~^^

그런데 약봉지 하나 달랑 들고 일어서는 나를 년이 불러세운다. 여기 뒤지고 저기 뒤지면서 년이 하는 말. 뭐, 또 줄거 없나....? 그렇게 해서 년이 알뜰하게 챙겨준 협찬품이란.

택배로 주문한 호박 고구마 한 보따리, 싱싱하고 앙징맞은 귤 한 보따리, 하다못해 식탁에 놓여있던 바나나 무더기까지 아낌없이 반으로 뚝 잘라 넣어주면서 년이 하는 말.

너, 이런 거, 절대 안사잖아?

ㅋㅋ 그렇긴 하지. 우리 형편에 그런 건 사치품이걸랑~

보따리를 들어보니 팔이 축 늘어질 정도로 완전 무거웠다.

 

집으로 돌아와 낑낑거리며 들고온 협찬품을 남편 앞에 펼쳐보이면서 입이 찢어지도록 좋아하는데 띵동.

친구 부부가 들이닥쳤다. 차를 가져왔으므로 오늘 우리집은 잠시 카페가 될 조짐이 보였다. 그런데 친구의 손에 들려진 것은...? 내가 좋아하는 모카 롤 케이크, 남편이 좋아하는 단팥빵, 그리고 나의 주식임을 알고 챙겨온 부드러운 우유식빵 한 봉다리...  

 

얼마 전, 교회에서 만난 선배언니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가 말이야, 언니...요즘은 완전 협찬품으로 산다니깐... 그니까니... 목사급은 아니어도 전도사급 정도는 되는 것 같아.....^^;;

여기저기 쌓여있는 협찬품들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년들에게 한마디 했다.

하나님 심부름 하느라 힘들었것다, 이것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