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 대심방을 받았다.
심방을 '받는다'는 습관적인 말을 아무 생각없이 적으면서 보니 새삼 궁금해진다.
누가 언제 무슨 이유로 그렇게 표현하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째서 받는다는 표현을 쓰게 되었을까? '받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어쩐지 그것이 복 '받는다'에서의 '받는다'와의 뉘앙스와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여튼 5년만에 우리집에 목회자가 오신 것이다.
(2008년 4월 담임목사님이 새로 부임한 이후부터만 계산해서 5년이지만 그 전에 언제 오셨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교인 수가 천명이 훨 넘어가면 공사다망하셔서 교인들 집에 오시기도 너무 바쁜 모양이었다.
원래 심방에 대하여 그다지 호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터라, 어렸을 때 학교에서 시행했던 가정방문과 비슷한 것 같아서, 별 의미는 두지 않았지만 모처럼 목회자가 정식으로 집을 방문한다고 하니 감사한 마음으로 '받기로'했다.
교회에서 25킬로나 떨어진 곳에 사는 우리집은 남의 속회 심방 끄트머리에 달려서 제일 나중에 심방을 '받기로'했다.
그날 따라 대낮 점심 번개가 서울하고도 중심부인 시청 근처에서 있었고, 어찌어찌 마포 근처까지 가게 되었고
지하철을 거꾸로 타는 바람에 예상과는 전혀 다른 코스로 외곽을 빙빙 돌면서 겨우겨우 집에 도착했다.
헉헉.
다행히 심방이 늦어지는 모양이어서 다섯시가 지나서야 겨우 연락이 왔다.
-지금 떠납니다~
나는 차를 준비할까 하다가 그만두고 사과와 배를 깎았다. 반갑게 드실 것 같지는 않지만 과일 한 쪽이라도 들어야 이야기를 한 마디라도 더 할 시간이 있을 것 같아서였다.
심방에 대한 나의 추억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추억으로만 떠올려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거의 20여년 간 속회 인도자(감리교에서는 매주 금요일마다 구역 모임을 가지고 집집마다 순회하면서 예배와 친교를 나누는데 그 예배에서 말씀을 인도하는 인간을 속회 인도자라고 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명칭이 하도 많이 바뀌어서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다)를 하면서 얼마나 많은 대심방을 받았겠는가. 얼마나 많은 심방을 다녔겠는가. 그러니 느낀 점도 한 두가지가 아니고 열받은 적도 물론 한 두번이 아니고 은혜받은 적은 물론 그보다 훨씬 많다. 그 장구한 역사에 숨겨진 일화들을 일일이 꺼내려면 며칠은 걸릴 것이 분명하므로 다음으로 미룬다.
눈 빠지게 기다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하는 생각이 들어 피아노 뚜껑을 열고 가스펠을 고르는데 눈에 들어오는 찬양이 있었다.
축복송.
때로는 너의 앞에 어려움과 아픔 있지만...
좋구나, 좋아 하면서 두어 번을 거푸 치면서 가사를 따라 불렀다. 심방 받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느낌?^^
벨을 누르는 번거로움을 덜어주고자 문을 살짝 열어두려고 나가는데 계단으로 올라오시는 목사님 일행이 보인다.
어서 옵소서~
모처럼 방문한 내왕객은 목사님, 우리 구역 전도사님, 그리고 몇 개의 속을 합해 지역이라고 하는데 그 대빵인 지역장님, 이렇게 세 분이었다.
찬송가를 고르는데 문득 펼쳐진 곳이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 하시니, 였다. 딱 좋은 찬송가다!
-기도제목은요?
목사님의 질문에 나는 구역장님에게 눈짓을 했다.
며칠 전 구역장님으로부터 문자가 왔었다.
-권사니임~ 대심방때 함께 나눌 기도제목을 미리 알려주세요. 목사님 명령임다.
기도제목이라... 기도할 거리가 어디 한 두 가지여야 말이지...
나는 남편과 마주앉아 진지하게 논의를 했다. 어느 것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지, 너무 많은 숙제 문제들을 끌어안고 고민했다.
결론.
이 모든 난관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만 굳건히 가진다면 하나도 문제될 것이 없는 문제이다. 그러므로 기도제목은
모든 어려움을 이길 믿음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로 정했다.
그리하여 정성스레 문자를 보내드렸던 것이다.
구역장님이 내 문자를 보고 받아쓴 작은 쪽지를 목사님 앞에 내밀었다.
자세한 내용은 없이 두루뭉수리한 기도제목을 보신 목사님이 조금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내가 속으로 말했다. 하나님께 직빵으로 기도를 올려드린지 한참 되었나이다.... 목사님이 기도해주면 뭐가 더 나은가요?
이 생각은 절대 목사님의 기도제목 요청을 비난하거나 우습게 여기는 것이 아니다.
(그 이유를 진지하게 열거하고 싶은데 사사로운 일 때문에 자리를 떠야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생각이 집중되지 않아 이유를 쓰지 못하겠다)
목사님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매우 진실된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보기 좋았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힘드시겠다'는 안쓰러움?
'하나님의 손'이라는 제목으로 물위를 걷는 베드로 말씀으로 심방 예배를 드렸는데 무릎을 꿇고 앉아 아멘으로 받았다.
일부러 무릎을 꿇은 것은 아니었고, 예의바른 나의 앉는 자세가 원래 무릎 꿇는 자세이다. 경건해 보여저 모두들 놀랜다. 어머나? 저렇게 조신하다니... 하는 표정으로 새삼 나를 훑어보는 눈초리를 한 두번 받아본 것이 아니다...ㅋㅋ
심방 오신 목사님의 설교를 여러번 들었지만 유난히 진실되게 들려왔다. 하나님의 은혜로다^^
안수기도도 해주시고(목사님이 자청하셨는데 대심방 받으면서 안수기도받기는 또 처음이었다. 나는 원래 안수기도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좋았다. 하나님이 나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럼 못쓴다, 인지, 그래 수고 많았느니라, 인지는 모르겠지만.
(아... 뭐 그리 잔일이 많은지 이 글 쓰는데 벌써 세번이나 일어서야했다. 쓸 맛이 안나지만 마무리는 해야겠지?^^;;)
참 이상한 것은...안수기도를 받으면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목사님은 맨날 심방 다니면서 남을 축복해주는데 목사님은 누가 축복해주나... 내가 축복송을 피아노로 쳐드리면서 목사님을 축복해야것다....> 글쎄 모르겠다. 평신도가 목회자를 축복할 권리가 있는지 어떤지. 하여튼 내 마음은 그랬다는 말이다.
사과 한 쪽 먹으면서 목사님께 말했다.
-목사님. 목사님은 맨날 심방하시면서 남을 축복해주시는데 이번에는 축복을 받으세요. 제가 목사님을 위하여 축복송을 연주(ㅋㅋ)해 드리고 싶어요...
하여튼 그런 비슷한 말을 하니 목사님 눈이 둥그레졌다.
나는 피아노 앞으로 가서 턱 하니 가스펠 책을 펼쳐놓고, 축복송을 정성을 다하여 연주해드렸다. ㅋㅋ
목사님 말씀.
이제껏 많은 심방을 했지만 목사님을 위하여 축복해 주는 분은 처음이라고라....
매우 감동받으신 눈치였다. 하여튼 내 마음이니까니...
그렇게 대심방을 받고 나니 마음이 급좋아졌다. 숙제를 끝낸 기분이기도 하고, 새삼 목회자들의 노고에 마음이 가기도 하고....
착한 마음이 들었다는 말씀!!
심방 시간에 맞추어 오느라 길바닥에서 이리뛰고 저리뛰면서 마음이 번잡하긴 했지만 어쨌든 심방을 '받으니' 무슨 복이라도 '받은'기분이었다.
(뒷담화 하나 더 부언하자면...그다음날은 연합속회가 있어서 교회를 가서 예배를 드렸다. 근디....목사님께서 설교 앞머리에 어제밤 내가 축복송 쳐준 이야기를 언급하시는 게 아닌가벼? 그 잘난 내 이름까지 거론하면서 그런 적은 처음이었고 참 은혜를 받았다나, 뭐 그런 이야기를.... 설교 시간에....축복송의 가사까지 몇 구절 외워주면서(때로는 너의 앞에 어려움과 아픔 있지만... 내용도 정말 좋지요, 하시면서) 음.........그만 쓰자... 길게 쓰면 분위기가 영 이상해질 것 같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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