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12년 11월 29일(목)
<본문> 역대상 26장 1-32절 / 찬송 95장
22장부터 27장은 장차 솔로몬 시대에 건축될 성전을 바라보며 다윗이 미리부터 이를 위해 준비하는 내용입니다. 그 중에서 오늘 본문은 다윗 왕이 성전 봉사를 위한 레위 자손의 직무를 조직하고 위임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24-26장의 마지막 부분인데, 레위인 성전 문지기 24반들과 창고지기, 그리고 기타 주요 공직자의 임명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앞선 24장과 25장이 성전 안에서 봉사하는 레위인의 직무를 언급하였다면, 본문은 성전 밖에서 봉사하는 문지기와 창고지기, 그리고 공직자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레위 자손들의 직무를 세우는 일에 상세하게 신경을 썼던 이유는 그의 시대가 모세를 통하여 세워진 성막 제도를 계승하되 성막의 시대가 끝나고 새롭게 성전 시대가 열리는 시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성전 봉사자의 직무 분담을 매우 세밀하게 규정함으로써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나라임을 보다 확고히 보여주려 하였습니다.
먼저 본문의 1-12절에서는 성전문지기 24반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기록에 의하면 성전 문지기는 고라족속의 아삽의 자손 므셀레먀 계열에서 7반, 고라족속 그핫 가문의 오벧에돔 계열에서 7반, 오벧에돔의 아들 스마야의 계열이 6반, 므라리 자손 호사의 계열이 4반을 차지하였습니다. 다음으로 13-19절은 성전 문지기들의 담당구역을 제비뽑기를 통하여 공평하게 선정한 사실을 기록합니다. 그 기록에 의하면, 문지기는 성전의 동쪽에 여섯, 북쪽에 넷, 남쪽에 넷, 곳간에 둘, 서쪽 뜰 큰길에 넷, 뜰에 둘씩 배치되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12절은 1절부터 11절까지에서 소개한 문지기의 반들에서 언급된 인물들에 대해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들에 대해 ‘이상은 다 문지기의 반장으로서 그 형제처럼 직임을 얻어 여호와의 성전에서 섬기는 자들이라’라고 소개합니다. 그들이 그 형제처럼 직임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성경의 소개 속에서 우리는 그들이 맡은 ‘문지기의 일’이 이미 전장들에서 나타난 다른 레위인 형제들이 맡았던 성전 직임보다 결코 열등하거나 천한 일이 아니라 그것들과 동등한 직임이라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언뜻 생각해 보면, ‘문지기의 일’은 일반적인 세상의 시각에서 보면 전장들에서 언급했던 제사장 직분이나 찬송의 직분보다 덜 중요하고, 훨씬 보잘 것 없는 일로 여겨지기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전에서 만큼은 절대로 그렇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성전문지기로서의 그들의 직임은 다른 직임들과 마찬가지로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직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성전의 문을 지키는 일 역시 레위인들이 맡았던 다른 모든 일처럼 ‘하나님의 전에서 섬기는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직임이 귀하냐 그렇지 않느냐를 결정짓는 것은 ‘그 일이 어떤 일인가’가 아니라 그 일을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하여 하는가’입니다. 즉 일의 종류가 아니라 그 일의 목적이 그 직임의 가치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보기에 좋은 일이라고 해도 그 일이 순수하지 않은 목적으로 행해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가장 값어치가 없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보기에 값어치 없는 일 같아 보일 지라도 숭고한 목적을 위해, 고귀한 동기와 목적으로 행해지는 일이라면 그 일은 세상에서 고결하고 영광스러운 일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감당해야 하셨던 일은 죄인의 자리에 서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결코 존귀해 보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반대로 세상에서 가장 큰 비난과 부끄러움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일이었으며, 고통을 수치의 대상이 되는 십자가를 지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일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이었으며,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는 가장 고귀하고 숭고한 이이되었습니다.
직임을 존귀하게 만드는 것은 그 일의 종류가 아니라 그 일의 동기와 목적입니다. 성전 문지기들의 직무는 성전을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적 처소를 거룩하게 보존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24반으로 나누어진 문지기들이 성전에서 주로 감당해야 했던 역할은 밤낮으로 성전의 문들 지키며 성소의 뜰에 경배하러 오는 사람들을 인도하는 일과 성전에 들어올 자격이 없는 이방인들, 혹은 부정한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는 일이었습니다. 수많은 성전문지기들이 그 일을 기쁨으로 감당하였을 것입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일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그 일이 자신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소명임으로 알았기에 세상의 시각으로 비교하지 않고 하나님의 시각으로 자신과 자신의 일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했던 많은 영적인 사람들은 오히려 그 ‘성전 문지기 됨의 복’을 발견하고 그 자리로 나가가기를 사모하기도 하였음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84:10)
오늘 이 새벽,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직임이 어떠한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욕망의 장막을 추구하며 뛰어다닐 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성전문지기’의 복을 말씀 안에서 회복하는 복된 시간 되 길 소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나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 속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그 일이 비록 성전문지기처럼 중심의 일이 아닌 듯 해 보일 지라도 오히려 그 속에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깨달아 가며, 하나님을 그 어디에서 보다 더 깊이 경험하는 일이라면 믿음의 사람들이 성전문지기를 사모함 같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우리 삶의 현장 속에서 함께하시며 임해계시는 하나님을 기뻐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코람데오, 유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책가야 하는데...^^ (0) | 2013.11.18 |
---|---|
무뢰배 부시 (0) | 2013.09.15 |
교회 달력 40부 (0) | 2012.11.26 |
대심방을 '받았다' (0) | 2012.10.31 |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0) | 2012.0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