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돌아왔다
하나님께.
하나님. 지금 이곳까지 인도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입에 발린 말이 아니고요, 진심입니다.
지금 이곳은요, KBS FM을 들을 수 있고요, 누군가의 협찬품인 호도 알맹이를 우적우적 먹을 수 있고요, 또 누군가의 협찬품인 커피를 한 잔 타서 마실 수 있고요(지금 홀짝거리고 있습니다), 문을 꼭 닫고 글을 쓸 수 있는 나만의 방입니다. 이런 곳을 한 마디로 ‘천국’이라고 부른다네요. 저도 아멘, 합니다.
하루를 천국에서 보낼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진심어린 감사의 말씀 올려드립니다.
생각해 보니.
참 멀리도 돌아왔네요. 남들은 고속도로처럼 뚫린 길로 휘파람 불고 음악 들으며 에어컨 바람 짱짱한 세단으로 휙휙 잘도 달려가는데 저는 세단은커녕 이십 년 연식을 자랑하는 폐차 직전의 고물차 한 대 없이, 하나님이 주신 11호 자가용으로(너무 오래된 농담이라 썰렁하시죠?) 마냥 걸었더랬습니다.
걷기만 했을까요? 걸었던 시간보다는 엎어졌던 시간이 더 많은 것을 하나님도 아시고 계시잖아요. 얌전히 걸으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길목마다 버티고 계시다가 메롱, 하고 나타나셔서 제 발에 딴지를 딱 걸고 넘어뜨리신 것 저도 눈치는 채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심심하실 때마다 저에게 딴지 걸면 한 번도 그냥 피해가지 못하고 하나님의 예상대로 팍팍 넘어지니까 하나님 재미있으셨어요?
넘어지고 자빠지는 모습을 보고 몸개그 잘 한다고 손뼉 치지는 않으셨어요?
엎어질 때는 코가 왕창 깨지는 바람에 자존심도 상했고, 피를 보고(겨우 코피 나부랭이를 보고) 죽을까봐 겁이 나 으악 비명도 질렀고, 덕택에 뭉개진 코만큼 낮아진 마음으로 피는 똑같은 피지만 결코 비교할 수 없는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되새김질하기고 했고요, 뒤로 자빠졌을 때는 뇌진탕에 약간 못 미치는 상처를 입는 바람에 공식적으로 병원에 드러눕지도 못하고 압박 붕대로 머리통을 대강 감고 그렇게 걸었습니다. 참 고달팠어요, 하나님.
다리도 매우 아팠고 여기저기 물집도 생겼고, 모세가 인도한 40년 광야와는 다르게 옷도 헤져 너덜너덜해졌고 신발도 다 닳아버려 뒤축도 없이 질질 끌고 다녀야 했습니다. 그래도 만나와 메추라기는 주셔서 통통 볼살, 퉁퉁 뱃살을 줄여보려고 굶어본 적은 있지만 먹을 양식이 없어서 굶은 적은 없으니 그것도 참 감사할 일이네요.
근데요, 남들은 씽씽 고 하는데 저는 차도 없이. 게다가 아브라함처럼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정처 없이 길을 가려니 얼마나 막막하던지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뭔가 비전을 확실하게 보여주시면 그 맛으로 힘을 내어 갈 텐데 아무 것도 보여주시지도 않으시고 무작정 엉덩이를 힘껏 후려치면서 ‘가라!’ 명령만 하시면 제가 어떻게 하나님의 깊은 뜻을 헤아린답니까. 하나님은 저의 믿음의 용량을 잘못 계산하신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은 착오가 없으시다고 성경에 있지만 성경에도 세심하게 살펴보면 약간의 뻥이 있다는 것은 알거든요.
실은 하나님 고백은 해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비전을 확실하게 보여주셨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뺀질거리면서 딴청을 하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지시하는 곳으로 가지 않을까 했을 것이라고요. 저의 완악하고 교만하고 어리석은 심성을 저도 알만큼은 압니다. 그냥 알기만 할 뿐인 것이 바로 문제이긴 하지만. 어쨌든.
가기 싫었습니다. 가기 싫어서 중간에 주저앉아 누군가가 협찬한 담배도 얻어 피우면서 고단한 몸을 쉬어가던 시간도 만만치 않게 많았습니다. ‘쉬어 간다’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 그다지 편치 않은 쉼이었기 때문입니다. 멍하니 턱을 괴고 앉아 여기가 대체 어디다냐, 지금 제대로 가고는 있는 것이냐, 하면서 보이지도 않고 대답도 하지 않는 하나님을 찾아 하늘도 쳐다보고 빡 세게 기도도 했지만 별 무소용이었던, 참 쓸쓸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정표 하나 없는 길에서 헤매기는 또 얼마나 헤맸게요! 갈림길이 나타날 때마다 손바닥에 침을 튀기면서 방향을 정하는 것도 어디 한두 번이어야지요. 나름 기도도 해보고, 나름 하나님이 주신 필도 받았으므로 눈앞의 길이 어쩐지 멀쩡해 보여서 아, 이 길인갑다, 하면서 힘을 내어 가다보면 비포장도로가 등장해서 삶의 먼지를 뽀얗게 날리면서 걷기도 다반사였고요, 그 비포장도로마저 끊어져 실눈을 뜨고 한참 바라보면 길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애매한 두어 갈래의 발자국 흔적을 놓고 고민하다가 에라, 하면서 되돌아가기도 했고요, 어느 때는 아예 길 아닌 곳도 헤매다 진창에 빠진 신발 한 짝 잃어버리고 절룩이며 걷기도 했고요, 가끔 누군가 길가에 버려둔 부서진 자전거에 의지해서 걷기도 했고요 때로는 작심하고 길이 아닌 곳을 내가 길을 내리라 하며 무모하게 길을 만들다가 가시덤불, 엉겅퀴에 긁혀 정강이에 온갖 상처만 잔뜩 만들고 다시 되돌아오기를 또 얼마나 했는지 하나님은 빤히 보고 계셨을 것입니다.
어쨌든 꽤나 파란만장하게 돌고 돌아 돌아왔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뜻이었는지 정말 맞대면해서 여쭙고 싶습니다만 뭐, 하나님이 제 앞에 떡하니 버티고 계시기만 하셨지 과묵하셔서 별 말씀 없는 것은 알고 있으므로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그동안 하나님 속 많이 썩혀드린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알고만 있습니다. 모르긴 해도 앞으로의 나날들 역시 초지일관 하나님 속을 썩혀드릴 것은 압니다.
그래도 하나님, 엎어지고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쓰러져도 하나님 앞으로 기어가는 저를 알아는 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시는 방법이 때로는 너무 가혹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야비하게 느껴지기도 해서 저를 속상하게 만들고 있지만 저 역시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은 압니다. 내가 너를 기어이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여 낼 것인즉 암말 말고 따라오너라!
맞지요?
저에게 이루어진 모든 일들이 다 하나님이 저를 사랑하시는 방법이었다는 것도 역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어리석고 못난데다가 악이 가득하여 조금 돌아가면 될 길을 지구 반 바퀴쯤 헛돌아 온 것 역시 압니다. 개나 주워갈 똥고집 때문에 마치 패잔병처럼 남루한 차림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왔지만 그래서 터득한 것도 꽤 있어요.
얻어터지면서 배운 것은 잘 잊어버리지 않잖아요.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과연 냄새나고 더러워 아무 소용없는 상한 갈대 같은 저를 어떻게 단련시켜 정금으로 만들어 주실까 하는 기대로 7월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가끔 글이 엇나가더라도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저의 네이키드한 삶 속에서 형형히 빛나는 당신의 존재를 찬양 드리려는 저의 중심을 받아주실 것을 믿으니까 잘 감안하셔서 저의 투정과 호소와 애교를 미소로 받아주실 줄로 믿습니다. 믿, 쑵니다!! 하고 떼를 써도 되겠지요, 나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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