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목에 스와로브스키 목걸이
왼쪽 손과 발이 부자유스러운 남편과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교회에 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라르고의 템포로 걷는 남편 옆에서 보조를 맞추려니 진땀이 날 지경이었다. 순식간에 기분이 변하는 성질머리를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혹시 교회가는 길에 무슨 시험에 들 일은 일어나지 않나 하여 조심, 또 조심하면서 동행했다.
개통 첫 날인 경전철을 타고 다시 지하철로 환승하고 그리고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로 이동하고 빈자리가 없는 전철을 그냥 통과시키고 겨우 자리에 앉았다. 남편의 팔을 꼭 끼고 앉아 초코파이를 우적우적 먹었다.
예배 시간보다 무려 삼십 분이나 일찍 도착하여 늘 앉는 자리를 찾아가니 3부 예배 때만 만날 수 있는 어르신들이 반겨하셨다. 앉기도 전에 앞뒤 옆자리에 앉아계신 수많은 어르신들에게 넙죽 넙죽 절을 했다. 어르신들의 웃음이 참 순수하다고 생각했다. 나이 들수록 저렇게 해맑은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 할 텐데 칠순을 바라보는 우리 남편은 노인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예전 어느 목사님의 설교 중에 어른과 노인의 차이점을 말한 적이 있었다. 늙어서 자기만 아는 사람은 노인이고, 남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사람은 어른이라는 것이다. 그 잣대로 비추어 볼 때, 인사받기 좋아하고 아래 사람들에게 심통 부리는 것이 취미인 남편은 아무래도 노인에 가깝지 않은가 말이다. 언제 한 번 진중한 태도로 말해주고 싶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충고는 절대 사람을 변하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결국 그것 역시 기도로 풀어야 할 문제인 것이다.
오랜 만에 3부 예배에 가니 그 맛이 새로웠다. 팀파니까지 동원된 오케스트라의 웅장함도 멋졌고, 성가대석이 비좁을 정도로 가득 찬 성가대원들의 정성 어린 찬양도 은혜로웠고, 모처럼 말씀을 전하시는 원로 목사님의 말씀도 감동스러웠다.
신앙은 모험이라는 말씀. 되돌려 살 수 없는 인생에게 어떻게 될지 모르고 오직 예수만 쫓아 살아가는 삶은 모험이라는 말씀을 귀담아 들었다. 아멘 따블이었다.
예배 후 남편은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인사를 주고받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몸이 불편한 것을 아는 많은 분들이 진심으로 반가워해주는 모습이 참 고마웠다. 나도 이제부터는 좀 더 친절하게 사람들에게 다가가 안부를 묻고 미소를 나누어야겠다는 결심이 솟았다. 이왕 3부 예배에 온 김에 지하에서 좀 놀다 가기로 했다.
예배가 끝나면 칼 같이 달려가 차의 시동을 걸곤 했던 아들과 함께 왔더라면 지하의 친교실에 들리지 못했을 텐데 아들 덕택(?)에 느긋하게 지하 홀로 향했다. 이럴 때 아들에게 고마워해야 할지 어떨지 헷갈렸다.
작년 망년회 때 만난 후 반 년이 지나 겨우 얼굴을 보게 된 새 신자 부부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덕담을 나누었다. 그러다가 목걸이 이야기가 나왔다.
이주일 째 내 목에 걸려있는 목걸이는 언니가 잃어버린 것이었다. 뉴욕에 사는 언니가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샀다는데 딱 내 취향이어서 내심 부러워했던 그 목걸이는 어느 순간 언니가 잃어버렸다. 어디서 잃어버렸는지도 모르는 채 언니는 아쉬워하면서 그냥 출국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목걸이를 남편이 내방 구석에서 찾아낸 것이다.
내가 한 달 동안 문원에 가서 집필하는 동안 심심하던 남편은 방을 바꾸었다. 안방을 아들 방으로 만들고 내방은 아들 방으로 이전하고 내방은 침실로 만든 것이다. 그렇게 방안의 가구들을 이리저리 옮기는 과정에서 콘솔 틈에 박혀있던 목걸이를 주운 남편은 나에게 선물(?)했다.
아, 앙증맞은 십자가까지 달린 그 아름다운 목걸이가 내 손에 들어오다니!
“이게...비행기 안에서 면세로 산 거 라는데, 하여튼 좋은 것 같아요. 어때요, 무지하게 이쁘죠?”
목걸이의 습득 과정을 마이크로 묘사기법으로 설명하던 나에게 누군가 물었다.
“메이커가 뭔데?”
“메이커? 글쎄...”
내가 목걸이 메이커를 어떻게 안단 말인가. 그냥 목걸이는 목걸이인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은 십자가 모양이 너무 아름답다는 것, Y 자 형 은색 줄이 세련되어 보인다는 것?
“모르겠는데?”
옆에 앉아있던 친구가 길게 늘어진 내 목걸이를 확 잡아 당겨 십자가 뒷면을 보았다.
“스와로브스키.”
“뭐?”
“그거 스와로브스키 목걸이야.”
어디서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전혀 생소하지는 않은 이름의 메이커 목걸이를 나는 모르고 있었다. 친구가 했던 대로 나도 십자가를 뒤집어 보았다. 이상한 마크가 그려져 있었지만 그것이 스와로브스키의 표식인지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말이다.
상당히 잘 살고 계시는 아리따운 빠리지엔느 스타일의 사모님이 말했다.
“그거 괜찮은 거예요. 이 안경도 스와로브스키죠.”
히야. 사장님 사모님이 살 정도라면 꽤나 좋은 것인가 보다....
“으이그... 그런 걸 보고 돼지 목에 진주라고 하는 거다.” 남편의 말이었다.
옆에서 웃던 누군가 거들었다.
“아니지요, 돼지 목에 스와로브스키지요!”
귀금속이 몇 상자나 있는 언니는 이 목걸이 하나 잃어버렸다고 해서 천지가 무너지지 않겠지만, 귀금속이라고는 팥알만한 블루 사파이어가 박힌 결혼반지가 유일무이한 나로서는 정말 귀한 목걸이었다. 나를 위해 본의 아니게 떨구어 놓고 간 언니에게 전화 오면 내가 잘 간직하고 있다고 꼭 말해주어야겠다.
목걸이 덕택에 졸지에 돼지가 되어버렸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하나님, 뭐시냐, 아, 그 스, 스와, 스와로브스키 목걸이를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꿀꿀거리는 나의 감사기도를 잘 알아 들으셨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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