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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람데오, 유다

이상한 듀오 백 의자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2. 7. 3.

 

이상한 듀오 백 의자

 

한 달 동안 문원에 있을 때 내 방에는 아주 커다란 책상과 의자가 있었다.

네 평은 넘을 것 같은 넓고 휑한 3호실 방에 오직 그것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딴 짓 하지 말고 열심히 글이나 쓰라는 무언의 압력?

제법 크기는 했지만 매우 낡은 책상은 그 방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녀갔는가를 말해주고 있었는데 밑창이 한 뼘쯤 구멍이 난 서랍도 있었고, 열 때마다 몇 번씩 흔들어야 겨우 열리는 서랍도 있었다.

나는 그 서랍 속에 거의 모든 것을 다 집어넣었다.

펜과 노트는 물론이고 초콜릿이나 쿠키 캔디 같은 간식거리, 손수건과 속옷, 커피 잔과 허브, 손톱깎이까지 넣었다. 그러니까 책상 서랍은 자질구레한 나의 소유물 거의가 들어가 있는 셈이었다.

낡은 서랍을 열면 기분이 좀 이상해졌다. 아주 작은 나의 집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인지 어느 날인가 필통만큼 작아진 내가 손수건을 덮고 서랍 속에서 자고 있는 꿈까지 꾸었다.

 

짙은 청색의 의자는 듀오 백이었다.

앉아보니 느낌이 괜찮았다. 책상에 턱을 괴고 벽 한 면을 거의 차지하는 커다란 창문으로 보이는 초록의 자연을 한참 바라보았다. 인위적인 것은 없는 자연 그대로의 풍경이었다. 조용히 앉아 있으니 새 소리도 들려왔다.

3호실 여자가 된 나는 그 안에서 거의 모든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잠을 자고 생각하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글을 쓰고 호도식빵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하고, 기도하고 생각했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 종일 그 누구와 대화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는 얼마나 매력적이던가! 나의 자유를 속박하는 것은 어느 것도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세상의 모든 고리를 끊고 내 자신과 독대하기에 아주 좋은 공간이었던 것이다.

 

첫날 짐을 부려놓고 생각했다. 바로 이곳이 내가 바라던 천국이로구나.

휴대폰을 벽장 속에 던져놓고 나는 만세를 불렀다. 사람들로부터 벗어났다는 것이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한 달 동안 완벽한 고독 속에 빠져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차올랐다. 거울도 없고 시계도 없고 가족도 없는 공간에서 말이다.

늘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기도하고 새벽 예배드리고 주부의 가장 중요한 미션인 식사를 챙겨주고 크고 작은 스케줄에 따라 외출하고 골머리를 쓰며 가계부를 쓰고, 통장과 지갑의 잔액과 생활비의 간극을 메우기 위하여 신경을 곤두세우고, 각종 지인들의 전화나 메일, 약속 때문에 종종걸음을 치는 일은 이곳에 없었다.

방 밖으로 나서도 행동반경은 매우 좁았다.

 방에서 겨우 몇 걸음 떨어진 식당으로 가거나 며칠에 한 번씩 공동 세탁실로 가서 세탁기를 돌리거나 문원을 나서면 자질구레한 생필품을 사기 위해 편의점을 가거나 산책을 하는 정도?

한 달 동안 3호방에서 살면서 느낀 점들은 다른 지면을 통해 밝힐 예정이므로 이곳에 긴 말은 할 필요는 없겠다.

하지만 결론을 말한다면, 그곳은, 천국이 아니었다.

 

그곳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진 중 후반 무렵이 되었을 때, 나는 듀오 백 의자가 매우 불편하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의자의 등받이가 문제였다.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앉으면 희미하게 통증이 느껴졌다. 등뼈가 등받이의 갈라진 부분과 닿을 때마다 통증이 왔으므로 어느 날 마음먹고 의자의 등받이를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이유는 금세 밝혀졌다. 아코디언처럼 접혀진 부분이 아주 조금 돌출되어 있었다. 그 돌출 부분에 등뼈가 닿으면서 통증이 유발되는 것이었다. 아마 오랜 시간 의자를 사용하여 접혀진 부분이 느슨해져서 앞으로 튀어나온 모양이었다.

식사 시간에 문원 식구들에게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식당 의자와 교체하라는 조언이었다.

튼실하게 생긴 크고 널찍한 나무 의자를 낑낑거리고 내 방으로 옮겨 앉아보았다. 완벽하게 좋았다.

의자 위에 쪼그리고 앉은 습관이 있는 나에게는 두 발을 올려놓고 있을 만큼 큰 식당 의자가 제격이었다.

 

이제는 쓸모없이 되어버린 듀오 백 의자를 다시 낑낑거리면서 휴게실로 가지고 내려갔다.

그동안 나의 의자가 되어준 것은 고맙지만 책상 하나에 두 개의 의자가 있을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휴게실에서 쉬고 있는 작가들에게 나의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등이 너무 아팠어요, 여기 보세요 이렇게 튀어나왔잖아요, 이거 완전 낡아버려서 이젠 아무도 사용하지 못할 거예요 등등.

진작 식당 의자로 교체할 걸 그랬어요. 이 의자는 이젠 필요 없으니 어디 창고에다 치우시던지...”

그 때 작가 한 분이 휴게실로 들어오다가 내가 버린 듀오 백 의자를 보고 반색을 했다.

이 의자 내가 가져가도 될까요? 내 의자는 강의실 의자라 영 불편해서요.”

같이 있던 작가들이 서로 눈짓을 했다. 아무도 그 의자의 불편함에 대해 말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나에게 내침을 당한 듀오 백 의자는 그렇게 해서 다른 작가에게 기쁨을 선사했다.

 

며칠 후 나의 의자를 즐겁게 수거해 간 작가에게 물었다.

그 의자 앉아보니 어떻던가요?”

아주 편하고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작가는 싱글벙글하면서 좋은 글이 써질 것 같다며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내가 문원을 나올 때까지 새로운 의자 주인은 의자에 대한 컴플레인이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통증만 선사했던 불편한 의자가 누군가에게는 좋은 글을 쓰게 만들기도 한다. 휴게실에서 공범이 된 작가들과 나중에 추론을 해보니 이런 결론이 나왔다.

나는 여자인데다가 몸집이 작고 등가죽이 얇아 의자의 돌출 부분과 심각하게 맞부딪치는 바람에 통증을 유발했지만 그 작가는 남자이고 몸집도 나보다는 훨씬 튼실한데다가 등가죽(?)도 나보다는 푸근하여 의자의 돌출 부분과 닿아도 쿠션 역할을 하는 바람에 안락함만 느낀다는 것이었다. 딴은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세상의 모든 상황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는 것.

어느 특정한 장소가 천국인 것이 아니라는 것.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사는 지금 이 자리가 바로 천국이라는 것. 천국으로 만들어야 할 의무가 나에게 있다는 것.

천국이 아닌 곳에서 천국으로 가려고 그토록 열망했던 지난날의 내가 무색해졌다.

짐작과 다른 일들이 세상에는 너무도 많다.

문득 찬송가 한 구절이 떠올랐다.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주님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이 세상에서의 도피가 아니라 바로 이 세상에서, 내가 처한 그 자리에서 천국을 만드는 것이었다.

언제 어디서든 주님과 동행하면서 나를 친구 삼은 예수와 함께 하면서 주님과 서로 주고받은 기쁨을 누리면서 살면 그곳이 바로 천국이 아니던가!

그것을 나는 천국이라고 생각한 문원에서 절감했다.

내가 변하면 세상도 천국으로 변하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바꾸려 하지 말고 나의 마음을 바꾸면 천국이 되는 것이다.

 

다음에 나의 인생에 또 그런 듀오 백 의자가 생긴다면 그 때는 푹신한 쿠션 하나를 등에 받쳐 놓을 것이다.

낑낑거리면서 힘들게 의자를 들고 가서 굳이 바꾸지 않아도 나의 생각과 마음과 형편을 바꾸어버리면 끔찍하게 느껴지고 고통만 가득하다고 느꼈던 이 세상이, 나를 둘러싼 모든 조건과 환경이, 때로는 나를 힘들게 하는 가족마저도 사랑으로 끌어안을 수 있게 되어 살만하게 되는 것이라는 것.

그러니까 앞으로는 의자를 바꾸려 하지 않고 나를 바꾸라는 것. 그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교훈이고 지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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