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들어진 장로취임 예배
얼마 전 우리 교회에서 장로취임 감사예배가 있었다. 장로취임 예배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 멋지다는 것이다. 일테면 결혼식이나 장례식장처럼 일렬로 늘어선 대형 꽃다발들, 취임식에 걸맞게 호화로운 단상의 꽃장식, 말끔하게 단장하고 앉아계시는 하객과 교인들, 오케스트라와 수십 명의 단원으로 이루어진 연합 찬양대의 격조 높은 찬양, 예배 후 나누어주는 취임장로의 이름이 새겨진 답례품과 하객들과 교인들을 대접하기 위한 출장 부페...
이번에 장립된 장로들은 대개 내 나이또래였다. 다섯 명의 장로 중 나와 동갑이 세 명이나 되었으니 이제 나도 교회의 중심부의 연령대가 된 모양이었다. 하긴 나도 권사 아닌가!
멋진 팸플릿에 적혀있는 식순에 따라 감사예배는 진행되었는데, 높으신 분들의 치하, 축하사, 격려의 말들은 판에 박힌 것처럼 비슷했고, 가슴에 꽃을 꽂고 한복을 차려입은 사모님들과 나란히 서서 인사를 하거나 받는 신참 장로님들의 모습은 참 멋져 보였다. 교회 측에서는 관례대로 양복 한 벌씩을 해주었다고 하고, 장로들은 교회 측에 수양관 건축 헌금을 상당부분 책임져 주셨다고 하는데 헌금 액수는 밝히지 않았지만 짐작은 되었다. 떠도는 소문이 내 귀까지 흘러왔으니까. 선배 장로들이 교회 로고가 새겨진 금배지를 달아주고, 각 기관에서 꽃다발과 축하금을 전달해주고, 교회학교 어린이들도 단체로 동원되어 꽃다발을 증정하는 순서도 있었다. 모범 근속 표창이나 대통령 표창식 같은 분위기였다고 말하면 너무 실례가 되려나...?
너무 으리뻑적지근한 취임예배를 보고 있는 내내 왜 나는 닭살이 자꾸 돋았던 것일까? 이제부터 십자가를 지고 가시라고 담임 목사님이 장로들에게 나무 십자가를 하나씩 증정해 주셨는데, 의미는 깊었지만, 그 헌신이, 순종이 하나님, 예수님께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CEO로 향하는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것은 아마도 내 마음이 많이 꼬여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팸플릿 뒷면에 소개되어 있는 장로들의 현재 약력을 보니 과연 장로 감들이었다. 내노라하는 높은 지위에 있는 분들이니 하나님의 일꾼으로 뽑아도 손색이 없으렷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장로가 된 분들은 모두 나와 어릴 때부터 같이 신앙생활을 해온 분들로서 그들의 하나님과 교회에 대한 헌신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가슴을 열고 축하해 주어야 했고 또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고, 진심으로 기도해 주었다. 교회에서의 직분이라는 것이 하나 둘이 아니어서 주일은 물론 법정 공휴일이면 빼놓지 않고 행사를 만드는 교회에 순종하느라 인생의 가장 많은 시간을 교회를 위하여, 교회에서, 교회로 엮인 여러 인간관계를 위하여, 교회에서 주관하는 각종 행사를 위하여 바친 것을 백번 인정하고 인정한다.
주일 새벽에 나와도 앉아 있고, 오후 예배에 나와도 앉아 있고, 각종 회의에 나와도 앉아 있고, 체육대회에 나와도 앉아 있고, 부별 야외예배에 나와도 앉아 있는, 늘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이던가!
적어도 그분들은 내가 저녁에 문인들과 후미진 식당에서 위하여! 를 연발할 때도, 교회 철야 기도회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어느 날 오후, 해가 떨어지기 전부터 무늬만 문인인 인간들과 예술을 논하면서 달아오른 열기를 시야시(?) 잘 된 생맥주로 식히고 있을 때도 해외선교 파송 예배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것이다. 아, 정말 신실하신 분들이다!
하지만. 장로취임 감사예배라는, 하나님께 드리는 이 예배는 세상의 취임식과는 좀 달랐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신참 장로 사모들이 아침부터 미장원에 가서 머리모양을 만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참석한 하객이나 교인들이 예배 후 우르르 몰려가 뷔페 상에 코를 대고 있거나 줄을 서서 답례품을 받아가느라 북새통을 떠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순결하게, 좀 더 세상에 물들지 않는 방법은 없었던 것일까...
마음속으로는 여러 가지 잡스러운 생각에 잠겼지만 나로서도 뾰족한 대안은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남편과 함께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예배의 진행자로서 내가 말했다.
그분들의 수고와 고생과 헌신과 교회에 대한 지극한 사랑은 인정해야 하고, 인정한다. 우리는 그분들에게 절대 딴지 걸지 말고 존경심을 가지고 대해주고, 그들의 헌신을 우리도 본받아야 할 것이다...
그런 취지의 아주 착한 말씀으로 남편과 은혜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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