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기 그지없는 간증 하나^^
국민임대에 청약하고 36제곱미터의 집에서 다시 51제곱미터의 집으로 이사하는동안
아들은 여전히 내년 2월 철거예정인 1989년 준공된 주공아파트 36제곱미터에 살고 있다.
물론 나도 2년 넘게 아들이 살고 있는 바로 앞 동 아파트에서 살았다.
더 이상 어쩔 수 없으리만큼 낡고 퇴락한 아파트.
지난 여름 미얀마에 가려고(미얀마 선교가는데 대체 발톱이 왜 이뻐야 하는지^^;;) 우리 이쁜 하나에게 패티큐어를 부탁하기 위하여 거의 일년만에 아들집에 들렀다. 패티큐어 대금으로 우리 이쁜 하나에게는 말보로 레드 한 보루, 아들에게는 팔리아멘트 한 보루. 세상에나 9만원어치 담배를 사들고.
가서 보니, 끕끕한 냄새, 온전한 타일이 단 한개도 없이 바삭거리는 화장실, 문이 열리지 않는 베란다...
나도 한 3년 넘게 새 아파트에서 살다보니 이전에 살던 힘들었던 기억을 다 잊어버렸었다.
...가슴 아팠다.
더 가슴 아팠던 것은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도 없고 아들이 할 수 있는 것도 없다는 것이다.
아들의 소원은 그 아파트 재건축이 뒤로뒤로 미루어져서 오래오래 그곳에서 사는 것이었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25만원짜리 집은 아무리 허름한 곳이라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옆에서 보니 이사하려고 해도 이사비용도 없는 모양이었다. 저렇게 대책없는 것은 꼭 나를 닮았다...
올 4월 51제곱미터 국민임대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큰 방 한 칸 내주어서 아들과 살고 싶었으나
임대 규칙이 어떠한지 모르지만 동회 직원이 아리송한 대답을 하는 바람에 포기했다.
나만 하나님 자녀인가, 우리 아들도 하나님의 자녀인데 알아서 하시겠지. 이런 똥뱃장만 커졌다. ㅋ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더라, 이런 격언도 나에게 힘이 되어 주었다. ㅋ
그런데 올해 8월 미얀마 잘 다녀오고, 6, 7, 8 삼개월 넘게 110주년 찬양 하느라 행복행복외치면서 살았다. 9월, 마침내 가장 행복한 음악회도 끝났는데....
카카오친구가 된 LH 새소식이 떴다. 한달에 한 번 정도 보내주는 분양정보였다. 나는 이미 입주했기 때문에 필요없는 정보였지만 내 주변에 국민임대 가르쳐 줄 인간이 많아 끊지는 않았지만 올해 4월 입주후에는 한번도 보지 않고 넘어갔던 분양정보....를...
우연히
아무 생각없이
클릭해보게 되었다.
그래서 발견했다.
우리집에서 1킬로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개발하는 새로운 주택단지에 10년 임대리츠 아파트 공고를.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 공고를 보는 순간부터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 우리 아들이 이런 곳에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우리 아들은 주택청약적금 자체가 없어서 신청자격도 되지 않았다.
꼼꼼이 주택분양 정보를 훑어보았다. 첫분양이었고 꽤 많은 분량의 아파트였다. 그리고 분양사무소는 우리집 베란다에서 보일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걸어서 분양사무소에 갔다. 가서 물어보았다.
어느 날은 특별분양 또 어느 날은 1순위(주택청약부금 부은 사람) 그것도 안되면 그 다음날 2순위(그냥 19세 이상 무주택 세대주. 단 부모나 배우자가 집이 있으면 안된다는 단서가 있다) 그러므로 특별분양 끝나고 1순위 청약마감이 다 되지 않으면 그다음날 2순위 청약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요즘 핫하게 뜨는 곳인데 미분양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
나는 여러 분양 스타일을 보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혹시 2순위까지 차례가 돌아온다면 가장 사람들이 덜 찾을만한 평형은 어떤것일까하면서 찾았더니 있었다. 겨우 25가구 분양인 스타일.
나라도 떨어질까봐 쉽사리 청약을 넣기 힘들겠다 싶었다.
그래, 만약 2순위까지 순서가 돌아오면 아들에게 저 평형을 청약하라고 해야겠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이번은 연습을 하는 셈치고 이번달부터 과부 빚을 내서라도 우리 아들 주택청약부금은 넣어줘야지. 집은 못사줄망정 그거 일년 못 넣어줄까보냐!! (제법 어미다운 결심을 그제서야 함 ㅋ)
예배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갖은 감언이설로 아들을 꾀어 "딱 오분만 들렀다 가자'고 거의 애원하다시피하면서 분양사무소로 끌고 갔다.
아들은 어이없는 표정. 이런 아파트를 어떻게 들어가느냐고 또 현실성 없는 엄마가 꿈을 꾸시는군 하는 듯한.^^
내가 아들에게 말했다. 이런 제도가 있으니 꼭 이번에 뭐가 된다는 것은 아니고 이런 제도가 있다는 것 좀 알아두고 이번 달부터 엄마가 주택청약부금은 일년 부어줄테니 앞으로 이런 공고에 신경 좀 쓰면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아들은 귓등으로도 안듣는 눈치였다. 무슨 귀신 씨나락까먹는 소리를 하나 하는 표정.
그래도 엄마가 하도 조르니까 분양사무소 상담사에게 상담을 받고 핸드폰에 청약앱도 깔고 분양신청하는 방법도 배웠다.
(어휴 설명하려니까 너무 길군 ㅋㅋ)
어쨌든,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하나님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서(하나님은 나의 로또!)........이런 통지를.....받았다는 거.....!!
이렇게 되었다는.....!!!!
11월 21일일은 아들의 생일이었다. 서른 일곱살이나 된 아들은 우리집에 와서 엄마가 차려준 저녁 먹고 고스톱 쳐서 내 돈을 만오천원이나 따갔다. 우리이쁜 하나는 내 돈을 사천원 따갔다. 이런 불효막심한....^^
11월 22일, 바로 엊그제 아들은 분양사무소에 가서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금 860만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딱 맞아떨어지게 준비해주셨다. (아, 덕분에 천만원 넘는다고 좋아했던 우리집 총 재산은 500만원으로 떨어져버림....흑) 나는 마음속으로 아들에게 말했다. 엄마의 생일선물이란다, 아들아^^
2020년 1월 입주할 때까지 십원 하나 더 들어가지 않는다. 세상에 이런 은혜가 있나!
방이 세 개, 옷방까지 큼직하게 있고 드레스룸에다가 비데, 가스레인지까지 완전 구비된 최신 아파트이다. 앞으로 10년동안 (아들이 떼돈을 벌지 않는 한) 이사할 걱정 없이 살게 되었다.
아파트도 주셨으니 앞으로 들어가 살게도 해주시겠지 하는 똥뱃장이 또 생긴다.
아니면 말고요.... ^^;;
2년 후 입주할 동안 아들이 어디서 어떻게 살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것도 하나님이 알아서 해주시던지 마시던지 난 몰랑.
계약 하는데 아들이 늦게 온다고 해서 미리 가서 번호표 뽑고 한 시간 이십분을 기다렸다. 북새통인 분양사무소에서 아들을 기다리며 커피를 마시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 너무너무너무 감사해서.
별 표정이 없이 계약서 챙겨들고 오는 아들에게 물었다.
엄마인 나: 아들아 좋지 않아? 이런 상황은 매우 좋아해야 하는 거 알지? (어떻게 이런 대화를)
멋진 아들: 진짜 좋지~~(아들의 이 말 듣고 행복해 돌아가실 뻔) 친구들이 도대체 주택청약부금 하나 안 붓고 어떻게 아파트 당첨이 되었느냐고 놀라던데? (아들의 이말 듣고 또 좋아서 돌아가실 뻔. 구럼 이자식은 나한테는 그렇게 포커페이스더니만 친구들한테는 자랑질을 했는 모양이렷다? 좋기는 좋았나부다) 그래서 우리 엄마가 어떻게 한 모양인데 난 잘 모른다고 했엉 (이 자식아, 엄마가 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해주신거란 말이닷!)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요즘 대체 왜 그러신다요??? (도저히 알 수 없는 하나님 맘뽀)
또 비교차원에서 지난날 쓴 아들 이야기를 긁어서 올려놓기로 한다.
사실 나는 낙천주의자
2017년 3월 23일 이 블로그에 올린 글
아침에 일어나 불현듯 나의 생활비를 점검해보았다.
이쪽 은행통장에는 잔고가 8656원, 저쪽 은행통장에는 잔고가 2337원, 그리고 나의 지갑에는 28000원이 남아있다. (아아 지난 주일 저녁 고스톱판에서 거금 16600원이나 잃은 것이 데미지가 너무 컸다. 나야말로 노름으로 재산을 탕진하는 인간의 부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인생 끝날 거 같다)
그런데 한 은행에 25일 빠져나갈 인터넷 요금 34680원이 없으시다.
빵꾸 안나고 살 수 있었는데 어제 저녁 무너졌다.
한의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인데 남편이 전화를 했다.
"피조개 먹고 싶으다. 쥬스도 먹고 싶고...."
"옙!"
너무 이쁜 목소리로 보채기에 그만 껌벅 넘어가 집앞 수퍼에서 피조개랑 쥬스를 샀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늘 우리집에 목사님이 대심방을 오시는 바람에 손을 달달 떨면서 딸기 두팩과 오렌지 열개까지 샀으니! 딱 고만큼 돈이 빠져나가서 어떡하든 채워넣어야 한다.
고민고민.....
(어제 회당 5마넌짜리 알바 예정되어 있었는데 소설 다 못썼다고 수강생님이 일주일 미루는 바람에 현금이 씨가 말라간다)
하지만.
내 원두커피는 진작에 쫑쳤고, 남편의 인스탄트 맥심을 타먹으며 생각했다. 원래 월급날 며칠 전은 이렇게 살지 않나?
고개 끄덕끄덕.
어제는 걸어서 한의원에 가면서 딱 중간에 자리하고 있는 동사무소에 들렀다. 맞춤형복지라고 써있는 팻말 아래의 직원님들에게 다가갔다. 머뭇머뭇.
세 사람의 직원 중 가장 용모가 편안해 보이는 분 앞으로 가서 멀뚱하니 섰다.
"무슨 일이신가요?"
"아, 네...."
세수만 겨우 한 쌩얼에 남편 츄리닝 웃도리를 걸친 폼새로 (선글래스는 동사무소 입구에서 벗었다. 주거급여 받는 주제에 무슨 선글래스람? 하는 눈총 받기 싫어서) 그분들의 상식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물었다.
"제가요...주거급여를 받고 있거든요. 근데 이사를 할 것 같아서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럼 이사한 후에 월세 계약서를 가지고 오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근데 한 가지 더 여쭤보려고 하는데요."
(귀찮은 빛이 역력한 직원님)
"저기, 우리 아들이 요기 주공아파트에서 월세를 사는데 재개발 때문에 곧 철거한다고 해서 갈 데가 없는데요, 우리집에서 같이 살아도 되나요?"
(상담을 받던 직원님은 잘 모르는 듯 옆 직원에게 자문을 구하는데...)
"같이 살면 문제가 될 수도 있지요. 소득증명 이런 거 복잡하니까."
(다소 퉁명한 목소리의 옆 직원의 목소리는 다분히 주눅들게 하는 면이 없지 않았다.)
다시 짧게 몇 마디 덧붙이는데 직원의 말인즉슨, 문제의 소지가 없지 않다는 것. 말하자면 아들의 부양능력이 없어서 나라에서 돌봐주고 있는데 너네 아들까지 곁다리로 살려고 하니? 그런 의미도 포함된 듯 했다.
이사하려는 집은 면적이 커서 월세도 더 많이 내야하는데 문제가 생겨 주거급여 못받으면 대책이 안서므로 아들의 입주는 포기했다.
아무튼 직원의 아리송한 대답을 '안되는구나'하는 쪽으로 알아듣고 인사 잘 하고 동사무소 나왔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1. 아들은 어디로 이사할까
2. 난 해결해줄 수 없는 부분이니 포기하고.
3. 아들이 같이 살 수 없다니 안방은 완전 내차지가 되는군. 와우~~
사실 나는 낙천주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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