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문장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단단한 설교문도, 초등학생 수준같은 詩(미안하다, 황인찬)도, 앙리보스코의 이아생트의 한 구절도 다 나에게 감미롭다.
특히 이아생트의 어느 구절들은 힘들여 내 손으로 적어놓기까지 했다.
나는 거기에서 스스로를 잃었다
내 감각들은 마치 현(絃)들처럼 진동했다
이런 구절에 이르러서는 내 뺨에 한 줄기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그렇게 저녁을 보냈다. 어제의 일이다.
이아생트를 알게 해준 선생님께 감사의 문자를 드리고 싶었지만 용기부족으로 포기했다.
몇 번의 책버림의 순간에도 용케 살아남은 조연호의 시집 세 권을 찾아냈고 몇 장 뒤적여 보았다. 아름답다, 고 생각했다.
다음달 문우들과 함께 필사할 시는 조연호의 첫 시집 <죽음에 이르는 계절>를 내가 추천했고 그대로 통과되었다.
시를 적는 아침은 시에 젖는 저녁만큼 아스라하지만 종종 시가 내 마음 밖으로 뛰쳐나갈 때, 아니, 도저히 나의 마음을 건들이지 못할 때
잠시 절망하기도 한다. 그래도 그 시간은 소중하다.
지금은 치매에 걸려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는 분이 몇 년 전 주신 이태리제 무스탕을 잘 차려입고 외출 준비를 마친 후 무엇이 그렇게 그리운지
이곳을 찾아들었다. 나는, 글이 쓰고 싶은가보다. 무엇이든.
시간이 되었구나...이젠 집을 나설 시간이다.
책을 가방안에 넣었고, 작은 글을 적은 종이도 넣었다. 세 자루의 필기도구와 동전지갑....
나는 미소를 감추고 일어서야겠다.
오늘의 많은 시간을 글과, 책과 함께 할 생각을 하니 행복하다.
행복한 토요일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나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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