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도 다시 한 번
1968년의 어느 날, 종암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나는 영화촬영 현장에 있었다. ‘미워도 다시 한 번’ 이라는 영화였다. 우리 교회 아래 용두 맨션 자리가 바로 촬영소가 있던 곳이었다. 촬영소 스텝들의 온갖 구박을 받으면서 조무래기 틈에 쭈그리고 앉아 몇 시간을 구경했다. 멋진 소파에 앉아있는 전계현과 뭐가 화가 났는지 거실의 커다란 유리창을 주먹으로 내리치는 신영균을 보면서 나는 입을 딱 벌렸다. 멋지다! 그 시절 흥행대작이었던 그 영화는 미성년자 관람불가였기 때문에 보지 못했다. 그러므로 실제 영화에서 그 장면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친구들도 그 영화를 보지 못하기는 매한가지여서 내가 아무리 부풀려 이야기해도 그대로 믿었다. 신영균의 주먹이 피투성이였다는 둥, 유리파편이 하필이면 나에게까지 날아와 찔려 잠시 기절했다가 정신을 차렸다는 둥, 전계현이 안약도 넣지 않고 눈물을 줄줄 흘리더라는 둥. 나는 상상을 덧붙여서 영화 한 편을 완전히 따로 만들었다.
그렇게 수십 번을 매번 틀리게 말해주다 보니 어느 순간에 이르러서는 내가 본 것과 내가 꾸며 댄 것을 나조차도 구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모르긴 몰라도 그것이 나의 첫 번째 소설이 아니었을까. 어찌됐든 그 때부터 가슴에 새겨진 구절이 노래까지 대히트를 친 ‘미워도 다시 한 번’이다.
나는 종종 사람이 미워진다. 유행가는 괜히 만들어진 것은 아닌 것 같다. ‘미워 미워 미워’, 또는 ‘얄미운 사람’ 또는 ‘아, 미운 사람’ 등 셀 수 없이 많다. 그런 것을 보면 비단 나 뿐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이 속내에 깔린 미움 때문에 마음고생을 적잖이 하고 있는 것 같다. 참으로 이상한 일은 멀리 있는 사람 보다 오히려 내 곁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때때로 미워진다는 것이다.
하긴 내가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효리를 미워하거나, 권상우를 미워할 리가 없지 않은가. 평생 돈 벌어다 준 남편이 왜 가끔씩 미운지, 존재함만으로도 기쁨을 준다는 자식이 왜 시시때때로 얄미운지, 대소사에 만나는 친척이, 글 쓰는 동료가, 웃으며 함께 놀던 친구가 왜 미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모처럼 은혜 받고 잘해주려고 마음먹으면 꼭 그 시점에 맞추어 얼토당토 않는 것을 가지고 시비를 거는, 남편을 위시한 주위사람들을 뾰족한 눈으로 노려보노라면 꼭 떠오르는 구절, 미워도 다시 한 번. 그만큼 교회를 오래 다녔으면 성경구절이 퍼뜩 떠올라야하는데 어째 그런 게 떠오르는지...치밀어 오르는 울화를 진정시키면서 나는 고민했다.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는데 좀 더 참아야 하지 않을까.
교회 안에서도 마음으로 은근히 미워하는 사람이 없진 않았다. 십 몇 년 전에 나에게 삼 만원 꾸어가고 안 갚은 사람. 한 칠 년 전에 단 두 문장으로 나를 시험 들게 한 사람. 성적이 하한가를 치는 아들을 둔 내 앞에서 두 시간동안이나 자식자랑한 사람. 월례회하면서 언성이 높아져 서로 얼굴을 붉힌 사람. 주방에서 일 못한다고 지청구를 준 사람....
믿음의 진도가 매우 느린 나는 그 모든 서운함을 머릿속에 빡빡하게 저장해 놓고 절대 지우지 않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에게 삼 만원 꿔가고 안 갚은 사람은 후일 더 깊은 사랑과 배려로 나를 감동시켰고, 두 문장으로 시험 들게 한 사람에게 나는 몇 배로 강도 높은 독설로 되갚아주었으며, 자식 자랑에 열 올리던 사람은 늘 나를 격려하고 기도해주는 동역자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의 편협한 계산법은 절대로 플러스가 되지 않았다. 공개된 글이라 깊은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심도 있게 미운 사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미워도 다시 한 번’을 되 뇌이면서 억지로 미소 짓느라 보통 힘이 든 게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주일 아침이었다. 좀 일찍 와서 지하실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데 유치부실에서 아이들의 노래 소리가 들렸다. 병아리처럼 빽빽대는 고함 비슷한 노래 가운데 귀에 와서 박히는 구절이 있었다.
“예수님을 생각해서 화가 나도 꾹 참고.”
순간, 내 마음에 어떤 거대한 것이 쿵, 하고 자리 잡으면서 일종의 쇼크(!) 상태가 왔다. 한참동안 그 자리(지금의 가나 홀에서 본다면 차를 대접하는 곳쯤 될 것이다)에 멍하니 서 있었다. 딴 말이 필요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아무리 화가 나도, 기분이 나빠도, 싫어도, 미워도, 예수님을 생각해서 꾹 참으라는 말이었다. 그 다음부터는 이상하게도 참는 것이 조금은 쉬워졌다. 화가 나면 일단 눈앞에 아무것도 안보이고 아무 생각도 안 나고 끝없이 치솟아 오르는 화의 열기를 내 스스로도 감당할 수 없던 나였다.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끝없이 화만 나는 도다’ 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던 나였다. 그런데 유치부 아이들의 노래를 들은 이후부터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찬송가 204장)’, 의 상황으로 비교적 원활하게 전환되는 것이었다.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해서 어느 날 갑자기 미움이 사랑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해서 어느 날 갑자기 천사가 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느려터진 믿음의 행보를 가만히 지켜보시면서 끈질기게 인내하신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유난히 인내력이 부족했던 나는 상대방이 느리게 변하는 그 때를 기다려주지 못했다. 상대방이 잘해준 것은 새카맣게 잊어버리되, 서운한 것은 손톱만한 것도 절대 잊어버리지 않고 소처럼 되새김질을 했던 이전의 부끄러운 나의 모습이 있다.
새해가 밝았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로운 피조물이로다.
하지만 새해에만 새로운 피조물일가? 우리 그리스도인은 매 순간 새로운 피조물이 아닐까?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처럼 내 곁에 바싹 붙어 서서 나를 방황하게 하는 사람들도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있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사람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미움덩어리가 생기면 속으로 다짐한다. 미워도 다시 한 번! 그래도 뭔가 마땅찮은 점이 보이면 내 눈이 잘못되었거니, 하면서 안약을 바른다. 사랑이 담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분명한 사실은 누구든지 노력하면 가나 홀에서든 교회 앞마당에서든 아니면 부엌에서라도 헬퍼가 찾아오신다는 것!
뇌리에 저장되어 도저히 없어지지 않을 것 같은 상대방의 모든 결점을 지우고, 상처와 다툼과 미움을 지워버리고 그들을 바라본다. 그래 그래. 예수님을 생각해서 화가 나도 꾹 참고, 그리고 미워도 다시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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