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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신앙칼럼

교회에서 착한 척 하기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1. 6. 24.

교회에서 착한 척 하기

 

가끔 악몽을 꾼다. 꿈속에서 목사님이나 속도원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대학로의 후미진 까페에서 글동무들과 자정이 지난 것도 개의치 않고 목숨 걸고 떠들면서 노는 자리에 불현듯 목사님이 다가오신다.

“집사님. 예서 대체 뭐하시는 겁니까!”

만약 현실에서 마주쳤다면 목사님은 결코 아는 체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슬쩍 자리를 비껴가시면서 입가에 미소를 흘릴지언정. 꿈이니까 목사님은 조목조목 따지고 드신다. 선량하시고 순수하신 속도님들도 눈이 동그래지며 입을 쩍 벌린다. 어머나, 인도자니임!!

꿈에서 깨어나 여전히 벌렁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나는 고통당한다.

 

어느 날 속회예배를 드리고 정신없이 뛰어 스타디 모임에 갔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말했다. 어이고, 죄송스럽슴다. 오늘은 예배가 좀 길어져설랑.

열두 명의 회원과 저명하신 작가선생님이 모두 놀래 자빠졌다.

아니, 교회 다니세요? 정말 몰랐어.

교회 짬밥 33년차인 나는 곤욕스러움에 그 현란한 말솜씨는 접고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조그맣게 말했다. 그래두, 교회를 다녔기에 이 정도인줄 아시우.

 

그리스도인의 향기는커녕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교회 이면의 생활을 어쩌면 좋은가, 에 대해 그 사건 이후 몇 달은 착실하게 고민했다.

조신함과 예의바름과 너그러움에 완전 낙제점인 나는, 교회 다니기에 적합하지 않은 불같은 성격(불같은 성령이 아니고)과, 각박한 마음까지 보태져 있는 ‘돌짝밭’ 상황에서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교회에서만이라도 착한 척 하기.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나의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납 되기를 원하네-

주일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좋아하는 복음성가를 복창하면서 길을 나선다.

예배 전에 지하 로비에서 지극히 영양가 없는 수다에 열중하는 성도님들을 마음속으로 너그러이 이해하고 웃음을 보낸다. 동전 지갑을 털어 자판기 앞에 줄을 선 성도님에게 200원짜리 커피도 사드린다. 사 드리는 기쁨의 값은 이만 원쯤 된다.

대중기도를 맡으신 장로님의 한없이 길어지고, 삼천포로 빠지는 기도에도 절대 시험 들지 않는다. 2분이 넘어가고 너무도 주관적이신 기도문이라 아멘을 할 수 없을 때는 완악한 내 가슴을 치면서 반성한다.

사회를 맡으신 목사님의 모습이 심히 주위가 산만하여 자꾸 거슬리더라도 결코 정죄하지 않는다. 시야를 좁혀 설교자에게로 초점을 맞추고 말씀에 집중하도록 필사의 노력을 한다.

눈을 감고 명상의 수준을 넘어가려 하는 성가대원을 보아도 얼른 눈길을 돌린다.

헌금시간에 뒤늦게 부시럭거리면서 가방을 뒤지는 성도님을 보아도 웃음으로 넘어간다. 예배시간 중에 꼭 한번 이상 울리고야 마는 휴대폰의 임자에게도 너그러운 미소를 보내준다.

점점 길어지는 광고시간도 여유를 가지고 귀담아 듣는다. 어지러운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하여 슬쩍 페퍼민트 오일을 목뒤에 발라준다.

친목계와 진배없는 성도의 교제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근황을 주고받는다. ‘유비통신’과 ‘카더라 통신’이 섞여있는 소식들은 발 없이도 한 시간 안에 다 퍼진다. 입이 근질거리는 것을 참으려니 입가에 경련이 인다. 참아야 하느니라.

 

나는 기도한다. 하나님. 제가 사회에서도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받지 못하는데 교회에서만이라도 좀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되어야하지 않겠습니까!

착한 척이라도 열심히 하면 마음도 변화될지 누가 압니까.

제발 저의 강팍한 마음 좀 변화시켜 주셔서 다른 성도님들처럼 환하고 순수하게 웃게 좀 해주십시오.

 

예배가 끝나고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절름거리는 남편 권사님의 팔을 잡고 전철을 기다린다. 역시 오늘도 착한척하느라고 보통 곤욕이 아니었다.

구걸하는 노숙자 할머니에게 동전과 초콜릿 두 개를 주면서 히스기야처럼 기도한다. 하나님 나의 선행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음...... 약 오 분 후, 대차대조표를 밝힐 상황이 못 되는 것을 간파한 나는 다시 하나님께 말씀드린다.

인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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