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껸무 추는 권사님
지금 남편은 병원에서 입원가료중이다. 예상치 못한 병으로(병은 분명 여러 징조를 보여주며 이사야 못지않은 예언을 하지만 아둔한 인간은 절대 인식하지 못한다) 병원을 누비며 태껸무를 추고 있다.
오른쪽 뇌에 손가락 두 마디만한 뇌경색 부위가 생기는 바람에-그냥 쉽게 얘기하자면 중풍으로- 왼쪽 팔과 왼쪽 다리가 약간 건들거리는 이상한 형태로 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흡사 태껸무를 추는 듯 하기 때문이다.
남편은 왜 자신이 태껸무를 추게 되었는지 지금도 의아해하고, 자신의 춤추는 모습을 인정하지 않는다.
남편의 이름 뒤에 권사님을 꼭 붙여서 불러주는, 구별된 자들이 찾아올 때는 순한 양처럼 고개를 숙이고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반성합니다’하는 표정으로 다소곳이 앉아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나날이 리드미컬해지는 태껸무를 추면서 점점 지쳐가고 있다.
차마 아내인 나에게도 말을 못하지만 남편의 얼굴에는 이런 글씨가 아주 선명하게 써있다.
아니, 내가 왜, 이 나이에 원하지도 않는 태껸무를 추어야한단 말인가!
주옥같은 성경말씀을 발췌하여 전하려는 나의 시도는 남편의 은근짜한 거절 앞에서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곤 한다. 발병원인 찾기에만 몰두하느라 치료의지가 상대적으로 심히 약해진 것이다.
병은 남편이 났는데 혈압은 내가 오르고, 환자권사님이 투정부리다 잠이 들면, 간병인집사가 된 나는 성경책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혈압을 조절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부부환자가 되어버렸다.
두 세 개의 링거병을 달고 예의 그 태껸무를 추면서 병원 안을 무시로 방황하는 남편 뒤를 따라다니노라면 나의 뒷목이 뻣뻣해지면서 멀쩡했던 혈압이 급상승되어버리는 것을 종종 느낀다. 어쨌든 병원이라는 곳은 춤을 추기에는 적당한 장소가 아니므로.
멍청하니 남편의 태껸무를 관람하던 중 불현듯 어떤 책의 한 대목이 생각났다.
한때, 독서클럽에 일년 정도 다녔던 적이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정해진 책을 읽은 일고여덟 명의 사십 대 공주(공부하는 주부)들이 폼 나는 레스토랑의 룸 하나를 빌려 스프에 적신 빵도 먹고, 칼질도 하면서 책에 대하여 중구난방 떠들었던 시절이었다.
그때,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라는 베스트셀러를, 오로지 책의 두께가 얇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선정해 토론하게 되었다. 물론 당시의 나는 할말이 없었다. 그날 스파게티의 맛이 죽여줬다는 것 이외에는 특별하게 뇌리에 남아있는 구절도 없다.
아직도 그 책을 읽지 않으신 분을 위하여 내용을 조금 설명 드린다면 대강 이러하다. 루게릭 병에 걸려 죽음을 바로 앞에 둔 노 교수(모리)가 화요일마다 제자(미치)를 만나서 [인생의 의미]라는 주제로 인생에서 얻은 경험들을 강의했고 미치는 그것을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누군가 내게 그 책이 뭐가 그렇게 좋더냐하면 역시 우물쭈물하겠지만, 단언컨대 그 책을 읽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돌아보며 감사의 기도와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명료하게 떠오르는 한 대목은 현학적인 아뽀리즘이 아니었다.
모리가 병이 나기 전까지는
매주 수요일마다 하버드 스퀘어에 있는 교회에서 열리는 ‘무료 댄스 파티’가 갔다는 사실.
귀가 번쩍 뜨이는 단어가 줄줄이 있어 부득이 밑줄을 치게 되었다.
수요일과 교회와 무료 댄스파티의 절묘한 조화!
조명이 번쩍이고 스피커가 웅웅대는 소리사이로(교회에 분명 그런 시설이 있었다는 이야기!) 모리는 트위스트와 탱고등 어떤 춤이든 열광적으로 췼다는 것(교회 어르신들께서 춤의 도가니에 빠지는 것을 허용하셨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때 매우 행복해하고 즐거워했다는 것. 그 대목을 읽으면서 부러움과 시샘이 가득해진 나는 생각했다.
만일 우리 교회에서 매주 수요일 무료 댄스 파티가 열린다면...!
나는 읽던 책을 팽개치고 잠시 우리 교회의 내밀하고도 다양한 내부구조를 점검해보았다. 벌써 몇 군데의 유력한 후보지가 떠올랐다. 그렇지! 바로 거기가 적재적소야!
환갑이 된 나이에 배우지도 않은 태껸무를 온종일 추고 있는 남편 때문에 춤추는 모리가 생각났을 것이다. 모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모리는 아프기 전까지 춤을 추러갔었고, 남편은 아프고 난 후 춤을 출 수 있다는 것.
만약 우리 교회도 하버드 스퀘어에 있는 교회처럼 매주 수요일에 댄스파티가 열린다면?
점점 뒷목이 뻣뻣해져오는 나의 혈압도 조금은 내려갈 것 같고, 우리 남편은 절름거리는 스텝으로 태껸무를 멋들어지게 출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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