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으로 주일 교회에서 이상한 시간을 보냈다.
2부예배가 끝난 직후인 10시 40부터 3부 예배가 시작되기 직전인 11시 20분까지 목양실(교회의 담임목회자의 방이다. 내가 보기에는 교장실과 거의 흡사해 보인다)에서 담임목사님과 함께 하는 회의에 참석한 것이다.
말많은 변호사 장로님이 40분의 회의시간동안 30분쯤 이야기했다. 나머지 10분은 담임 목사님의 시작기도와 끝기도, 그리고 나를 제외한 나머지 두 분(한 분은 장로님, 또 한 분은 고전 박사님)이 말했고 나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얌전히, 가만히, 조용히, 말없이, 인형처럼, 무생물처럼, observer처럼 앉아있었다. 물론 나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 감상, 감성, 이미지등이 난무하고 있었기에 별로 지루할 틈이 없었다.
회의 내용이라 그렇다치고, 함께 하신 담임목사님의 행보에 관해서 말하고 싶다.
목사님은 2부 예배가 끝난 후, 로비에 서서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성도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시느라 5분에서 10분을 보내셨고, 2층의 목양실로 오르는 층계에서 단순 인사보다는 심도있는 지시, 부탁, 안부, 등으로 몇 사람과 조우하셨고, 마침 아프리카에서인지 잠시 다니러 온 교인 출신 선교사인가 하는 분의 내방(이렇게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다만)을 받고 목양실 입구에서 잠시 환담을 나누셨으며(앉아서 이야기할 시간이 없는 것을 선교사님도 충분히 이해하셨으리라), 목양실에서 우리보다 먼저 착석해 계시던 좀 높은 급의 장로님과 우리들(나를 비롯한 소위원회 위원 4명)이 들어서기 전까지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계셨으며, 우리와 회의 중간에 문밖에서 나라비 선, 각종 회의 건, 사연, 보고 등을 받기 위하여 두번 정도 자리를 비우셨으며 회의 내용이 하필 말도 많고 원칙주의자인 변호사 장로님의 주관하시는 바람에 황금같은 시간을 그닥 효율성있게 쓰지 못하는 상황을 직시하시고 매우 애가 타지만 견디는 듯한 표정으로, 절대 말을 끊지 않고 들어주시는 인내를 몸소 보여주시면서 흘낏 흘낏 시간을 확인하시다가, 드디어 3부 예배에 들어가야 할 마지노선의 시간에 도달하자 서둘러 기도로 마감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셨던 것이다.
대단히 루즈한 삶을 살고 있는, 매우 편한 시간을 누리면서 살고 있는 내가 생각하기로는
가장 나쁜 방향으로 주일을 보내고 계셨다.
저렇게 잡무가 많아서야 어디 설교에 집중이나 하겠는가.
아니, 교회 집행부는 담임목회자를 저렇게 혹사시키면서 무슨 좋은 설교를 바란다는 것인가.
어찌하여 주일예배 틈새마다 쉬지않고 회의를 만들고, 모임을 만들고, 수많은 인간들과의 접견시간을 만들어
담임목사의 눈을 퀭하게 만들고, 정신없이 만들고, 바빠 미칠 것 같게 만들고, 뇌의 용량을 초과하는 작업을 하게 만들어 장렬히 순교하게 만드는 것일까.
대체, 왜, 교회는 그렇게도 일이 많고 상담도 많은 것일까.
왜 모든 일들이 목회자를 통해서야만 이루어지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바쁜 목사는 나쁜 목사다.
그렇게 만든 교회 행정도 나쁘고
목사님을 쉬지 못하게 만드는 교인들도 나쁘다
무엇보다
주일에 편안하게 쉬지 못하게 하고
교회에 와서 예배드린답시고 수많은 잡무에 시달리게 하고
친교한답시고 수많은 행사를 만들어 지치게 하는
뺑뺑이 돌리는 교회도 나쁘다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일까?
예수님이 교회에 바라는 일이 이런 것일까?
이제 교회는 진리밖에서 존재하는 것 같다
아, 물론 예수님이 떠나신지는 너무 오래되었고.
예수없는 예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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