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금요일부터 14일 토요일까지 독서회에서 일박이일로 가까운 휴양림에 머물렀다.
첫날 점심부터 시작되었는데 대부분 자신의 차로 이동하셨지만 나만 차가 없던 고로 총무님이 길바닥에서 이십 여분이나 기다리셔야 했다.
가을비가 멋드러지게 내리는 인덕원 2번 출구의 마지막 계단을 오르니 이크, 싸부님이 홀로 우산을 받치고 떡 하니 서 계신다.
-아니 총무님은 어디 가고 왜 선생님이?
-너 늦게 오는거 미안해 하라고 내가 마중왔다!
그리고는 싸부님은 바로 앞 빠리바게트에 들어가시더니만 빵을 고르라는 엄명.
-왜요?
-이따 심심할 때 먹으라고. 많이 담아라.
-넵.
실컷 담았다. 내가 먹고 싶은 거만 골라 담았다. 옆에서 지켜보시던 싸부님도 '이건 내가 좋아하는 거'하시면 두 개 고르셨다.
거의 산더미만한 빵을 계산하니 이만 칠천 원.
아니, 이렇게 마음놓고 실컷 골라 넣었는데 겨우 이만 칠천원?
순간, 이 정도는 내가 계산할 수도 있다는 계산(ㅋㅋ)이 나왔다. 왜 그제서야 계산이 되었는지...
-이거 제가 계산할께요.
-웃기지 마.
제법 큰소리 치면서 지갑을 여는데 싸부님이 놀라울정도로 빠른 속도로 카드를 먼저 내밀었다.
(나중에 총무님께 이렇게 말하더란다. "쟤(바로 나다^^)가 빵값 계산한다고 하는 걸 보니 좀 심이 펴졌나....?" 내가 아프다고 붓글씨로 정성들여 적은 기원문과 함께 적지 않은 액수의 금일봉을 쥐어주신 싸부님이시다. 입원 퇴원 치료 중간마다 안부전화는 또 얼마나 많이 하던지... 말은 안하지만 마음속으로 항상 걱정하고 계신 거 안다)
지금까지의 글은 이 글의 주제와 별 상관없는 왕수다였고
빵봉다리 들고 저만큼 차를 세워넣고 기다리던 총무님께 인사한 후 첫번째 약속 장소인 경치 좋은 한정식집으로 갔다.
통유리창이 환한 이층의 룸에 우리만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와, 창밖의 비오는 가을 풍경이 장난이 아니었다. 분위기 짱.
모인 분들은 일단 12명. 마치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식탁에 앉아 멋지고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데 마침 앞자리에 민박사님 부부가 계셨다.
(여기부터 오늘의 이야기 본론이다. 에휴 나는 말이 너무 많아서 탈이얌)
이런 저런 이야기끝에 나온 말씀.
민박사님은 저녁까지만 함께 하시고 내일은 일이 있어 사모님만 독서회 일정을 함께 하실 예정이라고...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너무 아쉬워서 촉살맞게 내가 불쑥 말을 들이밀었다.
-아, 남포교회라고 있는데...
줄지어 나오는 각종 희귀 먹거리를 계속 냠냠거리면서도 귀가 번쩍했다. 남포교회의 남, 자만 들어도 기분 좋은 내가 가만 있을 리 없다.
-알아요, 알아요. 남포교회!
-그 교회에 박영선 목사라고...
-알아요, 알아요, 박영선 목사님!
나는 흥분했다.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민박사님 입에서 박영선 목사님의 함자가 튀어나오니 좋아 죽을 것 같았다. 민박사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나는 주체할 수 없었다.
-오늘 아침에도 박영선 목사님 설교 두 개나 들었는걸요(실은 두 개를 두번씩 연거퍼 들었다!!!)
내가 자꾸 끼어들어 민박사님은 말을 제대로 이어나가기 힘드셨을 테지만 하여튼 이런 이야기였다. 내일(14일 토요일) 오전 남포교회에서 박영선목사님 은퇴식을 하는데 설교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앗! 어떻게 그런 일이! 같은 교단도 아닌데!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민박사님이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박영선 목사님의 은퇴식에 설교를 하시게 되었다는 것에 어메이징 그레이스!!
같이 식사를 하던 독서회 회원들 중에도 박영선 목사님을 아는 분이 계셨다. 그분 나이가 어떻게 되나? 나는 잘난척 떠들었다. 1948년 생이시고요, 한양대 건축과를 나오셨고요, 책도 어마무시하게 많이 쓰셨고요, 설교는 기가 막히고요, 대한민국 설교자 중에서 최고라고 저는 생각하고요....(입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이런 말도 하고 싶었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해주셨고요, 나를 고통에서 건져주셨고요, 위로해주셨고요, 힘을 주셨고요, 기쁨을 주셨고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해주셨고요, 설교를 들을 때마다 많이 울게(감격과 기쁨과 안도의) 하셨고요, 정말 오래오래 사세요, 하면서 매일 기도드리는 분이고요.....)마지막으로 이렇게 결론 지었다.
-제가 박영선목사님 빠에요!
식사를 하던 회원들이 내 하는 짓꺼리를 보더니 모두 인정했다. 그려 아주 좋아하는 목사님이신가벼.
모르겠다. 함께 하신 회원의 연령대가 6,70 대이니 '빠'의 의미를 아실지 모르실지...
독서회 이틀 째 일정 중에 갑자기 남편에게 응급상황이 발생하여 병원 응급실로 뛰어가고 난리가 나는 바람에 검색을 못했다가 조금 전 기사를 찾아보았다.
민박사님 설교 제목이 너무 좋다.
주님, 주님께서 속이셨으므로 제가 주님께 속았습니다
이런 제목으로 설교를 한 한국(아니 세계)목회자, 설교자가 있으면 나와보라구 해!!
식사 후, 티타임에 민박사님이 나에게 조언 하나를 해주셨다.
-교회에 대한 소설을 한 편 써보세요.
정색을 하시고 제목까지 정해 주셨지만 밝히기 매우 어려운 제목이다. 그만큼 파격적이었다. 멋짐!
대체 뭐라고 설교 하셨을까, 하도 궁금한 나머지 마구마구 검색해서 몇 문장 건질 수 있었다. 나는 원문이 읽고 싶은데...,
어쨌거나
박영선 목사님, 너무 너무 감사했어요. 그리고 계속 감사드릴 겁니다.
제발 오래오래 우리 곁에 계셔주시기를.
(오른쪽에서 세번째 인자한 웃음을 띠고 계신 분이 민영진 박사님, 가운데 표정 관리가 잘 안되어 뻘쭘하게 서계시는 키크신 분이 바로 박영선목사님이시다. 우리 교회 소속목사님이신 왕대일 교수님도 계시다는데 나는 얼굴도 제대로 모르니 좀 미안스럽다.)
(아참, 지난 13일 목요일에 병원가서 6개월 연장 받았다. ㅋㅋ 내년 5월에 와서 검사받으라는 말에 좋아죽음. 그날 집에 와서 옷벗기 전에
즐거운 모습을 찍어놓은 셀카 하나 덧붙이궁~~오른쪽 볼딱지에 무엇인가 볼록하니 생겨서 머리카락으로 살짝 가리고 다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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